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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Apr 14. 2022

설움에서 누림으로

  며칠간 잔뜩 흐린 날씨가 계속되더니 드디어 빗줄기가 촉촉이 이 아침을 깨운다. 자가 격리에 들어갔던 어린이집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속속 안정기를 찾아간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개인 사설기관이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인지 시설이나 환경만큼은 최고이다.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교실의 크기나 간이 놀이터, 실외 놀이기구, 널따란 숲이 우거진 잔디밭과 탈것들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트랙까지 정말 집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어서 인지, 한참을 머물렀다 가시는 부모님들을 자주 대하게 된다.


난방과 에어컨을 이렇게 자유롭게 써도 되나 싶을 만큼 최고의 환경을 지녔으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에는 그것이 다가 아닌 듯, 나 와 같은 주부들이 선호하는 시간대인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오랜 시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도 배울 만큼, 경험할 만큼 했는데 딸 벌 되는 동료 교사들에게 갑 질을 받는 것에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정규직 교사로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주부로써 좀 수월한 시간대를 갖고자 선택한 이후,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이 많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을 시작하게 된 나의 짝꿍 선생님도 퇴근하고 나올 때마다 그만둬야겠다는 말을 계속했다. “돈 몇 푼 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돼? 남편들은 평생 이런 고생을 하고 살아가야 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도저히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에는 오래 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는 처음이라 마음의 상처가 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 정말 아무리 약자라도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네요. 우리를 이곳 현장에 보내신 이유를... 다른 곳을 가더라도 내가 이곳에서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가게요... 우리 같이 힘내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하며 보내온 지 3년째에 들어서는 요즘, 짝꿍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 사건 사고도 잠잠해지고, 일도 훨씬 능률도 오르며 다른 선생님들과 호흡도 척척 맞아 간다며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라며 이 시간들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덩달아 평안해진다. 


그래서 때론 나의 그릇을 키우는 아픔은 당장엔 쓰긴 하지만 값진 열매로 다가올 때가 많다. 큰 아이들의 코로나 소식도 그랬다.

며칠째 목이 아프다고 계속 검사를 해보더니 결국에는 강한 양성이 나왔고 함께 지내던 동생까지도 걸리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지라 식료품 배달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근처에 살고 있는 지인, 친구들의 많은 관심과 선물들... 희망의 메시지로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지, 평소보다 더 잘 먹고 산다며 행복의 소식들을 전해왔다.

이웃 지인들과 친구들이 문 앞에 두고 간 선물들

아차! 지금 친정엄마도 코로나에 걸려서 괜찮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불편할 것이 많을 텐데도 혹여나 병균 하나 묻혀올까 노심초사하며 가보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그래서 거의 안정기를 찾아가는 즈음에, 예배를 마치고 솜씨가 없긴 하지만 요즘 재료가 한참 싱싱하여 담가 두었던 파김치와 깍두기, 생선류와 고기류, 간식 등을 준비하고 소독 액을 챙겨서 친정으로 향했다.


집안에 환기를 시키고 곳곳마다 소독 액을 뿌리고 청소를 마무리하며 엄마를 마주하는데,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이게 무슨,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왔다며 연신 “애들하고 바쁜데, 어떻게 여길 왔어?”


“엄마, 참 죄송해요. 잠깐 이나마 일에서 좀 내려놓으시라고 엄마에게 시간을 주셨나 봐요.”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드렸다. 엄마의 뼈마디마디 세포 하나하나, 관절과 골수에 사람이 줄 수 없는 새 힘과 능력과 평안과 기쁨이 가득가득하도록...

아픔인 듯 상처인 듯 보이는 것들이 사람을 품으라는 나의 마음의 문을 넓혀가는 중이었나 보다.

딸이 초3 이었을 때, 친구들과 함께 만든 진흙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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