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느슨해지는 이유
나는 이 원리를 책에서 배운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생활이 먼저 증명해 줬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당시 조기 졸업을 목표로 학점을 빡빡하게 채워 들었다. 팀 프로젝트도 많았고 그 시기에 인턴도 병행했으며 한국대학생인재협회 대외활동도 함께 했다. 하루는 늘 쪼개져 있었고 빈 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학점이 가장 좋았다. 만점을 기록했고 해야 할 일이 많았음에도 과제를 마감기한보다 훨씬 전에 끝냈으며 시험 준비도 착실히 했다.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좋았다.
반대로 내가 가장 여유로웠던 학기가 있었다. 1학년 2학기. 수업 부담도 크지 않았고 병행하던 활동도 그리 타이트하지 않았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됐으니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학기에 내 학점이 가장 낮았다. 내가 기록해 온 학점 중에서 말이다. 공부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고 일부러 느슨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많았을 뿐이다.
시간이 많아지면 사람은 더 성실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가 될 때가 많다. 왜일까.
시간이 많으면 '나중'이 가능해진다. 오늘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내일로 미룰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긴다. 그 작은 여지가 반복되면 생활이 느슨해진다. "조금 더 있다가 해야지" 하다가 "오늘은 쉬어도 되지"로 변한다. 어느 순간 그 여유로움이 게으름이 될 때가 많았다. 여유가 생기면 집중력이 따라올 것 같지만 사람은 의외로 여유 속에서 집중을 잃는다. 자꾸만 시작이 미뤄지고 마감 기한에 닥쳐서 일을 마무리하게 되어 자책하는 마음이 들면서 스트레스는 더 심하다. 결과적으로 하는 일의 총량이 줄어든다.
반대로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르게 움직인다. 선택지가 줄어든다. 지금 이 시간 안에 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고민보다 실행이 앞선다.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 지금 가능한 최선을 선택한다. 그러면 속도가 붙는다. 의외로 결과도 나쁘지 않다.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한을 잘 엄수하며 심적 압박감이 덜하다. 전반적으로 업무가 더 빠르고 더 완성도 있게 마무리된다.
이 원리는 지금의 삶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집안일을 해도 그렇고 일을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정이 빡빡한 날이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해낸다. 바쁜 날에는 시간 하나하나가 아까워서 집중이 생기고 불필요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무엇보다 바쁘다 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자세로 앉아 있게 된다.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는 데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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