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uwan Kim Sep 13. 2023

연극

혜석의 이름

(연극) 혜석의 이름... 제8회 여성연극제 참가작 중 나혜석을 다룬 작품을 보았다. 연극의 첫장면에 언뜻 등장하는, 그녀가 그린 '무희'라는 그림은 일제 강점기에 그려졌다기엔 너무나 모던하고 세련되어서 오래전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연극은 그녀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에 '혜석의 이름'이라는 연극을 공연하게된 아마추어 배우들의 연습과정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관객들을 무대로 몰입시킨다. 백년 전 혜석의 삶이 묘사되는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각 배우들이 처한 현실의 풍경을 통해 작가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은 오늘날 우리들의 젠더 갈등, 계층 갈등, 세대갈등에 거울을 들이댄다. 결국 연극연습의 어느 순간, 배우들은 시간을 거슬러 나혜석을 마주하는데... 나혜석이 당대에 여성으로서 겪은 불합리한 차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나름 당대 최상위에서 이루어졌을 그녀의 삶을  시대속에서 폭넓게 조망하는 시각이 없는 것이 아쉬웠고, 급하게 마무리된 모든 인물들의 해피엔딩도 작위적으로 느껴졌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95분이 길지 않았고, 특히 글로 남은 그녀의 목소리는 이 시대에도 큰 울림으로 남았다. 현실의 역할과 연극 속의 역할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특히 나혜석에서 50대의 마트 아줌마로 변신하는 최유리배우가 배역에 썩 어울렸다. 9/17일까지 민송아트홀 2관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작가의 이전글 연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