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권리장전 일곱번 째 작품은 극단 산수유와 철학극장의 '총독의 소리: 국민적 인간의 생산'이다. 때는 1965년, 여관을 겸하는 어느 카페를 배경으로 안주인과 형사, 요코하마에서 온 글을 쓰는 한국인, 세 사람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극의 중간 중간에 시대를 암시하는 대중가요와 뜬금없는 총독의 훈시가 라디오로 흘러나온다. 소설가 최인훈의 중편소설 '총독의 소리'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데, 원작은 한반도의 재식민화를 노리는 일제하 조선총독이 라디오를 통해 끊임없이 한반도 정세에 논평하고 '반도인'들에게 훈시를 하는 내용으로 이어져, '광장', '회색인'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섬뜩하고 장황한 소리는 연극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고 세 사람의 만남과 대화들, 글을 쓰는 남자의 체포가 마치 서구 부조리극의 한 장면 처럼 처리되는데, 배우들의 연기력과 음향효과에 힘입어 묘한 연극적 분위기와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조금 더 친절하게 원작을 소개해도 좋았을 것 같다. 1960년대 이런 관점으로, 이렇게나 꼼꼼히 한반도의 정세와 세계사의 흐름을 읽었던 지식인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만큼 원작소설은 정교한데, 아직까지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않는 한일간의 뿌리깊은 생각과 관점의 차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연극을 보고 작품에 대해 의문을 가진 관객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최인훈전집9, '총독의 소리'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