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안전지대에 대한 단상
"집이 오래되어서 부숴야 할 것 같아요."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6년간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곳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빨래가 잘 마르는 작은 베란다,
늦은 밤 작업하면서 집중하던 책상,
와이프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식탁 공간까지.
모든 것이 갑자기 '임시'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저 또 다른 전세집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와이프님이 말했다.
"이사 다니는 것도 지치고, 이제 정말 우리 집을 갖자."
사실, 2년 전쯤 집을 살 생각이었다가, 집주인의 파토로 전세금을 받지 못해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와이프님의 본격적인 부동산 공부가 시작됐다.
유튜브로 월부 강의를 들으며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등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아, 이번엔 진짜구나 싶었다.
곤도 마리에의 말처럼 "설레이지 않으면 버려라"였다. 더 이상 불안한 전세 생활은 설레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진짜 '우리 집'이 필요했다.
사실 두려웠다.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집주인이 돈을 내주지 않아 발이 묶여버린 적이 있었으니... 또 이번에도 전세금을 내어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
게다가 대출 한도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출 규제도 빡빡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느낌.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마음으로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
집을 보러 다니고, 계약하고, 대출 승인받기까지.
숨 가쁜 시간들이었지만, 행동하면서 불안함이 조금씩 희망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불안함을 극복하는 건 결국 행동이었다.
새집의 가장 큰 장점은 회사와의 거리다.
지하철로 단 1정거장, 총 30분이면 출근 완료. 걸어서도 1시간이면 갈 수 있겠다.
다만 집 근처에 기차길이 있다.
부동산이나 와이프님은 '소음'이라고 걱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좋다.
어릴 적부터 기차 소리를 들으면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들었거든.
매일 아침 기차 소리로 눈을 뜨면? 마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일 것 같다.
관점을 바꾸니 소음이 아닌 일상의 BGM이 되었다. 벌써 애착이 간다.
아직 이사 전이라 할 일이 산더미다.
이사짐 정리부터 인테리어까지. 하지만 와이프님이 이 모든 과정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이 자체가 이미 우리만의 '집'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12년 전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도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단골 빵집도 생기고, 도로 옆 작은 산책로도 익숙해졌다.
집이란 결국 그 안에서 쌓이는 일상과 추억이 만드는 것 아닐까?
새로운 안전지대를 만드는 여정이 시작됐다.
불안했지만, 이제는 기대가 더 크다. 우리만의 보금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쌓일지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