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s가 나더러 그 책 읽어 봤냐고 물어보며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시종일관 욕만 하고 사고만 치는 그 녀석의 이야기가 청소년 필독서까지 되어야 하느냐고 의미를 모르겠다고 했다. 게다가 제목도 왜 호밀밭 파수꾼인지 전혀 종잡을 수 없고 어디서 보니 우연히 그냥 갖다 붙인 거라더라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s의 책 편력에 대해 좀 지겨워져 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내 리스트 중 하나인 책에 대해 악평을 하는 것을 봐서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벌써 오래전부터 몇 번을 읽다가 내려놓고, 미뤄뒀던 것이 이렇게 다시 동기가 발생되었다. 그럼에도 다른 책들에 밀려 좀처럼 잡히지가 않았는데, 작은 아이가 이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드디어 주문을 한 것이다.
1950년 즈음의 미국. 고등학생인 홀든은 생의 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네 번째로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지점에서 뉴욕 집으로 귀향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를 떠나서 아직 부모님의 슬하에서 힐난받을 것과 그들을 상심시킨다는 부담은 아닌 척 해도 겪어내기 무척 힘든 것이었다. 형은 이미 잘 나가는 소설가이고 똑똑한 동생 앨리는 얼마 전 사망해 가족의 상흔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둘째인 자신은 가슴속에 솟아오르는 열정이 좀 안 풀린다는 이유로 학교 성적 부적응자가 되어 번번이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중산층 자녀로 부모님 덕에 명문고에 다니기는 하나 명문학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교정이라기보다는 허식과 권력에 절어 차별과 폭력이 정의를 갉어먹는 모습이 난무한다. 약한 자는 매를 맞고 쓰러지는 꼴을 보아야 하는 자신도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부정의에 가식과 모순을 뒤집어쓰고 나름 방황하는 십 대의 무게를 아무와도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옮기는 학교마다 번번이 퇴학을 당하며 중산층 가정 둘째 아들의 방황이 집에서는 이미 사고(事故) 뭉치로 낙인 되어 그리 당당한 입장은 아니었다.
게다가 펜싱팀 주장으로서 팀을 인솔하여 경기를 가다가 그만 펜싱 도구들을 지하철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체면은 물론 선수들 지탄의 끝에 왕따가 되어 감정은 완전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지금 그의 상태는 될 대로 되라였다. 정신없이 지하철 노선을 찾다가 펜싱칼과 투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도피였을까! 지하철역에 걸린 1달러짜리 사냥 모자를 산다. 그 빨간 모자를 뒤집어쓰면 자기의 실수를 다 만해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숨고 싶었던 모양에 가깝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폐만 끼치는 자신이 쪽팔려서 존재를 감추고 싶은 것. 일탈을 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홀든은 외모도 출중하고 키도 185센티미터쯤 되며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히 성인 흉내를 내어도 된다고 최면을 걸었다. 이미 책임지는 것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태니까. 생각마저도 어디 술집에 가서 좀 마셔도 되고 심지어 여자를 취해도 되겠다는 허세가 발동한다. 담배를 피우면 마치 자기가 성인이라도 된 듯 착각하는 것처럼.
지금 그의 사고(思考)가 온통 꼬여있는 것처럼 세상도 꼬여 보인다. 마음에 드는 이가 하나 없고 모든 것이 부조리처럼 보였다. 이번에 펜시고등학교에서도 과목낙제로 퇴학을 당하며 꼴사나운 기숙사 친구를 그냥 못 봐주고 시비가 붙었다. 주먹다짐까지 벌이고 퇴거를 며칠 남기고 탈출하듯 뉴욕행 기차를 탔다. 기숙사에서 도망치듯 나오는 날도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을 자극하여 물씬 얻어맞고 나오게 되니 비참함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앙갚음이었다. 뭔가 어그러진 세상에 대한 처세였다. 망가지고 삐뚤어지는 것이.
집으로 바로 갈 수는 없었다. 아니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인내심과 자기의 입지가 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니와 스스로도 자기의 바보 같은 행동들에서 올무를 벗어나지 못함이 비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색욕처럼 갈구하는 애정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든 누구 와든 대화를 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성장하며 잠시라도 마주쳤던 따스함과 온정적인 누군가에 기대어 그에게 숨고자 하나 너무 잦은 싫증과 타인의 지향에 대한 공감능력 부족으로 그는 또다시 화내고 도망치고 숨는다.
