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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그린 Apr 16. 2016

커피의 달콤 레시피, 한 방울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 세월호 참사 직 후 썼던 글입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카페가 눈에 많이 띈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 한 큰 카페부터, 아기자기한 북 카페, 친근한 동네 카페 등 몇 발자국 떼지 않아 다양한 카페를 보게 된다.
 
스타벅스나 카페베네 등 큰 카페를 가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커피 향을 즐기고 있다. 메뉴도 다양해서 고르는 즐거움도 있고. 화창한 주말에 친구들과 맛있게 밥을 먹고 나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엔 카페 만한 곳이 없지.
 
가끔 눈에 보이는 북 카페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집에 가져가고 싶은 원목 책장도 있고 책장을 채우는 다양한 책들이 있다. 종류도 각양각색. 만화책부터 잡지, 소설과 시집 등. 폭신한 의자에 앉아 쿠션 하나 안고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혼자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때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동네 카페. 자주 눈에 띄진 않지만 '커피의 쓴 맛', '향기 나는 나무' 등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이름으로 가끔 시선을 잡아끄는 곳. 넓지 않지만 귀여운 보드에 '나 ♡ 누구' 정도의 글로 다녀갔다는 걸 적어둘 수도 있고, 붙임 쪽지 등에 편지를 써서 붙여놓을 수도 있는 자유로운 곳이다. 정형화된 기본 메뉴들 말고도 독특한 메뉴 하나씩 가지고 있어 흥미를 끌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카페를 들어가 보면,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메뉴들이 서로 보아달라고 아우성이다. 깔끔한 아메리카노부터,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 부드러운 바닐라라테나 색도 예쁜 에이드나 시원한 슬러시, 달콤 새콤 요거트까지. 따뜻한 녹차라테 한 잔에 취해 부드러운 봄 향기를 마시는 주말 오후의 여유가 얼마나 즐거운지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럴 때가 있다. 시럽도 넣지 않은 쓰디쓴 아메리카노 한잔 가득 입안에 머금어도 입가에 은은하게 번지는 미소가 넘치는 날. 코를 자극하는 깨끗한 커피 본연의 향기에 저절로 웃음이 터지는 날. 그런 날엔 커다란 잔에서 와구와구 굴러다니는 얼음덩이들이 마치 사춘기 아이들처럼 맑기만 하다.
 
피곤할 때 가끔 찾는 카페모카. 하얀 휘핑크림 잔뜩 얹어서 달콤 쌉쌀하게 즐기는 시간. 향도 좋고 맛도 좋고, 거기에 예쁜 머그잔까지 받아 든 날은 기분이 휘리릭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
 
그런데, 어느 날엔 그럴 때가 있다. 진한 캐러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캐러멜 마끼아또나 사각사각 달달한 요거트를 마시고 났는데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 오히려 정말 진한 아메리카노를 꿀떡 크게 한 입 삼킨 것처럼 끝 맛이 쓰기만 할 때가.
 
같은 공간, 같은 메뉴를 시켜서 먹어도 맛이 다를 때가 있다. 왜일까... 가만 생각해 보면 뭔가가 하나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 행복' 또는 '슬픔'이.
 
요즘 같은 날엔, 보통 '행복'이 빠지고 '슬픔'이 한 백 방울쯤은 들어간 기분이다. 며칠 전 온 나라를 뒤흔든 비극,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손을 맞잡고 TV를 보면서, 가슴 아파 매번 눈물을 흘려대니 말이다. 내 친구, 내 동생,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 있으면서 두려워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그 추운 바다 속을 헤집으며(?) 한 명이라도 살리고자 노력하는 말없는 잠수부들의 묵묵한 등을 보면서. 울며 쓰러지는 부모들의 아픔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함께 울고. 보는 게 힘이 들어 TV를 껐다가도 몇 분 못 넘기고 어김없이 스마트 폰으로 구조 소식이 있는지 검색하게 되고...
 
세상은 봄이라고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대는데,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을 불어 대는데. 어떤 혹독한 겨울보다 무섭게 몰아치는 슬픔들 때문에 가슴 먹먹한 요즘... 내가 마시는 모든 커피는, 쓴  맛뿐이다.
 
어서 빨리, 나만의 달콤한 비밀 레시피, '나의 행복한 마음 한 방울' 넣은 맛있는 커피를 마셨으면...
 
세상은 봄이라고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대는데,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을 불어 대는데. 어떤 혹독한 겨울보다 무섭게 몰아치는 슬픔들 때문에 가슴 먹먹한 요즘... 내가 마시는 모든 커피는, 쓴  맛뿐이다.
 
어서 빨리, 나만의 달콤한 비밀 레시피, '나의 행복한 마음 한 방울' 넣은 맛있는 커피를 마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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