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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전상인 Aug 10. 2023

손님이 좋아하는 막걸리, 가져다 놓지 마세요.

전집에서 가장 중요한 막걸리 큐레이팅

전집 운영 3년 차, 시전상인입니다.

전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막걸리입니다. 전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 밑반찬과 함께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나면, 오늘 하루의 피로함을 위로해 주는 청량감을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주를 좋아하지만, 첫 잔에서 오는 청량감과 목 넘김은 막걸리가 가히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막걸리 맛도 단 맛이 높은 것, 드라이한 것 등 와인처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와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막걸리와 개성에 홀려, 한때는 50여 종이 넘는 막걸리를 가게에 보유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취급하고 팔아본 경험을 토대로, 운영하는 가게에 어떻게 막걸리를 큐레이팅하는지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절대 손님이 맛있다고 하는 막걸리를 가게로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저희가 거래하는 막걸리 업체에는 약 400여 가지의 막걸리를 유통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평이 좋고, 단가가 좋은 막걸리를 가져다 논들 손님들께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 아, oo막걸리 진짜 맛있는데, 가게에 들여놔 봐요. 진짜 대박 날걸요?" 

꽤 자주 오는 손님이 해준 말이라, 혹해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막걸리를 가져다 놓지만,

다른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일단 막걸리란 주류의 특성상 가게에 방문하거나, 배달을 할 때 익숙한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고, 설령 새로운 것을 선택하더라도, 꽤 유명하거나 큰 브랜드의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더 슬픈 것은 가게에 들여놔 보라 했던 손님마저도 그 막걸리를 한 병드셔보고는 대부분

"엇, 그때랑 맛이 다르네. 변했나 봐요?"

라고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막걸리는 대부분 지역 특산품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관광지나 시골에 놀러 가서 막걸리를 접한느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때 먹었던 맛은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보정되기 때문에 실제로 그때만큼 맛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게다가 지역을 넘나들면서 소주나 맥주, 대기업의 막걸리들처럼 콜드체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상온에서 맛이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태까지 고객이 추천해 준 막걸리를 들여놔서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객의 추억은 고객의 것으로 남겨두고, 정말 자주 오시는 단골이 꼭 먹어보고 싶다고 하면, 인터넷구매처를 알려주시고, 콜키지를 허락해 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 손님들은 다양한 막걸리를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예전 전집이나 막걸리전문점의 경우 막걸리의 종류가 거의 세계주류전문점처럼 많은 곳들이 각광을 받았었습니다. 종류가 많으면 선택지도 많아 좋고, 인테리어 효과도 뛰어나며, 무언가 다양한 막걸리를 취급하는 것이 더욱더 빛나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막걸리가 많은 것은 오히려 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가게의 장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는 막걸리의 다양함을 선택하는 것은 마켓컬리나, 네이버마켓에서 언제든지 가능해져 버렸고, 자신의 선택이 아닌 오마카세와 같이 좋은 분위기에서 가게에서 리드해서 추천해 주는 술을 먹고 싶거나, 가성비 있는 맛있는 안주에 익숙한 술을 곁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린 세계맥주집처럼, 편의점에서 고를 수 있는 다양한 맥주의 장점이 더 높아진 것처럼, 막걸리 역시 다양성은 이미 온라인이나 편의점에 점유되어 버려, 가게나 배달에서 막걸리를 선택하는 것은 장점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전집 또는 막걸리전문점이라도 막걸리는 정말 가게의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 다섯 가지 정도를 정해 고객에게 추천드리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3. 막걸리 시장의 위기

최근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아스파탐의 발암물질 지정은 소비자로 하여금 막걸리 소비에 대한 활력을 잃게 했습니다. 또한 가장 큰 주류 소비층인 MZ 세대의 소비성향 역시 막걸리보다는 하이볼, 위스키 문화에 치우쳐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 것도 있지만, 사실 막걸리 시장 자체가 코로나 시즌 집에서 먹는 문화가 많을 때 급성장했던 시장이었던 것만큼, 현재 그 거품이 꺼져가는 것 같습니다. 막걸리는 충분히 매력적인 술이지만, 무언가 대접받으면서 즐긴다라는 개념에서의 소비가 일어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전통주는 인터넷에서 거래가 되는 만큼, 다양한 주조장이 생기며 다양한 개성이 만들어진 만큼, 그러므로 인해 취약한 지점이 여러 개 생기는 만큼 음식점 시장에서 막걸리가 가지는 영향력이 다른 술에 비해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막걸리 어떻게 큐레이팅해야 하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가 추천하는 막걸리의 종류는 5개 정도가 적당합니다. 그래야 재고 관리도 용이하고, 어느 정도 맛이 밸런스도 갖추게 됩니다. 사실 살균처리가 된 막걸리는 보관기간이 1년 가까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를 보유하며 판매해도 되지만, 차라리 여러 가지 막걸리를 보유하는 것보다 적은 막걸리 종류를 안주랑 페어링 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욱더 판매를 촉진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현재 저희 가게는 50여 가지의 막걸리를 판매하다가 10가지로 축소한 상태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5-7 종류만 남겨놓고 없앨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막걸리의 종류는 지역에서 가장 활발히 유통되는 막걸리 3종류, 홍대나 강남에서 판매가 잘 되는 막걸리 2-3종류를 보유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동네 장사, 배달에서 소비하는 막걸리는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에 익숙한 것들 위주로 가져다 놓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막걸리는 가게의 사이드 메뉴입니다. 막걸리의 종류가 많다고, 막걸리가 맛있다고 가게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가게의 음식이 맛있어서 막걸리를 콜키지하고 싶은 손님이 많다고 하면 그 가게는 맛있는 가게로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세상에는 맛있는 막걸리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번 생애 모든 막걸리를 다 향유할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막걸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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