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은 미리 청중들에게서 작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걷어서, 사회자가 골라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적어 냈었다. 그런데 놀랍고 영광스럽게도 나의 첫 질문이 뽑혀서 읽혀졌다. 그 몇 달 전 나는 작가가 대학 입학 직후 경험한 6,25동란 이야기인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을 ‘나목’에 이어 인상적으로 읽었었는데, 내 첫 질문은 그것과 연관된 것이었다. 사회를 보던 시인은 선생님이 기다리시던 편안한 질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선생님의 작품 ‘목마른 계절’을 읽으며, 대학 초년생으로 경험하셨던 이념적 혼란, 사회적 갈등에 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대학생들도 그 시절 못지않은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시대의 어머니로서 요즘의 대학생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때는 노태우정권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질문에서 우리시대의 어머니라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제 키를 육박하는 손자가 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셔서, 본인이 겪은 1950년 6월 25일 동숭동 문리대의 강의실 풍경, 소설에서도 묘사된 그 해 여름과 가을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6월 25일, 포성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대학 강의실에서 포성이 커질 때 마다 불안하게 웅성거리던 대학생들에게 ‘나도 안무서운데 젊은이들이 이깟 게 뭐 무섭냐’고 호통을 치시며,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강의를 이어가셨다는 양주동 박사의 얘기, 피난을 못가고 남은 폐허의 서울에서 텅 빈 도시의 모습을 보며 ‘내가 언젠가 작가가 되면 꼭 이 풍경을 글로 쓰리라’고 다짐하셨다던 얘기 등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질문...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역사가 발전하는 어떤 단계에 꼭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60년대에는 김주열이 그랬고, 지난 6월에는 박종철, 이한열이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은 만약 그 희생의 대상이 본인의 아들이라면 어떡하시겠어요?’ ...... 잔인한 질문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잠시 장내에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선생님은 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최근의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보면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내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내 마음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모든 어미의 마음일 겁니다.’라고 대답하셨다. 당대 한국의 대표 여성작가이니 만큼 더 멋지고 영웅주의적인 답변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이 소박하고 직설적이고 정직한 답변에 너무도 공감이 갔고, 어쩌면 작가로서 그녀의 이런 면모가 동시대의 많은 독자들과 교감했던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그만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속물성과 자잘한 이기심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을 수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똑똑히 알고 있는 것. 당시에 목소리를 높이던 몇몇 젊은 평론가들은 이런 그녀의 문학을 ‘소시민적 지식인 민족문학’이라고 쉽게 괄호쳤지만, 사실 ‘소시민성’이란 (기형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누구라도 그 주식을 갖고 있는 삶의 지난한 주제 아니었던가? ... 그 이후에 어떤 질문이 있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강의는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고, 강연 후 매번 찍던 단체 사진은 너무 많은 청중들로 인해 생략된 채 그 날의 일정은 끝이 났다. 그리고 마치 불운한 전조였던 것처럼 몇 달 후 선생님은 불의의 사고로, 사부님에 이어 외아들 마저 여의는 참척의 고통을 당하셨다. 깊이를 모를 오랜 고통과 방황의 시간 후 선생님은 다시 펜을 드셨다. 그리고 아차산 자락의 노란집에 기거하시면서, 한국사회에서의 노년의 삶에 대해 마지막까지 꾸준하게 에세이와 소설을 쓰셨다.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터무니 없는 주의 주장이 입장이라는 명목으로 너나 없이 목소리만 높여가는 이 시대에 큰 어른이 그리울 때 마다 나는 소설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 - 나잇값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박완서 산문집 ‘호미’(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