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대화에서 이유를 덜 묻는 연습
기획을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왜"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왜 이 방식이 최선인지. 기획안에서 why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사람은 기획의 본질을 아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기획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연스럽게 이유를 묻는 데 익숙하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근거를 찾는다. 이 태도는 분명 기획의 세계에서는 강력한 무기다. 문제는 이 무기가 일상 대화에서도 그대로 사용될 때다.
일상에서 매번 이유를 묻는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금세 피로감이 쌓인다. 무슨 말을 해도 "왜 그렇게 생각해", "왜 그 선택을 했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처음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화가 점점 피곤해진다. 말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해명하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장면은 가정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아이가 약속한 일을 하지 못했을 때다. 부모는 묻는다. "왜 아직 안 했어". 아이는 잠시 말이 막힌다. 사실 아이도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귀찮았을 수도 있고 하다 말았을 수도 있고 그냥 미루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왜 미리 하지 않았어", "왜 매번 이래". 이 대화는 상황을 정리하기보다 아이를 점점 말문 막히게 만든다. 아이는 반성보다는 변명하기 급급해지고 부모는 이유를 들을수록 더 답답해진다. 이때 필요한 건 이유를 캐묻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한 대화다.
친구 사이에서도 비슷하다. 약속에 늦은 친구에게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묻는 것까지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과를 했는데도 질문이 이어지면 분위기는 차갑게 식는다. "왜 미리 연락 안 했어", "왜 항상 그래". 그 순간부터 대화는 취조가 된다.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며 긴장감이 돈다.
조직 안에서는 이런 장면이 더 자주 나타난다. 조직의 방침이나 리더들의 말 중에는 내 시야와 내 지식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배경과 맥락을 다 말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고 아직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있기도 하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유를 계속 묻는다면, 그 질문은 합리적이기보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 이유를 묻는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이라기보다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질문이 틀린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타이밍, 경우가 어긋난 것이다. 기획에서의 why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질문이지만, 관계에서의 why는 상대에게 준비되지 않은 설명을 요구하는 무례함이 되기 쉽다.
기획의 why는 논리의 언어다. 반면 일상의 대화는 논리보다는 감정의 언어일 때가 많다. 어떤 선택들은 설명하기 쉽지 않고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차이를 놓치면 우리는 기획의 언어로 사람을 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때로 why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해가 완전히 되지 않아도 일단 받아들이는 연습,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견디는 연습 말이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무관심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는 질문을 줄이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된다.
기획의 why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질문을 던질 자리를 가려야 한다. 회의 중에는 환영받는 질문일 수 있지만, 관계 안에서는 한 발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질문하고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 그것이 기획을 잘하는 사람에서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넘어가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일상 대화에서 이유를 덜 묻는 연습은 논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를 쓸 곳과 내려놓을 곳을 구분하는 감각을 기르는 일이다. 그 감각이 생길 때, 우리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으로도 오래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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