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안부 묻기

by GZ


안부를 질문받았을 뿐인데 불현듯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입학, 취업, 결혼, 출산, 승진.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며 입에 올리는 그 단어들이 그간의 나의 인생 여정을 재단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불편한 기운이 들기 때문이다. 상대는 그저 만나지 못한 동안의 나의 삶이 궁금하여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 있는 단어들에서 배어나는 편치 않은 느낌 때문인지 나는 상대가 내 인생의 성취도를 듣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괜한 강박감을 느낀다. 그건 아마 다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질문이 나의 예상을 빗나갔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나를 떠올리며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반기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무관심하다면 안부조차 묻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인지 성취를 했으면 한 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은 대로 안부 묻기에서 편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사람들이 보통이라는 또는 평범이라는 기준에 맞춰 내 인생을 평준화해 버리려는 시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의 나는 억지로 누군가의 손에 잡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상품진열대에 올려진 기분이 든다. 진열대에 오른 준비가 끝난 사람들만으로도 진열대는 장식은 빠듯할 텐데 굳이 나처럼 진열대가 필요 없음을 선언한 사람까지 진열대에 올리고자 하는 그 친절을 관심이라 해야 할지 오지랖이라 해야 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아무리 무심하려고 해도 진열대 위에 오를 생각도 없는 나를 멋대로 진열대에 넣어두고 평균에 맞춰 값을 매기는 듯한 느낌이 나는 불편하다.

평범한 안부 인사일 뿐인데 그것을 이렇게까지 고심해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편협함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안부를 주고받을 때의 시선이나 무의식이 깃든 말투에서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은 노력해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조하고 딱딱한 안부 묻기 놀이를 하고 돌아온 날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친절이 배어나는 안부가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 하며 나를 끝없이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문해 보게 된다. 내가 물은 안부도 누군가에게는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 또한 세상의 틀에 맞춰 누군가의 인생을 멋대로 재단해 버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은 아니었을까.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단지 안부 인사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게 때로는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부는 고심해서 묻지 않으니 그것은 오히려 평소의 내 무의식 속 생각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을 갔고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는 몇 명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탈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느냐는 것, 그래서 지금이 행복하냐는 것, 그게 안부인사가 될 수는 없을까.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했냐며 당신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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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in My Village_Marc Chagall_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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