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로서 살아낸 시간, 그것이 내 리더십의 시작이었다
직장에서든, 팀 안에서든 우리는 흔히 리더가 되는 것을 ‘성장’의 상징처럼 여긴다. 앞에 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리더가 되기 전 ‘어떻게 따랐는가’는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내가 20년 가까이 한 조직에서 활동하며 가장 깊이 배운 것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먼저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는 진리였다. 팔로워십은 리더십의 그림자가 아니다. 오히려 리더십이라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캔버스’에 가깝다. 즉, 팔로워십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으면 성숙한 리더십은 결코 발휘될 수 없다.
나는 ‘한국대학생인재협회’라는 조직을 20년 가까이 섬겨왔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이 일을 쉰 적이 없다. 유산이 되었을 때도, 출산 후 조리원에 있을 때도, 39도가 넘는 열감기로 고생할 때도, 사업이 어려웠을 때도 맡은 역할을 놓지 않았다. 단지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나를 믿고 맡겨주신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코로나 팬데믹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처음으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예상치 못한 안식년 같았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며, ‘성실함’이 얼마나 강력한 신뢰의 자산이자 내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팔로워의 자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따르는 태도’다. 내가 속한 조직의 리더는 확신이 강하고, 방향을 또렷이 제시하는 분이다. 그분의 결정이 언제나 내 생각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지시 앞에서 수많은 질문이 마음속을 맴돌기도 했다. 20대 시절, 그런 질문을 여과 없이 드러내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배웠다. 일단 실행해 보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먼저라는 것을.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분명히 있고, 실행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리더의 의도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따르는 과정을 거치며 내 시야는 점점 넓어졌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함’ 또한 자연스레 자라났다.
나는 또 하나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리더에게는 정직하게 보고하자. 성과를 포장하거나, 불리한 상황을 감추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말하는 건 때로 불편하고, 오히려 내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직함’이 신뢰를 가장 빠르게 쌓는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리더는 결국,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사람’을 가장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리더의 어떤 결정이 조직에 리스크를 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나는 피하지 않고 1:1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단지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결정이 조직 전체에 미칠 영향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받아들여질 거라는 기대를 하기보다는, “팔로워로서 내가 해야 할 책임은 여기까지”라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팔로워십은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돌아보면 나는 단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나를 결국 리더로 성장시켰다.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권한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태도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꾸준함, 진심, 정직, 용기. 이 네 가지는 팔로워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네 가지를 꾸준히 살아낸 사람만이 결국 ‘신뢰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먼저 잘 따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묻고 배우며, 때론 참으며 지켜내는 자리. 그 자리에서 진심을 다해 버텨낸 시간들이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재료가 된다. 내가 자리를 지켜온 시간은 ‘앞에 나서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묵묵히 받쳐주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 팔로워십이 강한 사람이 진짜 리더가 된다.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버티고, 지키고, 책임지는 사람에게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찾아오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