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을 하거나 나의 몸을 치장하는 데 서툴다. 이것은 귀찮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화장을 했을 때 느껴지는 그 갑갑함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이것도 자주 하면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의 얼굴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게으른 나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화장을 하면 확실히 예뻐진다. 음영과 색감이 얼굴을 입체적이고 화사하게 보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얼굴을 나의 미감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장은 매력적일 수 있다. 그리고 화장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화장도 사실은 예술의 일부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행착오 끝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 관람이나 색 매칭을 좋아하니까 화장에도 관심을 가지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화장은 나와 관련 없는 그리고 범접하기 힘든 분야처럼 느껴진다. 미를 논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내 얼굴로 가져올 능력이 나에게는 없는 것 같은 것이다. 화장을 시작하고 끝내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너무 많이 걸리는데 사실 결과물은 아무래도 어색해 보일 때가 많다.
물론 이 얼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얼굴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주는 아니지만,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한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고는 하는 것을 보면 화장의 위력이 나만 피해 가지만은 않는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도 화장에는 나에게 넘어설 수 없는 벽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화장을 한 나를 본 사람들의 반응에 오히려 더 놀라는 쪽은 나다. 나는 화장도 잘하지 않지만 거울도 잘 보지 않는다. 세수할 때를 제외하고는 나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는데 나를 보는 사람들의 다른 반응은 나를 꽤 당황하게 한다. 아니, 반성하게 한다는 것이 맞다.
특정 직업을 제외하고는 사실 우리 모두 타인보다 나의 얼굴을 자주 많이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 말은 곧 나의 얼굴이나 꾸밈을 보는 사람은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화장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 포기해 버린 미에 대한 나의 무성의함으로 인해 수수한 미만을 접하게 되는 것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외모의 출중함과는 관계없이 어쨌건 화장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니까 상대에 대한 무의식적 마음 씀 수 있다.
그래서 화장한 나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을 볼 때면 반성하고는 한다. 시선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렇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 또한 누군가의 꾸밈으로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탄성을 내뱉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화장을 하거나 나를 꾸미는 일은 나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벽 같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 연간 행사처럼 하는 화장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심심한 사과와 함께 그 벽은 일단은 넘어서지 않기로 하련다. 하여 앞으로도 나는 화장이나 나를 꾸미는 일에 관해서는 그런 나를 자주 볼 내 주변인들에게 미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미리 사과하련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포기하는 게 맞다. 대신 내가 넘어서 온 그리고 앞으로 자신 있게 넘어설 수 있는 많은 벽을 넘어서며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는 노력을 더해 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운동화 끈을 묶고 다시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