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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Nov 09. 2021

오징어 게임 보여주는 세상 vs 보여주지 않는 세상


  나는 '오징어 게임'을 아직 보지 않았다. 앞으로도 웬만해서는 보지 않을 계획이다. 잔인한 장면이 있는 작품을 본 뒤 불편한 감정들을 잘 흘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망스러운 현실을 그린 작품들 중에서도 불편하지 않은 작품들이 있는데, 오징어 게임은 예고편만 보더라도 인간 존엄성이 없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그런데 학교에서 열한 살 아이들이 하도 오징어 게임 얘기를 하다 보니, 나도 맥락을 알기 위해 봐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오징어 게임을 본 것 같았다. 아니면 적어도 유튜브 편집본을 본 것 같았다.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의 반 전체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총으로 쏴 죽이고 총을 맞은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시늉을 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움직인 사람은 술래 옆으로 가서 포로가 되어야 하는데 오징어 게임 탓에 놀이의 룰이 바뀐 것이다.


  평소에 하지 않던 줄다리기, 구슬치기, 달고나 게임들도 놀이의 유행이 되었다.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만들기를 하면 오징어 게임에 나온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을 본 아이들은 비단 우리 학교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학교 아이들도 그렇단다.




 얼마 전 인권 교육 시간에서 유엔 아동 권리에 대해 배웠다. 아이들에게는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아동 인권은 내전 중인 몇몇 나라들보다는 낫지만 내 기준에는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많다. 어린이집 바로 앞에 금연구역 표지판이 있어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아이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욕을 하는 사람들, 어린이 보호구역이지만 과속하는 사람들, 아이에게 폭언을 하며 화풀이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들을 백가지도 더 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을 부모와 함께 스킵하며 눈 가리고 보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자극들은 아이들에게 내상을 입힌다. 얼마나 마음속에서 피가 나고 있는지 어른들은 관심이 없다. 아이를 나와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내 소유,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무언가로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 '내가 지금 오징어 게임을 보고 싶으니 너도 그냥 옆에서 같이 봐라'라는 쉬운 생각들.

  

  '세상을 어떻게 깨끗하게만 사니, 더럽고 힘든 것도 보면서 단단해져야지.'라고 말하는 것에는 반대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수 없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장벽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19금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함께 보는 것은 폭력이고 아동학대다. 장벽을 넘어선 자극 또한 세상의 일부이니 아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른 입장의 생각이다. 제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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