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by GZ

배움은 인생을 풍성하게 한다. 그러는 한편 인생을 남루하게 하기도 한다. 풍성하고도 남루한 배움을 경제적 수단으로 삼게 되면서부터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 고요하기만 한 삶인데 속에서는 매 순간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조용하고 요란스러운 전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공유도 할 수 없다. 속이 부대낄 때마다 끙끙 앓는 것밖에, 소리 없는 이 전쟁을 잠재울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속을 알아가는 학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반추한 후 그것을 다시 세상에 내놓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런데 인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곱씹고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인간의 마음을, 사고를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자신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으니 사고하는 동물을 통틀어 인간이라는 범주에 넣고 그 속을 읽어내는 작업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사고 체계나 마음의 작용을 알려고 하는 의지 자체가 허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은 이내 인문학의 유용함으로 이어진다. 인풋이 곧바로 아웃풋이 되어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인풋이 인풋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은 인문학에 유용함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을까. 무용함을 폐기로 이어지게 만드는 이 바쁜 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인문학은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에 맞는 답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길을 모색해 가도록 하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과정 자체가 목적이므로 이 학문을 손에 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이 학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재하지 않으므로 실용적일 수 없고 그러하기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더 가난해지게 된다. 들인 노력이 늘어난 만큼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지는 듯한 아이러니. 그 속에서도 나는 이 학문을 붙들고 있다. 그렇게 무모하게 찾아낸 길이 인생의 결정적인 어떤 순간에 생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에 의해 끝없이 재구성되므로 정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없는 것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니 종일 책을 붙들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허탈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물론 이 허탈감이 인문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긴 시간을 들여 결과를 내야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인문학 정체성의 유령화를 굳이 강조해 말하는 이유는 결과를 낸 후에도 그게 결과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한 당황스러움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이나 그러하기에 매일 나를 주저앉게도 한다.

그런데도 왜 이 학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냐고 한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좋다. 이 학문이 좋아 내 발로 찾아 들어왔고 그 후 맨손으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맨발로 땅을 다져 온 게 짧지 않은 세월이다. 보이는 것은 없다. 만져지는 것은 흙뿐이다. 나만큼 어느 한 분야에 공을 들인 이들은 벌써 저만치 건물을 올리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땅을 밟고 있다. 건물은 언감생심, 이 땅이 반듯하게 정리만 되어도 좋겠는데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애써 이쪽 땅을 골라두면 저기에서 땅이 이지러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묻는다. 도대체 왜,라고.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아직은 좋다고. 언젠가 내가 선택한 이 문자의 세계가 만들어주는 투명한 집이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그때는 뒤돌아설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서 버틸 만하다고. 세간에서 보는 나는 여전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며 인문학이라는 불모지를 고르고 있다. 손발은 까맣고 얼굴은 그을릴 대로 그을려 있다.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말라 있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불모지에 서 있다. 이 불모지가 언젠가 생기 있는 땅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무용하다는 선언을 듣고 있을지라도 유용함을 자신하는 이 학문이 나처럼 무모하게 버티며 쓸모없음의 쓸모를 고집스레 주장하고 있는 이들에게만은 때때로 투명한 집의 윤곽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냥 좋으니까.’에 대한 대답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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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o Giacometti_James Lord_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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