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사람.

by 해와달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내 브런치를 아는 실 지인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내 아픔을, 내 고통을 털어 놓았을 때 두 부류가 있었다.


1. 피하는 사람

2.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


살면서 2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쉽지않다라고 말할 수 없다. 손에 꼽는다.

3x년 동안 난 단 한사람만 있었다고 말할 수있을 거 같다

그 사람이 흘려주는 눈물에 나도 뜨거운 심장이 되었다.

그게 진정한 공감이었고, 그게 치유였다.



대부분은 1이다.

대부분은 1로 버려졌다.


버려졌다라고 쓰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그게 맞으니 그렇게 쓰겠다.


난 앞으로도 브런치를 알려주는 실지인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내 고통과 아픔을 털어놓았을때 꺼릴 것 같은 사람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그런 사람은 끊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어떻게 사람을 다 잘라서 사나…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나라고 남의 아픔을 다 받아들이기만 하고 살았겠는가.

오히려 나도 전자에 가까운 사람임을 고백한다.


내가 너무 아픈 사람이라서,

내 상처가 너무 쓰린 사람이라서,

맞대면 서로 쓰릴 뿐이라서 내가 되려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병자였기에 같은 병자끼리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되질 못했다.

둘 다 의사에게 가야지…ㅎ


아무튼,

나에게 하나의 창구가 되어주는 브런치가 너무 고맙다.

여기에만이라도 나의 서러움을 토해내고 싶다.


나의 짐 같았던 시간들을 이곳에 조금씩은 덜어내고 싶다.


엄마의 짐이었던 나의 시간들을, 이곳에 덜어낸다면

나의 어린시절의 아픔들이 조금은 줄어들까.


줄어든다면 천번 만번이라도 글을 쓰겠다.

쓰고 쓰고 또 쓰겠다.


손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이깟 키보드로 쓰는 일.


몇번이고 쓰겠다.


그래서 종종 암흑 같은 곳에서 혼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서 종종 홀로 엉엉 소리내어 울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서 더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몇번이고 글을 쓰고 싶다.


몇번이고 글로 토해내고 토해내어 나를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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