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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을 추억함 -1

by Kyuwan Kim

예술가가 자신의 온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붓고 그 작품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면 그것 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그 예술가의 작품이 훌륭하다는 걸 보장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좋은 예술과 대중의 행복한 만남의 사례로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다. 나는 살아계실 때 그 분의 강연을 들으며 직접 뵌 적이 딱 한 번 있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는 오래전 이야기인데, 기억이 나는 대로 이곳에 적어두고자 한다.
지금은 명칭이 바뀌었지만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문인단체에서 일 주일에 한 번, 한 학기 동안 진행한 민족문학교실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박완서 소설의 애독자였던 나는 한 학기의 마지막 강의에 자리한 선생님을 만나뵈려는 최종목적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했는데, 한 학기 동안 글로만 만나던 주옥같은 한국 현대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을 만나 그 분들의 예술세계에 대해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매주 가슴 설레며 강의가 열렸던 여의도로 향하곤 했다. 소설가 이호철, 이문구, 남정현, 조태일, 시인 신경림, 이기형, 정호승, 김명수, 이재무, 황지우, 하종오, 평론가 구중서, 홍정선 선생님 등이 기억나는 성함들인데,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계신다. 책으로 읽을 때 보다 더 따뜻하고 진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던 분들이 계신가 하면, 글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분들도 계셨던 듯 한데, 그 이후에도 어떤 책을 읽고 좋은 느낌을 얻었을 때, 반드시 그 저자의 강연회 등을 쫓아다니며 직접 만나보려고 노력한 건 어쩌면 그 때의 인상적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마지막 강연... 매주 강연은 20명 내외의 수강생들이 참여하곤 했었는데 이 날 만큼은 2백명이 넘는 인파가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워낙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계신 탓에 주최측에서도 의도적으로 박완서 선생님을 제일 마지막 날에 배치(?)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마침내 선생님이 예의 그 수줍은 미소로 강단에 오르셨다. 선생님은 ‘작가회의 측에서 강연 요청을 해서 승낙은 했지만, 내가 최근에 집안의 큰 일을 치러서 경황이 없는 관계로 이 강연을 좀 면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작가회의 측에서는 수많은 독자들과의 약속이니 어려우시더라도 꼭 지켜야 한다고 해서 어렵게 이 자리에 올랐으니, 부디 많은 독자분들이 저를 좀 편안하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문을 여셨다. 강연이 있기 몇 달 전에 선생님은 암투병을 하시던 사부님을 여의셨는데, 이 이야기는 87년 6월항쟁을 배경으로한 중편 소설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에 남아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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