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즈음에 들면 삶은 더 각박해진다.
치열해진다기보다, 피할 수 없이 무거워진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줄어들지 않고, 몸은 그 목록을 감당할 힘을 조금씩 잃어 간다.
나를 돌볼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건 고작 술잔을 비우는 일뿐이다.
달랜다는 말로 포장하지만, 실은 하루를 겨우 견디며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아침에 일어나는 몸은 눈에 띄게 무거워지고 늦은 귀가에 지친 몸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
옷을 벗고 씻을 힘도 없이 소파에 앉았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날이 잦아진다.
잠이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뒤척이다 일어난 새벽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갑자기 차오른다.
울고 싶어진다.
아주 크게, 참지 않고.
새벽빛이 차갑게 스며든 집 안에서 서러움이 몸을 타고 올라와 온몸이 떨리지만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내의 품도, 아이들의 얼굴도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랑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하 주차장 자동차 문을 잠근 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울음을 쏟아낸다.
서글픔과 먹먹함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슬픔의 생채기를 더 깊게 남긴다.
한 수의 말)
오십 즈음엔 억눌러 놓았던 감정이 올라온다.
잠가 두었던 자물쇠가 풀리듯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감정의 문이 열린다.
지쳤지만 꺼지지 않은 내면의 자아가 고개를 든다.
자녀는 사춘기와 입시의 문턱에 서 있고 아내는 갱년기의 문을 열며 각자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대화는 허공을 맴돌고 각자의 언어로 말하다가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마저도 지쳐 결국 침묵이 남는다.
삶도, 인생도, 사람도 혼란스럽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이때 타인의 공감과 위로마저 공허하게 다가온다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해결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숨을 고르고, 가만히 자신을 응시해 보면 된다.
그다음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고통스럽고, 조금은 아플 것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볍게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오십 즈음에 꼭 필요한 것은 더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이제부터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다시 그려보는 나를 돌아보는 쉼의 시간이다.
삶과 인생, 일과 가족이라는 역할 안에만 갇혀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쉽게 사라진다.
세상이 짜 놓은 틀 속에서 길들여져 아등바등 살아온 자신을 돌아볼 시기가 온 것이다.
어느 한 역할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마음을 허락한다면 삶은 생각보다 다양한 해답을 내어준다.
그 안에서 즐기고 만족하며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아갈 가능성도 다시 열린다.
오십 즈음은 끝이 아니라 반백 년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야 할 길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지점이자 나이다.
늦은 출발이 아니라 비로소 나로 서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러니 힘낼지어다.
건강과 행복 즐거움과 미소를 전하는 마법사 &
<매일의 태도> 저자 김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