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일
12년 전쯤, 런던에서 10개월 정도 머물렀다.
그곳에서 중동에서 온 친구를 몇 사귀었다.
그전까지 중동이라 하면, 선입견 같은 게 조금은 있었다.
그 친구들을 통해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곳의 여성들이 하나의 개인으로서 오롯이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은 화가 난다.
하지만 선입견은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단체를 향한 것이어야 하며, 그곳에 사는 개개인에게 가져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걸, 마음까지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 친구들을 보며 배웠다.
1월 24일은 국제 교육의 날이다.
새삼, ‘교육’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교육'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유치원부터 사교육 시장에 던져지는 것이 과연 교육일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서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교육이야말로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지 않을까.
빈부의 격차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질이 달라지는 건 진정한 교육이 아니지 않을까.
더 이상은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다고 하던데, 가족에 팔촌까지 등에 빨대만 꽂지 않는다면 개천 용은 희망이 된다. 드물더라도 가끔씩 나와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울 때마다, 10년도 더 전에 중동의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의 일순위는 교육이야. 교육이 미래라고 생각하거든. 본인이 원한다면 유학도 무료야. 생활비도 주지. 조건은 두 개야. 본인이 선택한 수업 출석률이 70퍼센트 이상일 것. 매주 대사관에서 진행하는 종교 집회에 참석할 것.”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강탈당한 종교의 자유와 여성의 인권에는 아직까지도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저 교육의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는 여전히, 아니 날이 갈수록 더더욱 우리에게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교육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더 큰 개념의 교육은 사회의 분위기가 주도한다.
모두가 교육이 평등해야 하며 아이는 아이답게 배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주변애서 다 학원에 보낸다는데 우리 아이만 그러지 않는 건 그 역시 뒤처지는 것 같고 방관하는 것 같다. 그 마음을 누가 이해하지 못할까.
그런 상황 속에서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도 사실이겠지.
그러니 더욱, 교육은, 평등한 교육은, 더 나은 교육의 기회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
뭐가 맞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복잡하다.
이런 기분을 달래는 데엔, 땅콩버터의 날을 축하하는 것만 한 게 없는 듯하다.
빵은 접시일 뿐. 땅콩버터를 퍼먹는 내 남편.
이왕 먹을 것, 조금이라도 성분 좋은 걸 먹으라고 유기농에 설탕 0퍼센트인 땅콩버터를 안 끊기게 사놓는 나.
왠지 땅콩버터의 날은 우리 사랑의 날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 작은 것들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
나에게 누군가를 교육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