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항아리

중년의 친구들을 위하여

by writernoh



나이 듦 항아리

한 10여 년 전 회사에 소속되어 다닐 때
국장이 참 세련되고 목표 달성 투철한, 지금의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녀는 나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출근했을 때
'이제야 출근 복장다운 복장을 하셨네요!'하고
내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상당히 당황스러윘던 나는,
그럼 이제껏 내 복장은...

후줄근한 홈패션으로 보았나?

내 옷차림이 뭐 그녀처럼 한번 봐도 느낌 커리어우먼이고 샤프해 보이지 못했던 건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일의 특성상 혼자 작업을 할 때만 편한 복장이었고, 팀 미팅을 할 때도 예의 없는 복장은 아니었을 텐데..
이게 칭찬인지 뭔지 떨떠름한 채 지나왔습니다.


또 언젠가 국장이 면담하자 했을 때는 시루스 블라우스를 뒤집어 입은 일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해요^^ 일부러 그런 건 당연 아니지요. 실수요 실수.
국장과 면담을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깔깔 대고 웃으며
"어 이게 뭐야! 푸하하 깔깔"
큰 소리로 깔깔 웃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가 그땐 그렇게 가식적으로 들렸습니다. 평소의 교양은 간데없고 친근감의 표시인지 비웃음의 연타인지 내 팔뚝에 뒤집혀 재봉선이 보이는 1센티 폭의 긴 어깨 시접선을 가리키며 웃더랍니다. 나도 그게 겉인지만 알고 깊이 보지 않고 쑥 입어 속아버린 내 옷 스타일에 민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는 아예 날 그런 사람-옷도 스타일도 입을 줄도 모르는 그러면 아마추어 사람-으로 본 것 같습니다.


패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없어 집에서 입는 것보다는 조금 신경을 쓰고 외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겉모습의 화려함은 중요하지 않은 나였지만 코앞에서 깔깔대는 사람과 넉넉히 마주하여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망해서 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허황된 깔깔댐이 나를 살려주어 내쪽에서 큰 자극이 되진 않았고 역시 나를 누르고 싶은 그녀에 대한 선입견은 고정되기만 했을 뿐이지요.

내 영혼의 관심사가 그녀와 같지 않았기에 그녀의 민감한 부분이 내게는 덜 다가왔고 모쪼록 일하며 동료와 고객에게 혐오를 준 적은 없으려고 약간의

신경은 쓰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자부했지요.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되니 그녀의 깔깔댐보다 그녀의 다른 말도 떠오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줄 아세요?

살려고 그러는 거예요, 살려고~

그러니 여러분은 재테크 잘해서 나이 들어 돈걱정 없이 사세요~~'


그랬습니다. 그때는 저분이 치열하게도 산다고 이해했습니다. 실적 올리느라 애쓴다 여겼지요. 그 말이 너무 상투적이라 돈밖에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그녀를 그런 사람으로만 여긴 것이고 그가 원하는 대로 일에 협력도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그러니 이별했겠지요.


이제 확실 중년에 접어든 저는 아침에 동네 한 바퀴 운동을 하고 일부러 거리를 돌아 돌아 시장을 거쳐 양파와 토마토 같은 청과류부지런히 사 들고 다닙니다. 예전에 누가 말했듯이 건강 찾아 살려고 말이지요.


1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노화로 어느덧 담주에는 어디 병원에 다녀와야겠다. 이런 계획이 늘고 먹는 약도 늘어 실제 종합병원이 되어 근육의 재생을 기다리는 삶이 되어 있더란 말이지요. 아, 젊음은 벌써 나를 떠나려는가 싶어 살짝 우울에 접어들려 하지요.

몇 해 전 소설을 읽는데 '44세의 중년의 그녀'라는 표현을 보고 화들짝 놀라, 어머 이 나이면 중년인가? 하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또 병원에서 대기 순서를 적다가 내 앞에 대기할 남자분이 나보다 출생년이 하나 뒤라는 것을 우연히 보았지요. 그런데 잠시 후 간호사의 호출에 일어서는 사람은 내 또래라기보다 훨씬 많이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였어요. 어머머 깜짝 놀랐습니다! 늙스레한 그 사람이 나보다 어리다니요! 친구들이 동갑인 내 남편 많이 늙었다 했는데 바로 이렇게 비치나 봅니다. 그럼, 내 모습도 더 이상 내 상상 속에 그녀는 아니겠지요. 착각에서 벗어날 때였습니다.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나 봅니다.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남보다 좀 빨리 노화되어가는 현실에 억울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삶에 한 시기 잠시 업무적으로 마주친 생활력 강한 국장의 나이 듦의 노하우를 이제야 알아듣는 것이지요.


이제껏 삶이 게으른 적 없었고, 누구보다 적게 일한 적도 없고, 생계 걱정에 벗어나 인생의 유예기간을 호사도 누리지 않았고, 심지어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소용없이 나이는 찾아오더군요.


청춘일 때 패션감각이 없는 것은 그쪽에 관심사가 적어 남만큼 투자를 한 적이 없고, 오로지 내 하고 싶은 일을 삶으로 살았더니 이제 남는 건 노화뿐입니다. 내가 뚜렷하게 성공이라는 것을 해서 난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할 거 다 하고 산다라고 말할 수도 없더군요.


그러니 이왕이면 남은 생은 단지 우아하게 늙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누구나 그러하겠지만요!

어떻게 이 시기를 우아하게 보낼 수 있을까요?


오랜 친구들과 대화의 시간이라도 늘리며 정신을 즐겁게 하고파도 같이 할 친구들도 그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여 오히려 내가 가진 생각은 호사스럽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삶을 한번 돌아보려고 어릴 때처럼 툭툭 던지는 말마디들이 내 깐에는 의미심장한 것이었어도 그네들은 아직 어린 나의 장난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나도 나이 듦이 두려워서 문을 두드리는 건데

보내는 내 타전을 좀처럼 이해하는 이가 없으니 항아리 생각이 납니다.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담고 사는 항아리 말입니다.

그게 때에 따라 온도 조절도 해야 하고, 푹 담가 두기도 하고, 시원하게 열고 장맛을 보여주기도 해야 합니다.

가슴에 그 항아리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말이지요,

누군가는 내가 말을 던지면

그 항아리에 고이 받아

의외의 싹을 튀어 내게 다시 보여 주니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항아리에 내가 한 말에 다른 모양의 씨앗을 심어 나도 모르는 나를 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예 항아리 뚜껑을 닫아서 튕겨 나오고

누군가는 고이고이 담가 두다가 틈이 새어 이미 흘러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의 항아리는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요.


짠 냄새나는 간장 항아리가 되고 싶진 않지만

어느 날 우연히 시골 장독대에 멋스러운 고고한 항아리 가족이 되고 싶은데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내 항아리 톡톡 두드리며 옹골찬 내면에 누군가 쑥~밀고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어서 와~괜찮아^^

할 수 있는 튼실함이 간절한데

세월의 나이와 함께 허리둘레만 굵어지고

진짜 항아리 모양 흉내만 내지, 영 그 안에 깊은 장맛을 내지 못하고 그저 기를 쓰고 걷고만 있습니다.


오늘도 한 줄 쓴다는 게 여러 줄이 되어

그 국장 생각까지 하면 그녀도 그때 참 애썼구나~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원석이었던 내 장 맛을 모르고

스쳐 지나갔으니 그 항아리 속엔 촌티 나는 아줌마 하나 이미 자취도 없이 옹기 틈으로 세어버렸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