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라 Oct 12. 2021

텃밭 가족

  텃밭과는 연이 먼 인생을 살아왔다. 내내 도시에서 살면서 흙은 아주 어렸을 때 모래 장난을 했던 것이 전부였던 인생. 아이를 키우며 아이에게 감각교육을 하고자 흙을 만지게 하면서 나도 만지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가족의 농사를 지겹도록 도왔던 남편은 텃밭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반대로 농사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텃밭의 매력에 빠졌다. 텃밭에 가면 아무 사람도 없고 햇살과 바람과 흙이 가득하다. 그곳에는 작은 생명들이 있다. 식물 친구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조용히 그러나 씩씩하게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아기가 쑥쑥 크는 것처럼 기특한 마음이 든다.

 

  흙에는 조용히 기어 다니거나 잎 사이사이에 붙어 있는 곤충 친구들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비명을 지르며 곤충들을 놀라게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미도 지네도 익숙해지고 귀여워졌다. 집이 허물어지면 퐁당퐁당 뛰며 거미줄을 다시 만드는 거미들. 흙덩이 언덕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콩벌레와 집게벌레들. 식물 친구들, 곤충 친구들 모두 조용히 내 곁에 있어주니 텃밭에 가도 외롭지 않고 위로가 된다. 안녕하고 인사하며 대화를 나누면 반려동물을 키울 때 처럼 힐링이 된다.

  여름이 깊어지면 서서히 수확을 하는 시기가 온다. 여름 감자, 당근, 오이, 래디쉬 등을 몇 알씩만 집으로 가져가도 훌륭하고 신선한 재료가 되어 저녁 밥상이 풍성해진다. 카레도 먹고 샐러드도 먹고. 텃밭 가족들을 데리고 오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은 미안하지만 뽑아주거나 정리해 주어야 한다. 비가 한 차례씩 오고 나면 텃밭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호미를 손에 쥐고 한 뿌리씩 잡초들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땀방울이 흐른다.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이니 몸에서 땀이 나면 좋다. 그리고 한 번씩 바람이 불면 땀방울이 식으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호미질 끝에 손톱 사이로 낀 흙은 여러 번 손을 씻어도 바로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 이틀 손톱 밑이 검어도 아무렴 어떠랴,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것을. 스웩 넘치는 농부의 손을 따라 하며 미소 짓는다.



작가의 이전글 죄인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