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계산 너머에서 평가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돈은 단순히 생활비를 감당하는 도구가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크기와 관계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에서 지금은 멋진 실무진으로 성장한 리더 한 명이 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팀원 시절부터 매주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사 들고 와 멘토님, 국장님, 동료들을 챙겼다. 실무진이 된 지금도 아이스크림이나 시원한 음료를 사 들고 와 멘토님과 동료 리더들, 대학생들을 따뜻하게 챙긴다. 역시 그는 직장에서도 사랑받으며 일하고 있다. 관계에 있어 지혜롭게 흘려보낼 줄 아는 태도는, 사람 사이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된다.
사람의 진심은 때로 말보다 작은 물질의 표현을 통해 더 선명하게 전해진다. 물론 우리는 돈으로 마음을 재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심은 거창한 선물이나 큰 금액보다, 작더라도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물질관이란 이런 것이다. 자기 수입의 100%를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일부는 관계를 위해 흘려보낼 줄 아는 자세. 마치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듯, 감사와 존중을 담은 ‘관계 저축’도 필요하다. 그렇게 마음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결국 사람도, 기회도 오래 곁에 둘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인생에는 회수할 수 없는 지출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 팀원이 결혼을 한다면 부조를 해야 할까? 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돌려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기꺼이 내는 돈이 있다.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단순한 1:1 정산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금껏 내가 받은 수많은 은혜와 배려를 ‘순환’시킨다고 생각하면 좋다.
종종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감사 표현을 생략한다. “나는 학생이니까.” “형편이 어려우니까.” “작은 선물은 드려봤자 티도 안 나니까.” “저분은 필요한 게 없을 것 같아서.” “저분은 잘 사니까.” 물론 그때그때 사정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사를 생략하고 지나가면, 상대는 당신의 형편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오해는 그렇게 시작된다. 커피 한 잔, 짧은 손 편지, 기프티콘 하나만으로도 감사를 표현해 보자. 감사의 표현을 생략하지 않는 것, 그것이 관계를 풀어내는 비결이다.
또한, 지금 당신이 누군가에게 더 많은 배려와 도움을 받고 있는 위치라면, 그 관계를 절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가진 것의 유무가 아니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감사를 받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다. 선배니까, 부모니까, 스승이니까 당연히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위험하다. 감사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마음의 열매다. 어떤 인사나 선물을 ‘당연한 보답’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그 마음은 교만으로 흐르기 쉽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상대에 대한 서운함은 많아지고 관계는 금세 흔들리게 된다.
이 글은 단순히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그것이 어떻게 관계 속에서 물질이라는 도구로 표현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은 결국, 계산 너머에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