더 이상 세상에 뭐 두려울 것 있을까 싶은 좌절에 가족과는 멀어지고 알리고 싶지 않은 이번 퇴학 사건은 암묵적인 침묵과 도피를 통해 순간을 모면하려 하는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짓말과 허세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그녀를 조심스럽지 못하게도 울리는 과정에서 그는 조바심 강한 자기 에너지로 내면의 밝았던 이상과는 반대로 점점 거칠어지고 초라해진다.
우쭐했던 기세와는 달리 세상은 그에게 사기를 치고 폭력적으로 몰아붙인다. 호텔 창녀 사건도 그에게는 어설픈 청소년의 객기보다 약자에 대한 세상의 짓밟음이었다. 어리숙함을 아닌 척 가장해도 굶주린 늑대들의 눈에서는 그가 아직 순진한 양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타깃으로 삼는다. 그러면 그는 또 그 과정에 울분 조차 가지지 않고 두렵고 억울한 세상에 심지어 경찰에 고발도 못하고 자기 올무에 또 빠져든다.
여성에 대한 허세도 여기저기에서 구멍 나고 세상에 발길질을 하려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상처 나고 망가져간다.
거리를 떠돌며 백혈병에 걸려서 죽은 동생 앨리만 곁에 있었어도 자기가 방황하지 않을 것 같은 지푸라기 같은 푸념에 현실과 점점 멀어진다. 그나마 형제에 대한 짙은 향수와 연민으로 영특하고 사랑스러웠던 남동생의 선하고 순진했던 삶에 언저리에 위태롭게 서있는 자기 삶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잘 맞았고 사랑스러운 동생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의 마음속에 좋은 인간이란 누구인가 생각한다. 지푸라기를 잡는 신호이다. 이전 학교에 다닐 때였다. 자기보다 소심한 아이 제임스 캐슬이 홀든에게는 말을 걸어왔다. 심지어 자신의 터틀넥 셔츠를 빌려가 입은 그날이었다. 그 아이는 초식동물을 쫓는 육식동물처럼 찌질한 무리들이 찾아가 협박하고 을러대나 그의 방에서 자신의 말을 취소하지 않고 버티다가 기숙사에서 창밖으로 떨어진다. 홀든의 셔츠를 입은 채 위협에 쫓기던 그 아이는 자존심을 지키다가 사망했다. 아이의 피 묻은 시신을 부둥켜안은 앤톨리니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그나마 하나 남은 세상의 신뢰를 가졌다. 제임스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은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공 홀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가 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염세적 사고를 가졌는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획일화된 강권에서 강자들은 쉴 새 없이 자유로운 영혼과 나약해 보이는 이들을 쪼아대고 거기서 살아남아야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12월 도시의 한밤은 냉기 가득하고 공중화장실에서 찬물에 머리를 적신 소년은 자기를 학대하고 있다. 갈 곳이 없다.
이전 학교에 다닐 때 제임스 사건으로 나름 정의롭다고 여긴 앤톨리니 선생을 찾아가 자신의 퇴학과 비행을 고백하고 잠시 세상에 속죄를 구하고 싶었다. 역시 그는 홀든을 따듯하게 맞아들인다. 그러나 한밤 중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의 손길에서 청소년적인 보수적 성지향에 아니면 아직 순순한 영혼이라는 방증으로 그에 대한 심적 반발이 강렬하게 일어난다. 그래도 정의롭다고 믿었던 선생에게 다시 적의를 느끼고 도망쳐 나온다.
홀든은 왜 여성에 대해서는 나이를 초월하여 성적 접근을 과시하는 반면 당시 금기로 여겼던 동성애에 대해서는 혐오하는가? 지금의 시각으로 너무 순수하게 비칠 만큼 또 강하게 선을 긋는다. 그것은 홀든 자신도 진짜로 일탈하고 싶지 않은 동아줄을 잡고 싶은 심정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마도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자기 세계의 분열을 수습하지 못하는 청소년에게 부모에게 반항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형편없는 생활 속, 적어도 하나의 금기는 성적 문란은 지양한다는 것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도 그 시절에 쌓아놓은 교양의 허세의 한 축일 뿐. 사회화되어가는 교육과정을 답습해야 한다는 기득권의 보수적 시각일 뿐이다. 더욱이 벼랑 끝에서 찾아간 앤톨리니 선생은 학교의 의미에 대해 강조하며 학업을 이어갈 것을 강조한다. 모순이다. 홀든은 벼랑 끝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무지한 집단의 권력 속에서 더 이상 살아있는 생동의 의미를 못 느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이 닫혀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돌아가야 할 곳은 가정이어야 한다. 구원의 그곳이 가정이었을 청소년에게 이미 룰을 깬 그는 가정에서도 체념에 가까운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는 했다. 집으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청소년 홀든은 남모르는 곳으로 가 조용히 살고 그러다가 조용한 여인을 만나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를 세상과는 격리시켜 살게 하고 싶어 한다.
