김달님 작가의 2018년 책 <나의 두 사람>을 읽고 있다.
아니나 달라,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내가 여전히 세상에서 최고로 존경하면서 애틋해하는 나의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에게 이런 감정을 갖게 된 건, 아마 아빠 때문이었을 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갑자기 아빠는 나에게 이런 과제를 던졌다.
할아버지에게 어떤 삶을 사셨는지 물어보고 그걸 기록해보라고.
그 기록이 너에게 그리고 아빠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사실 그 당시에는 그렇다면 아빠가 하지, 그걸 왜 나한테 시키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말이 많은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좋은 인터뷰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과거의 이야기를 묻는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질문을 하는 자리가 불편한 건 당연했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좋은 인터뷰이였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 성년이 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학도병으로 끌려갔을 때. 그리고 전쟁을 오롯이 봐야 했던 때. 그때의 두려움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가족의 풍경을 아주 찬찬히 묘사했다.
한때 나름 풍족했던 가족은 전쟁을 경험하며 당장 먹을 걸 고민하는 신세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는 대신, 가족을 먹여살리는 길을 택했다고.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은 공부였다.
지리 공부를 하고 싶었단다.
이 이야기를 하며 할아버지가 한 말은 두고두고 내게 남았다.
"지금도 상상한다. 그때 내가 가족 대신 내 꿈을 좇았다면 어땠을지. 그럼 나는 여기 있는 대신 연구를 하며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을 수도 있지 않겠니."
그 말이 내 마음에 애잔함으로 꽂힌 건, 할아버지가 실제로 지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가보지 않은 곳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교사로 오래 근무한 탓에 벌이가 나쁘지 않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한두 번 해외여행을 했지만, 옛날 어르신들이 죄 그렇듯 패키지 여행이었고 가이드가 인솔하는 곳 외에는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나라의 길을 다 꿰고 있었다.
심지어는 할아버지가 가보지 않은 나라를, 그러니까 유럽의 몇 개 나라나 아시아의 몇 개 나라들을 내가 간다고 할 때면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걸 지도도 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대략적으로 미술관이 어디 있고 시청이 어디 있고 이런 게 아니라, 미술관은 무슨 길에 있는데 그 길은 이러이러한 역사로 만들어진 거고 또 다른 이런 길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식이었다.
할아버지가 지리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걸 들은 후,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좁은 방에서 할아버지가 지도를 펼치고 세계를 보는 모습.
그 안에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과 미련이 있어서 나는 상상만으로도 애틋하고 그에게 미안해진다.
그가 못 가본 곳들을 마음껏 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쩌면 일정 부분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니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나를 결혼시키라는 거였다.
30대 초반의 손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엔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손녀가 내심 걱정된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그렇게 걱정되면 어디서 괜찮은 남자 하나 데려오시던가요"라는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을 때, 계속 할아버지 생각이 낫다.
"이 사람이에요? 할아버지가 선택한 사람인 거 맞죠?"
지금은 믿는다.
할아버지가 선택한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것을.
덕분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세라는 게 있다면, 할아버지는 분명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후원을 받으며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일 거다.
그랬으면 좋겠다.
늘 그러길 기도한다.
내 할아버지는 이런 내 마음을 알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