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1인극으로 만들어진 연극 '모비딕'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홉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무대이다. 그런데 대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백색의 향유고래를 상대로 싸우는 선원들과 선장 에이합의 웅장한 비극적 이야기와 더불어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을 연상시키는 방대한 원작 제목에 붙은 부제가 '사악한 코메디'라니!! ... 한 마디로 놀라운 무대였다. 흔한 기술적 도움 하나 없이 일상적인 소품들 만으로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원작 소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재현해 내는데 그 표현방식은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이고 연극적이며 끊임없는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페트병의 물이나 무대의 흰 벽, 흰옷의 여배우가 갑자기 고래가 되는가하면 옷걸이는 고래를 잡는 작살이 되고 테이블과 소품함은 배가 되는 식이다. 개막을 앞두고 선포된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온 나라가 선장의 광기로 침몰하는 피쿼드호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는 드라마투르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들, 꿈틀거리는 것들, 살고자하는 모든 것들'의 목소리를 통해 에이합의 세계와는 정반대되는 '소란스럽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명랑하고 생명력이 기득차 있는 코미디'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각색의 기술이 너무 놀라워 나오는 길에 한 배우에게 물었더니 모든 배우들이 소설 전편을 읽어가며 공동창작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원작을 읽은 분에게는 어쩌면 가물가물할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각색의 연극적 재미를, 아직 안읽은 분에게는 원작에 대한 강렬한 독서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