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두 달간 성대앞의 안똔 체홉극장에서 여름체홉축전이 열리고 있다. 체홉이 쓴, 혹은 체홉을 주제로 한 여러 편의 연극이 매주 새롭게 올라가는데, 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티켓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해서 구매했다. 도저히 다 볼 수는 없고 몇 편을 골라보는 중인데, 오늘의 작품은 '분장실'! 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하는 극장의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네 명의 여배우만 출연한다. 이제는 나이들어 '니나'역을 내려놓을 만도 하지만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는 나이 든 여배우, 그 역할을 갈망하는 진짜 니나같은 젊은 여배우, 그리고 단역이나 무대의 프롬프터 역할을 하는 두 명의 여배우들이 만들어가는 무대는 장 쥬네의 '하녀들'과도 닮아 있으면서, 묘하게 체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등장 인물의 이름이 왜 이럴까 싶어 다시 보니 일본의 '국민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가 쓴 작품이란다. 일본어로 체홉을 주제로 이만한 작품을 써 내려면 그만한 인문학적, 연극적 전통이 존재한다는 얘기일텐데... 크고 화려하지 않은 무대에, 얼굴 아는 배우 하나 등장하지 않았지만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더불어 잘 쓰여진 단편소설같은 깔끔한 수작이었고, 배우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