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만으로는 신뢰를 세울 수 없다
지도교수님께서 내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리더와 팔로워 사이는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이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이 말씀은 내가 들은 리더십 조언 중 가장 본질을 꿰뚫는 문장으로 남아 있다. 성숙한 리더는 팀원들과 가깝되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되 단절되지 않는다. 그런 리더 밑에서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팀원들은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팀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이전에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조직'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친밀함은 필요하지만, 그 친밀함이 일의 본질을 가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몇몇 동료들과 퇴근 후 회식 자리가 잦아지며 형·동생, 언니·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자.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공적인 자리에서 피드백을 주거나 냉정한 판단을 내릴 때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그 순간부터 리더십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팀은 또 하나의 조직 안에 존재한다. 전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이 존재하는 것이지, 팀이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팀원들과 너무 친해진 리더는 어느새 '조직의 대변자'가 아니라 '팀원들의 대변자'가 되어버린다. 리더로서 설득해야 할 자리에서 팀원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느라 방향을 잃는 경우도 많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리더십의 무게중심은 언제나 '관계'보다 '방향'에 있어야 한다.
릴레이 경주를 생각해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리 빠르게 뛰어도 감독이 전체 흐름을 조율하지 않으면 팀은 우승할 수 없다. 감독은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첫 번째 주자, 두 번째 주자, 마지막 주자를 배치한다. 그런데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서운해한다면 그 팀은 결코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다. 반대로 감독이 선수에 대한 애정 없이 '돈 받는 만큼만 한다'는 태도로 일한다면, 그 역시 선수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대협에서 오랜 시간 리더들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리더십이 무너질 때 그 이유는 대부분 '거리 조절의 실패'라는 점이다. 리더가 팀원에게 너무 다가가면 기준이 흐려지고,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닿지 않는다. 한 팀장이 있었다. 팀원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사소한 일에도 "그럴 수 있지"라며 공감해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팀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팀원들이 한 명 두 명 개인 사정을 이야기하며 기한을 지키지 않더니, 결국 전체적으로 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는 게 당연시 되었다.
팀원의 이야기에 너무 깊이 공감하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과하게 들어주는 리더는 결국 '팀장'이 아닌 '언니'로 인식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저는 팀장님을 언니로 생각했는데…"라며 서운함이 돌아온다. 리더가 원했던 건 신뢰였지만, 남는 건 오해뿐이다. 일을 해야 하는 팀에서 친밀함이 지나치면 관계는 금세 무너진다. 좋은 리더는 마음은 따뜻하게, 기준은 분명하게 세운다. 팀원이 실수했을 때 "괜찮아, 다 그럴 수 있지"라며 위로로 끝내지 않는다. "~한 부분은 네가 놓친 게 맞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일을 마치고 다시 한번 체크하는 습관을 들여봐." 성장의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사정이 있었겠지."라며 잘못된 태도를 못 본 척 넘기는 리더십은 한순간 편하지만, 결국 팀 전체의 생산성을 저해한다. 이는 리더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기준은 지키되, 전달은 부드럽게"라는 리더십은 처음엔 차갑게 느껴져도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를 만든다. 리더십은 정(情)이 아니라 공정(公正)으로 세워진다. 공정함은 친밀함의 온도를 낮추지만, 오히려 관계의 온기를 오래 유지시킨다.
리더가 거리를 두는 이유는 차가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팀원이 흔들릴 때 리더까지 함께 흔들리면 둘 다 길을 잃는다.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팀을 사랑하되, 원칙으로 이끌라. 그 두 가지를 함께 붙드는 리더가 결국 오래간다. 겉으로는 단호하지만 그 마음의 중심엔 사랑이 있고, 겉으로는 멀어 보이지만 팀원은 리더의 마음속에 있다. 그런 리더 밑에서 사람은 자라고, 팀은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