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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하다'는 메시지가 남긴 후유증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불행에 더 취약해지는 이유

by 리더십마스터 조은지멘토

'나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는 분명 따뜻하다. 사랑이 많은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며 들었던 말들,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그 말들은 어린 시절의 나를 지켜줬고 세상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꽤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문제는 그 믿음이 삶이 힘들어지는 순간 나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혼 초반 남편과의 관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 그중 하나는 남편의 거짓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악의라기보다 어릴 때부터 굳어진 습관적인 방어 방식에 가까웠다. 갈등이 생기면 숨고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비틀어 말하는 오래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 전의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당시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는 것이었고 곧이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 순간부터 불행감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문제를 넘어 이 일이 나의 가치에 대한 문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데, 사랑받아야 할 사람인데,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왜 이런 관계 안에 놓여야 하느냐는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을 꽉 채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고통의 상당 부분은 사건 자체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으면 안 된다'는 해석에서 나왔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이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버틸 힘을 얻었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시간은 분명 소중하고 평생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 다만 그 사랑이 어느 순간 '나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로 굳어질 때 문제가 생긴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나만의 그릇된 기대가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망가뜨린 셈이다.


그 기대를 전제하고 관계를 맺으면 삶의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으로 지나가지 않는다. 특히 결혼 초에는 서로의 결핍과 방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건 많은 부부가 겪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그 현실은 더 부당하게 느껴진다. 같은 문제도 더 아프고 같은 상처도 더 깊어진다. 단순히 '힘들다'에서 끝나지 않고 "나에게 일어나선 안 될 일"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이 붙는 순간 불행감은 배가된다. 문제 그 자체보다 내가 이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거짓말은 나를 덜 사랑해서라기보다 그 사람이 배워온 미숙한 생존 방식에 가까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에 대한 무시'로만 해석한 나의 관점이 내 마음을 더 괴롭혔고 상황을 더 단단하게 굳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은 삶이 잘 풀릴 때는 자존감이 되지만 삶이 어긋날 때는 불행을 증폭시키는 기준이 되는 듯하다. 나는 더 잘 대우받아야 하고 나는 이런 종류의 상처는 겪지 않아도 되고 나는 이런 실망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기준 말이다. 하지만 삶은 그런 기준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도 관계도 인생도 대부분은 미성숙한 사람들끼리 부딪히며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이것은 실패라기보다 현실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 상황이 더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불행의 크기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상황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지만 항상 보호받는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 이걸 받아들이고 나서야 삶은 조금 덜 억울해졌고 관계는 조금 더 숨 쉴 틈이 생겼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특별하다'는 메시지가 남긴 후유증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예외로 두고 살아왔을 때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걸 알아차린 뒤에야 나는 비로소 현실 속에서 덜 아프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isaac-quesada-u181sbSXBm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Isaac Ques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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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 한국대학생인재협회에서 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마케팅, 영업, MD 등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두아들의 엄마이자 12년째 개인 사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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