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소음이 필요할 때는 카페를 찾는다. 내가 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주로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세상 평화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머릿속은 전쟁이다. 몸을 많이 쓰는 작업도 아닌데 두세 시간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눈도 시리고 어깨도 뻐근하고 머리는 탈 지경이 된다. 그러다 보면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진다. 그럴 때 두뇌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은 나의 경우는 커피 같은 음료나 초콜릿 같은 당분을 충전할 수 있는 음식 또는 새로운 장소다.
나를 가장 나일 수 있게 하는 장소 중 하나가 나에게는 차이다. 나는 차를 타고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 두뇌를 리셋하는 과정이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한 곳에서 한계에 이를 때까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가 이동을 통해 나를 옥죄고 있던 생각을 자유롭게 해 준 후 다시 새로운 공간에서 머릿속을 재배열하는 과정을 수도승처럼 거의 매일 반복한다. 그러하기에 나에게는 꽤 고된 노동이 새벽부터 나가서 종일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갓진 놀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게 무슨 일이냐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도 나로서는 그게 여러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택한 나의 작업이라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일정 기간을 나의 시간으로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 보니 나는 남들이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 카페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 대부분에게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카페는 작업실이다. 그런데 카페라는 것은 주인의 취향이나 공간 배치에 따라 저마다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딴에는 그 분위기에 내가 부담 없이 녹아들 수 있을 곳을 꽤 고심해서 찾게 된다.
고심을 하게 되는 이유는 먼저 나에게 카페는 공간 구성이 부산스럽지 않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카페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커피나 디저트의 맛이 카페의 정체성에 맞아야 하는데 커피와 디저트를 동시에 잘하는 곳을 만나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내고 작업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공간 구성을 가진 카페를 만나면 우선 감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카페의 커피가 맛이 좋으면 무릎을 꿇게 된다. 사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면서 말이다.
여하간 애써 만든 시간이니 그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궁구하여 딴에는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나 또한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 까닭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긴 시간 있자고 하면 영업집을 개인 공간으로 쓰는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져 편치 않아 두세 시간에 한 번은 장소를 옮기게 된다.
그렇게 발견한 몇몇 카페는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을 골라 주기적으로 자주 방문하게 된다. 음식이건 공간이건 진심을 다해 만들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내가 비밀스레 간직해 둔 나만의 비밀 작업실들은 주말이면 꽤 붐빈다. 주말 작업실을 잃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주말은 어쩔 수 없이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하며 발을 돌려 나오게 된다. 그 정도 아쉬움은 달랠 수 있다. 카페가 계속 그 자리에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향을 계속 내준다면 말이다.
가장 아쉬운 순간은 정말로 아꼈던 카페가 어느 날 문득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정말 말없이 이별 통보를 받은 사람처럼 먹먹해진다. 평소에도 눈인사만 했을 뿐인 사장님께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하는 괜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대체 누가 왜 이런 침묵의 이별을 가져오게 한 것이란 말인가 하는 애통함도 느끼게 된다.
취향이라고 해야 별것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취향은 통상적인 취향의 범주에 넣을 수 없어서 굳이 표현하자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하니 내가 좋아하는 카페도 대부분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경우 카페의 앞날은 세 가지로 갈린다. 마니아들이 모여 고유의 분위기를 쌓아가거나 한적하거나 알려지기는 했으나 손님들이 주인의 지향과 달라 카페 분위기가 아예 달라지게 휘청이게 되거나.
내가 남몰래 짝사랑하는 카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커피를 많이 팔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음료라는 게 한계가 있으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카페를 발견했을 때면 사장님 대박 나셔서 오래 살아남아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하지만 응원은 돈이 되어주지 못하고 치솟는 물가와 집세는 사장님의 생존을 위협한다.
몇 년 만에 찾은 카페가 온전히 그 자리에 남아 더 깊은 맛을 담아내고 있는 데 감동하여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사장님과 갈 수 없게 된 카페의 잔영을 떠올리고 있다. 기댈 곳이 아무 곳도 없다고 느껴졌을 때 혼자라고 느껴졌을 때 그들이 내려준 커피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약이었다. 정성껏 커피 한 잔을 내주며 그들이 건네던 안부 인사는 너덜너덜해진 내 가슴을 매만져주는 따뜻한 손이었다. 건재하고 있는 카페에 앉아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사장님들께 인사를 건넨다.
감사했습니다, 사장님이 내려주신 커피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더 좋은 곳에서 평온한 날들 보내고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혹여 굴곡진 길 앞에 멈칫하고 있다면 나를 버티게 해 준 그 힘이 사장님께 닿아 조금이나마 사장님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