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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그린 May 08. 2016

소소하고도 세찬 상처를 안고,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콘이 손으로 녹아내리고.

고이 모셔둔 새 신은 작아져 발 끝에 겨우 앉혀 놓았던.


거친 흙바닥을 달려가다가 순간 휘청 넘어지며

손을 딛지도 못하고 얼굴 한 쪽을 바닥에 쓸린 것처럼.

핏망울은 차마 밖으로 터지지도 못한 채

흙을 털어내고 떼는 걸음걸음마다 맺혀서.


*


봄이 한껏 내려앉은 가로수 길을 걷다가,

빛 바랜 일기장의 그 날들로 돌아가 본다.


가던 걸음을 기어이 붙잡아 돌려세우,

나는 왜.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너를 생각한다,

왜.


너와는 상관없는,

오롯이 나만이 존재한 그 시간을 떠올리며

너와의 끝난 사랑을 생각한다,

왜.


*


...너를 생각하면, 나는 그렇다.


아름답고 지루한 봄 한 날,

어느 고요하고 따분한 시에,

세상 어디쯤 서서.


이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앞에 두고도 신을 수 없는 새 신처럼,

사소한 상실감.


눈물이 찔끔 터질 만큼의 얼굴 상처처럼

차마 피맺힌 슬픔도 꺼내지 못할 더딘 걸음처럼,

먹먹한 좌절감.


사랑이 참 그렇더라,

이별이 바로 그렇더라.


행복하던 순간은

나보다 바람이 좋다고 달아나버리고.

남겨진 상처는

내 심장의 온기와 함께 숨을 쉬니.


평온한 계절의 시간에도 평온하지 않고,

무심한 어느 날의 거리에도 무심하지 않은,

내가 자꾸, 깨어나...


그저 깨나서 울음도 못 울고,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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