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이명학 선생님과 영문과 입학의 상관관계

by 이지현


다운로드.jpg *출처 : tvN 유퀴즈 온더블럭 54화


입시를 준비할 때 나의 목표는 학과도 학교도 불투명한 채 단순히 인서울 대학 가기가 다였다. 뚜렷하게 어느 학과 어느 학교를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노량진으로 향했고(재수를 했다...) 거기서 운명과 같이 이명학 선생님을 만났다(물론 혼자만 운명). 지금이야 이미 1타 강사로 유명하시기 때문에 입시를 거쳐봤다면 모두가 알겠지만, 당시에는 젊다 못해 학생들과 나이차가 나지 않는 이제 막 강사를 시작한 어린 선생님이었다. 재수학원의 특성상 선생님보다 나이 많은 학생도 있었다.


영문과를 선택하게 된 시작에는 이명학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께서 가르친 영어는 그동안에 배운 것과는 완전히 질이 달랐다. 첫 수업부터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다음 수업이 기다려질 만큼 너무나 재미있었다. 영어가 재밌어지니 목표 학과가 자연스레 영문학과로 정해졌고 이듬해 봄 나는 영문과 학생이 됐다. 입학 전까지 영문과가 무슨 학과 인지도 무엇을 배우는 지는도 정확히 몰랐다. 김밥이 먹고 싶으면 김밥천국을 가는 수준으로 '영어=영문과'의 흐름을 탔을 뿐이다.


그렇다. 영문학과는 대학에서 영어를 배우는 학과가 아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 입학 후 수업에서 받았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한 학생이 영화에서만 보던 원어민의 발성과 발음을 구사하며 속사포로 교수님께 질문을 했다. 내 인생에서 한국인이 구사하는 영어를 실제로 접한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다. 지금도 그녀가 뭐라고 질문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영문학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주눅이 들어 수업시간마다 쭈구리처럼 숨어버렸다.


나를 향한 밖의 시선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영어능통자로 통했다. 1학년 1학기에 각종 미팅과 외부활동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단골 멘트는 '영문과면 영어 잘하시겠네요?'였다. 토씨 하나도 안 틀린 저 멘트는 늘 나를 따라왔다. 사기를 치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단순한 영어문장도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다. 용기 내서 영어를 말할 때는 한국어를 말하듯 또박또박 마. 이 네. 임. 이. 즈. 땡. 땡. 식으로 뱉었고 억양과 발음 모두 엉망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발음과 억양을 살릴 능력도 없었지만 그보다 앞서 그런 척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너무 창피했다. 일부러 더 한국식 발음으로 영어를 말했다.


그런데 영어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처참했던 실력으로 기가 죽어도 신기하게 나는 영어가 좋았다. 영문과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높은 기대치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러고 보면 영어를 놓고 선택하는 옵션은 결국 둘 중 하나다. 영어는 중요하고 필요할 때가 많으니 공부하자 혹은 너무 싫으니까 그대로 회피하자. 나는 전자를 택했다.


영어가 좋아서 영문과에 왔는데 이렇게 된 거 진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한 학기를 충격으로 보낸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여름 방학이 되자마자 종로에 있는 학원을 찾았다. 토익 수업과 영어 회화 수업 두 개 반을 등록하고 친구와 함께 의지를 다잡았다. 그렇게 스무 살 성인이 되어 '진짜 영어'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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