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데스데모나를 위하여

by writernoh

▸통일신라의 염장은 장보고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갑자기 칼을 꺼내어 장보고의 가슴을 찔렀다.

▸로마제국의 패권을 쥔 카이사르는 모든 것을 갖추었음에도 불구, 원로원이 사주한 양아들 부르투스의 칼에 등을 찔렸다.

▸인류의 수난사인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제자 유다는 그와 같은 그릇의 포도주에 빵을 적셨다. 그리고 다음날 스승을 백인대장에게 넘겼다.

▸또 누구, 가장 믿었던 자로부터 배반을 당했을까?

철원 고석정, 임꺽정이 은거 했다던 바위

이아고라는 아첨꾼을 만난다면 어떻게 그를 알아볼 수가 있을까. 그는 누구의 앞에서나 상대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그 혀 속에 생각지도 못한 간계가 들어있다. 그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면 엄청난 분노를 느끼며 후회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데스데모나를 잃은 후라면 돌이킬 수 없다.


불신이 지배하는 것은 서로의 탐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무지 때문이기도 하다. 교언영색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우쭐해 있던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타인의 적극적 다가옴에 대해 의심만 할 수가 있는가.

이아고의 내면에는 질투와 복수, 이간의 불타는 악이 타오르고 있다. 이러한 사이코 이간자에게 놀아난 오셀로는 정숙하고 진실한 여인 데스데모나를 잃고 만다. 왜 그는 사악한 이아고를 신뢰했는가 생각해보면 오로지 그의 교언영색과 거짓에 감쪽같이 넘어간 ‘달콤함의 신뢰’가 가장 크다. 이 달콤함의 본질은 성공과 불안,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상의 패권주의이다.


심지가 단단하지 못했던 순간의 불꽃같은 사랑은 착각을 일으킨다. 장군으로서 성공과는 달리 무어인이라는 심리적 압박을 가진 오셀로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아름다운 여인 데스데모나는 흑백을 초월하는 두 세계의 강력한 전리품이었다. 또 무어인이라는 당시 지배층이 아닌 비주류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는 용맹을 떨쳐 무장으로 인정받음에도 불구 간신의 혀를 가려내지 못했다. 뱀 같은 혀는 최고를 고집한 그의 귀를 살랑거리기 충분했다.


물론 스페인 그라나다 남부 코르도바의 이슬람 문화와 역사의 과정은 무어인들의 권력을 충분히 가늠케는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이라는 작가의 전지적 배경에서 무어인은 영원한 이단자일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당시의 세계의 통념이 특출 나고 개성 있는 그 누구를 세상에 승리자로 인정하기에는 모질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모난 돌을 굳이 정으로 쳐내고야 마는 인간사의 못난 편견이기도 하다. 장군으로서 그는 훌륭했지만 백인 사회에 섞인 유색인이었다. 그는 영원한 순혈주의의 편견 세상에서 기를 펴기 힘든 세계관의 한 면인 것이다.


그의 부관 카시오 역시 이아고의 간계를 알아보지 못하고 간계의 함정에 빠져 몰락의 길을 가다가 간신히 살아남는다. 오셀로가 카시오의 능력을 인정해 2인자로 올려준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 이아고의 먹잇감이 되었고, 결국 그를 상관의 아내와 놀아난 배반자로 몰아 제거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카시오가 이 그물에 걸린 것은 그가 ‘잘 생긴 백인남자’였다는 점도 한몫 기여한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쇼는 검은 피부를 가진 오셀로를 사위로 맞기 거부했다. 오셀로가 카시오의 외모를 가졌다면 브라반쇼가 딸의 결혼에 충격을 받았을까? 이쯤 되면 오셀로의 자격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 셰익스피어의 콤플렉스까지도 추론할 수 있다.


아랍계 무어인인 오셀로는 투르크를 상대로 승리해 키프로스를 얻었지만 결국 섬의 총독은 카시오에게 넘어간다. 오셀로의 무의식의 속 그림자에서 카시오를 질투할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이용한 이아고의 혀는 오셀로의 불안한 마음에 한층 불을 지피기 적절한 쏘시개였다. 물론 이 비극 이후 카시오는 살아남아 오셀로 대신 총독이 되어 그의 명예는 회복된다. 작가의 구도는 한 무어인의 성공을 어둠의 흔들림으로 비극화시키고 만 것이다. 비극의 소재로 상당히 흥미롭고 그럴듯한 배경을 지닌 것이었다.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 만약 오셀로가 이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떠나 한 여인을 충실히 사랑해야만 한다. 그녀가 반드시 흰 피부를 가진 젊은 여인이며 아름답고 순결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동반자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오셀로는 누구나 매력 있어하는 인기 있는 겉모습의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결국 자기를 극복하지 못한 심지는 짧아 쉽게 꺼져버린 것이다.


가엾은 데스데모나는 기존의 통념을 벗어나 진실로 오셀로의 인생과 그 자체를 사랑했지만 배반당한 것이다. 강력히 반대한 브라반쇼의 우려는 기우가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실로 사랑은 실체적인 편견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오셀로의 귀가 좀 더 두꺼웠더라만, 그리고 그의 여인에 대한 폐쇄적 정조 관념이 시대를 초월했더라면 이들은 비극의 아닌 희극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무어인이라는 매력을 당당히 내세우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백인 주류 집단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 덩어리의 실패작 인생이었던 것이다.


본성이 타락한 이아고는 오셀로와 카시오에게 서운함을 갖고 모략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서운함은 핑계일 뿐이다. 그는 기초부터가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이코였다. 카시오에게 내정된 부관의 자리를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한 기수 이아고의 모습이 누군가를 질투하는 인간 모두의 속 모습과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아고처럼 모략질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도덕성의 존재 이유이다. 반면교사로 기억해야 한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과 노력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건전한 승부욕보다는 모략과 이간 그리고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패배자일 뿐이다. 이 비극 속에 투영되는 자신을 보며, 오셀로의 비극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러한 유혹의 순간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가를 깨달을 것이다. 그러한 판단력을 갖느냐 또는 비굴하게 몰락하느냐의 순간이 시시각각 인생에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물욕을 위해 타인을 몰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종종, 당신 앞에서 그의 험담을 늘어놓고 자신은 선한 피해자인양 거짓 위선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도처에 드러나는 시비의 근간으로 진화해 우열과 보상을 논하고 있을 것이고 여전히 대중의 귀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한 셰익스피어는 오셀로를 통해 인간 욕망의 우매함을 드러낸다. 이 책이 막장 드라마의 원형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성을 통찰하는 고전인 까닭이다.


그러나 간교한 위선자보다 한심한 것은 그 위선을 알아보지 못하고 눈이 멀어진 오셀로 자신이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이아고의 사악한 혀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의 운명을 비극으로 나아가게 한 본질이다. 수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타인의 혀로 놀아나게 방치하고 진정성을 바라보지 못한 잘못은 비극으로 끝나버렸다. 가끔은 느슨하기보다 탄력 있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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