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인문학

첫장에 쓰는 시

by writernoh


잠자는 집시


사막에 뜬 달이 소리없이 웃는

고요한 달밤.

풍파에 잠든 여인이 곤히 잠들어 있다.

그녀를 덮어줄 이불은

사막의 모래바람, 하늘 이불은 너무 먼 곳에 이른다.

검은 피부의 화려한 줄무늬 원피스, 거친 붉은 머리칼,달빛노래를 담는 항아리에 오늘도 한 줄 글이 담긴다.


삶길이 아직 남아 달빛에 침잠한다. 굳게 쥔 지팡이를 놓치지 마라.

그녀를 지탱할 다리이자

사자를 쫓아낼 무기이다.

관념 속에 끝까지 지켜낼 그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

황량한 사막의 유일한 위로자이니

보이지 않는 사자의 입김과

목마른 세파가 소리없이

이불덮을 때

조용히 일어나 만돌린을 타며, 너의 목소리를 내어라.

검은 사자도 너를 어쩌지 못하리!

집시여인아~깨어나거든,

밤사이 꿈에서 부른 너의 노래를 거기 담아라.

너의 고됨을 씻겨줄 생명의 물로 너를 채우리!

앙리 루스의 1897년 그림을 보고!



이별을 고하기 좋은 새벽이었다.

내 화분에 다시 힘을 타고 줄기를 뻗는

산세베리아는 지팡이처럼, 다행이다. 위로를 준다.


또 다시 이별을 하다니

이제는 없을 줄 알았던 그림자가

미련을 떨치고 헤쳐가야 하는 날이다.


너는 왜 그 부조리를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가

달리 거절할 방법이 없어서이다.

시지포스의 신화처럼 굴레는 벗을 수 없는 루틴이 되어버렸다.


집시처럼 나그네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운명이라면, 지팡이라도 쥐고

부서지는 몸을 일으켜 걷고 또 걸어야 하리.


사자의 서를 담는 항아리가 되기 전,

그곳에 인생의 서를 좀 담아보자.


누구든 고달프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박홍순의 책, 미술관옆 인문학(2011)을 넘기자마자 집시여인이 나왔다. 마치 오늘의 나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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