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으로 오랫동안 세상의 틀과 속도에 나를 맞추며 살아왔다.
초짜 부모인 여성의 결혼과 출산과 승진이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시절.
그 시절의 직장은 여성에게 존재의 허락 자체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자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바지를 선택했고,
남성들보다 한 시간 늦게 퇴근하며 그들의 리듬에 나를 끼워 넣었다.
결혼 전날까지 야근을 해야 했고, 출산 전날까지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엄마이면서, 아내이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세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하루가 모자랐고, 나 자신은 늘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예상치 못하게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는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도 석사 과정을 이어갔다.
지친 숨이 가쁘게 이어진 시기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버텨낸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에서 나는 경력직 최초 여성 입사자였다.
칭찬이어야 할 그 말은 오래도록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은 늘 고독했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책임감도 함께 따라왔다.
입사 3년이 되기 전에 두 곳의 대기업에서 거의 동시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정도다.
그 당시 경기도 좋았고, 이력도 화려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 몸값을 당당히 회사에 제시했다.
여성이 감히? 하는 시선들 사이에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인사담당자실 문을 두드렸고 내가 차장급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숨길 필요도 없이, 불안도 없이 설명했다.
결국 나는 사업본부 최초의 여성 차장이 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팀장으로 승진하고 부장 승진을 목전에 두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허전함을 느꼈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정말 내 몸에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팀원들에게는 “눈치 보지 말고 먼저 퇴근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지 못하는 조직의 관행 안에 갇혀 있었다.
군대식 문화 속에서 회의가 끝나면 퇴근이 아니라 술자리였다.
아무리 성과를 내도 고과는 늘 낮았다.
내가 아무리 성과를 내도, 누군가는 여성이라서 라는 해석을 먼저 붙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논문 준비에 파묻혀 있던 내게 둘째 아이가 교복을 입고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참았던 감정을 쏟아내듯 울었다.
그토록 소중한 등굣길을 나는 한 번도 따뜻하게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은 통증처럼 가슴에 박혔다.
아이가 열이 펄펄 나 응급실에 실려 가도 나는 가족에게 맡기고 출근해야 했고, 집안일은 도우미에게, 공부는 과외 선생님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남성 중심의 세계 안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 모든 귀한 시간들을 나는 회사에게 바치고 있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구두보다 운동화가 더 편했고, 정장보다 편한 옷이 더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강단에 서는 시간보다 사람들에게 삶을 이야기하고, 행복을 전하는 시간이 더 내 마음을 움직였다.
30여 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면 내 삶은 늘 변화와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 속에서 얻은 가장 큰 통찰은 진정한 변화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인생 조언을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끌리는 삶.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구나.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라는 정체성을 마침내 찾아냈다.
한 수의 말)
오늘날 현실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일 아침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어깨와 등에 짊어지고 일어나는 일이다
출근길의 어깨에는 회사가
아이의 등굣길에는 엄마가
집으로 들어서는 문턱에는
또 다른 하루가 겹겹이 쌓여 있다
누구보다 서둘러야 하고
누구보다 천천히 품어야 하며
누구보다 많이 선택하고
누구보다 자주 미루는 것이 워킹맘의 하루다
회의 중에도 아이의 건강이
아이를 쓰다듬으면서도
회사 메일이 머릿속을 스친다
두 세계의 경계는 늘 흐릿하고
그 경계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는 말한다.
“두 가지를 다 하려니 힘들지 않으냐”라고 하지만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건
두 가지를 다하는 삶이 아니라
두 가지를 가장 잘 버티고 있는 삶이다
하루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작은 성취도, 짧은 포옹도, 잠들기 전의 한숨도
모두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걸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건
강해지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강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지나온 삶의
다른 이름이지 싶다
건강과 행복 즐거움과 미소를 전하는 마법사 &
<매일의 태도> 저자 김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