도대체 그에게 현실감은 어디로 갔는지 세상이 그에게 무엇을 했는지 알아봐야 할 때이다. 그러나 차가운 겨울밤 거리를 헤매는 아이는 행복했던 시절로 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은 게 진실이다. 죽은 남동생의 환영에서 현실도피를 하고자 환상을 보고픈 극한에까지 몰려 차가운 도시를 방황하는 이 소년에게 성냥팔이 소녀처럼 마지막 희망이 단 하나의 보루가 떠올랐다. 어린 여동생 피비였다. 그 아이는 아직 홀든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란 것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냉담한 부모를 피해 몰래 내통할 수 있는 달콤한 매개자 피비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그녀는 어린 아이이지만 이미 오빠 하나를 잃고 가족의 상처를 함께 안고 있는 성숙한 어린아이였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해주던 둘째 오빠가 다시 퇴학을 당하고 부모에게 받을 지탄을 생각하니 베개 밑에 머리를 처박고 함께 좌절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집을 나갈 오빠를 위해 자기의 짐가방을 끌고 나타나더니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전재산 8달러 몇 센트를 이미 오빠에게 아낌없이 다 넘겨주었다. 주인공에게 얼마나 축복스러운 존재인가. 당신은 이런 존재가 주변에 있는가? 홀든은 아무도 주지 않은 위안과 사랑을 그녀를 통해 되찾는다.
이 모든 동생의 일탈을 전해 들은 이 집 장남 D.B는 부랴부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다 말고 날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첫 장면이, 주인공 홀든이 절대적 우상인 형 앞에서 이제까지의 일들을 주절주절 고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남매들은 위대한 것.
아무리 세상 살기 치사하고 짜증 나도 이렇게 붙잡아줄 인간 하나는 어딘가에 있어야 하건만. 삶은 너무 빡빡하다. 잘난 척 하지 말고 숙여야 할 이에게는 좀 고분고분해져도 되는 이런 이가 있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먼저 준 사랑에서 전제된 것. 이 논리를 성장통 중에 깨우쳐야 할 것이 아닌가.
홀든은 피비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라는 노래를 예전에 한 아이에게서 들은 대로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 말하며 꼬마들이 호밀밭에서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아이들이 놀다가 만약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재빨리 붙잡아 주고 싶다고. 애들이란 앞뒤 생각이 없이 마구 달리니까. 자신은 호밀밭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가슴이 시렸다.
이제껏 만난 세상의 좋은 사람들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황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이 말을 들은 누구라도 호밀밭 파수꾼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홀든의 파수꾼은 여동생 피비였다.
지난 화요일 기말고사를 보고 온 우리 집 장남은 영어 시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결과를 확인하고 좌절한 17세는 제 방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쌍욕을 해대고 있었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조짐에 놀라 들어가 울그락붉으락 사납게 변해버린 부슬부슬 곱슬머리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는 뒤집어질 것 같았으나 마인드 컨트롤로 감내했다. 쟁일 영어만 공부했는데 바닥이란다. 붉은 얼굴빛과 마치 세상이 자기를 속이기라도 한 것처럼 불끈해 선을 넘는 이 자식에게 뒤통수를 한 대 갈기며 엄마로서의 즉결심판을 내리고 싶었으나 곧 그 방을 나왔다. 잠시 후 카톡을 날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좌절하지 말고! '
이 놈이 민망하게 바로 확인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거실로 나와 나를 향한다.
내 집도 185센티미터의 뒤통수만 보면 육중한 어른이나, 돌려놓고 보면 솜털 가득한 아직 청소년인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아까와는 달리 서글서글하고 물기로 빛나고 있었다.
홀든은 연로한 역사 선생님을 방문하고 나서 더 욱 혼란스러웠다. 적어도 나이 든 분의 자책보다는 인간적인 뭔가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번번이 보아왔을 억압에 대해 펜시라는 명문고등학교에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처절한 염세에 대해 나름 벗어날 무엇은 기존의 세대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홀든이 지하철에 펜싱 도구를 몽땅 놓고 내린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열심히 노선을 확인을 하느라 물건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책임만 묻고 있는 현실이 수습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으로 학습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지하철 역에서 빨간색 사냥 모자를 사서 쓰고 다녔다. 자기 숙소로 돌아와 천연덕스레 책을 읽는다. 그러면서 존경하는 작가 형 D.B를 떠올리고 토마스 하디의 소설'귀향'을 떠올린다. 그리고 손에는 '아프리카 탈출'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