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버티라는 말을 들으며 버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애쓰지 않아도 아득바득하지 않아도 그냥 나는 나인 채로 있어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한다. 작년의 나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할 일을 늘였다. 도망가고 싶다고 외치는 내가 약해 보였기 때문이었고 그런 나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무엇을 위해 왜 버텨야 하는지 모른 채 주어진 일을 정신없이 쳐내고 있었다. 나를 불러주는 곳이 많은 것을 인정받는 것으로 여기고 밤을 새우고 식사를 거르는 것 정도는 감당해 내야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여 그들처럼 나를 불러주는 곳이라면 무조건 응하고 이력이 된다고 하면 무리해서라도 움직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뭔가를 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어야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모두가 힘드니까 그 사실이 위안이 되어주어야 했는데 미친 듯이 몰려대는 일을 쳐낼 때는 그게 위안이 되어주지 않았다. 나만큼 지쳐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왜 다들 이렇게 모든 것을 참고 버텨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온통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로 포진된 주변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공포였다. 저러다가는 고장 날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에서 올해 초로 오며 내가 근근이 이어오고 있던 내 속의 끈이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끊어진 끈을 보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 노심초사했는데 그게 두 조각이 되어 내 손에 놓였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안도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그 끈을 어떤 이유로 그렇게 꼭 쥐고 있었는지 모른 채 긴장을 위한 긴장을 거듭하며 끈을 움켜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끊어져 버린 두 개의 끈을 머리핀 삼아 두르고 시계추에 맞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끈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끊어진 것이 내 두뇌 속 회로가 아니라 내가 쥐고 있던 정체 모를 무엇이었다는 것은 불안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안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끈이 온전히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조바심이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끈 하나를 손에 쥐고 있으니까 그것을 마치 자신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니까 그것을 놓으면 내가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만든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놓아보니 알겠다. 내가 쥐고 있던 것이 불안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끈을 잡고 있던 손을 조금 더 일찍 내 의지로 놓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끈이 너덜너덜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며 속을 졸이고 절망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사이 정작 내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인생에서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있다면 닳아버린 끈을 쥐고 발을 동동거리며 내가 지워지는 것 같은 조바심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나를 위해 그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놓는 것이 쥐는 것과 다르지 않음은 놓아보고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놓아보았으니 이제 다시 쥐려 할 것이다. 그러하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다음번에는 놓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놓고 싶을 때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