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과 의존을 구분하지 못하면 팀은 흔들린다
회의 중에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들어보고, 그중 설득력 있는 의견이 나와 자연스럽게 방향이 잡혔다면 이는 굉장히 이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의 회의는 늘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의견이 흩어지거나, 썩 와닿는 안이 나오지 않거나, 때로는 침묵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팀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두는지, 아니면 책임지고 생산적인 흐름으로 전환하는지에 따라 팀의 방향은 분명히 갈린다.
리더가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은 팀원들을 재촉하거나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왜 아무 말이 없냐", "생각 좀 해오지 그랬냐"는 말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길이 막혔을 때 필요한 것은 질책이 아니라 방향 제시다. 이 말은 팀원들의 의견을 듣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협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협업과 의존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방향 설정과 돌파의 책임까지 팀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과하다. 그런 팀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긴다.
의견이 나오지 않을 때, 리더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답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고의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막힌 흐름에 작은 균열을 내고, 다시 팀의 생각이 움직이도록 돕는 역할이다. 리더의 한마디가 회의를 살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많은 팀원들은 이미 운영에 상당한 에너지를 쓰고 있다. 주어진 과업을 안정적으로 굴리고, 현장을 관리하고, 반복되는 실무를 책임지는 데 집중한다. 이미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발상을 요구하는 것은, 달리기를 마친 사람에게 다시 전력질주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구조를 바꾸는 아이디어나 새로운 수익 모델까지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이는 팀원들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다. 리더가 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팀은 점점 지쳐간다.
운영을 맡은 사람과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구분이 흐려질 때, 리더는 팀원들을 저평가하게 되고 팀원들은 점점 위축된다. "우리 팀원들은 창의적이지 않다",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
나 역시 한대협을 20여 년간 운영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트렌드에 맞는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역할은 대부분 내가 맡아왔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팀원들이 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한 적은 없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성은 축적된 경험치와 연륜에서 비롯된 여유에서 나올 때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디어는 내가 던졌지만, 그것을 실제 프로젝트로 만들고 현장에서 굴려낸 것은 늘 팀원들이었다. 방향은 위에서 만들어졌고, 실행은 아래에서 완성되었다. 이 균형이 유지될 때 팀은 오래간다.
길이 막혔을 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모든 답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책임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리더라고 부른다. 협업은 나누되, 책임은 나누지 않는 것.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팀을 흔들림 없이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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