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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Nov 28. 2021

대학병원 단상



  사람이 바글대는 대학병원에는 표지판도 안내해주는 사람들도 찾기가 힘들다. 자기가 알아서 화살표를 찾아서 무슨 과가 몇 층에 있는지, 채혈실은 어디인지, 원무과 수납은 어디인지, 번호표 뽑는 기계는 어디인지 찾아내야 한다.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잘 연결되어있지 않은 통로로 이어진 건물이라면 더더욱 긴장하고 살펴야 한다. 주차자리를 찾느라 시간을 써서 예상 도착시간보다 늦었다. 귀중한 외래 진료 시간에 혹시라도 늦어선 안 된다. 미어캣처럼 목을 빼고 방향을 찾은 뒤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 발걸음을 옮기다 중간중간 휠체어를 타거나 침대를 타고 호흡기를 낀 채 소리 없이 이동하는 환자들을 목격하게 되더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속 빠르게 움직이는 나. 무겁고 무관심한 공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대학병원 간호사들은 종종걸음으로 수만 가지의 할 일들을 등에 짊어진 채 건조한 표정으로 일하기 바쁘다. 좁고 높은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 마우스를 클릭하고 환자들의 예약을 잡는다. 쉴 새 없이 마우스를 클릭하는 그들의 손목은 괜찮은 걸까. 교수님 방에 조용하고 빈번하게 드나들며 해내야 할 일들을 해낸다. 처방전과 영수증 등 수많은 종이들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어르신들의 멍하고 조용한 얼굴을 살피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아빠는 심장에 있는 혈관이 찢어져 있다고 한다. 심장이 찢어져있는 기분은 어떤 걸까. 이별한 후에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던 적은 있지만 실제로 찢어져 있다니. 한편으론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론 이 와중에 이별을 생각한 내가 우습다.


  심장을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 열심히 외웠었던 좌심실 우심방이 생각난다.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도 심장들이 나온다. 붉은 심장, 신생아들의 작은 심장, 검은 심장. 쿵쾅거리며 뛰는 모습은 강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평생 담배를 피워온 아빠의 심장은 어떤 색일까. 아빠 옆에서 간접흡연을 해 온 엄마의 심장도 아빠의 색과 같을까. 색은 달라도 여전히 쿵쾅대며 뛰어주고 있는 심장들에게 갑자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어 진다. 아빠의 심장에게도, 엄마의 심장에게도, 내 심장에게도.



   날은 춥고 길에는 플라타너스의  낙엽들이 뒹군다. 전두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들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취재진이 적어서 통쾌한 마음이 든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있고, 분리되어있다. 추위를 뚫고 약국을 들러 약을 산다. 대학병원은 밖의 공기도 무겁구나. 지하철이 지하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면 갑자기 햇빛과 하늘과 한강이 보이고 숨이 크게 쉬어진다. 마치  전에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두려움이 가득한 병원을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쉬고 싶다. 가능한 멀리서  쉬며 살고 싶다. 아빠의 심장도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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