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야만 할 수 있는 명상법
멍하니 길을 걷다 보면 어딘가 숨어있던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잊으려고 했던 안 좋았던 기억이나, 아직 풀리지 않은 고민들.
그리고 그것들은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맴돌게 된다.
맴도는 생각은 점점 커지고, 호흡은 짧아지며, 머리를 가득 메운다.
생각은 곧이어 진득한 스트레스로 바뀐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한다.
신호등도 왠지 내가 도착하자마자 빨간불로 바뀌는 것 같고,
햇빛은 너무 뜨거워 짜증이 나고, 갑자기 걸린 돌부리조차 화가 난다.
왜 그럴까?
늘 다니던 길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마련이다.
내가 길에 집중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다리는 움직인다.
뇌는 집중 모드를 중지하고 자동 모드 = 멍 때리기(DMN) 모드로 넘어간다.
멍 때리기 모드의 장점은 창의성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몰두해, 집중모드에서 생각 못했던 것들을 무의식 중에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 평소에는 잘 나지 않던 독특한 생각이나, 창의성이 발휘된다.
문제는 이렇게 잘 나지 않던 다양한 생각들 중, 나쁜 감정과 관련된 기억이 섞여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한 감정일수록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머물게 된다.
이윽고 이 감정은 또 다른 나쁜 감정과 연결되어 점점 강해지게 되고, 결국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바뀐다.
뇌는 다시 떠올리는 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해 더 강하게 기억에 남도록 만든다.
DMN모드에서 나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나쁜 생각을 복습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울증은 DMN모드의 과도한 활성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위험한 일이다.
스트레스 요소를 끊어내는 데는 명상이 좋다.
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할 수는 없다.
분명히 열 걸음도 못 가 넘어져 버릴 테니까
다행히, 두 눈 부릅뜨고 할 수 있는, 아니, 눈을 떠야만 하는 명상이 있다.
보통 '마음 챙김'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사실 부릅 안 떠도 된다. 미안하다. 그냥 평범하게 뜨자(....)
만약 갑자기 모든 것이 짜증 난다고 느껴진다면,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서 잘 떨쳐지지 않는다면, 관심을 외부로 돌려보자.
일단, 내가 느끼기 가장 편한 '호흡'부터 시작해보자.
스트레스에 빠져 있다면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호흡이다.
무호흡에 가까울 정도로 얕게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우선 턱을 가볍게 열고(아직 코로나 기간이니 입은 벌리지 말고),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셔보자.
체온보다 약간 차가운 숨이 코를 통해 입 공간을 맴돌고, 폐와 뱃속을 채우는 것을 느껴보자.
호흡은 내가 관찰하기 가장 좋은 요소다.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내가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그 변화를 내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을 어떻게 관찰할지 잘 모르겠다면 내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행동을 1이라고 생각해보자.
숨을 4단계로 쪼개서 쉬어보자.
숨을 쉬면서 머릿속으로 1/4까지... 2/4까지.... 3/4까지... 4/4까지 왔구나.
라고 의식하며 숨을 쉬어보자.
그게 익숙해진다면, 다음은 10단계로, 30단계로 쪼개서 쉬는 것에 익숙해져 보자.
호흡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DMN모드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쯤 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것이다.
하지만, 호흡은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면 다시 DMN 모드로 넘어가기 쉽다.
DMN모드로 넘어가지 않도록 의식하는 방법 중 좋은 것은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라고? 똑같은 길. 몇 백번은 봐서 지겨울 정도인데 무슨 관심을?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늘 다니는 길.
하지만 정말 똑같은 길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다니는 길은 늘 다른 옷차림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다른 타이밍에 신호등이 바뀐다.
밟는 보도블록의 위치, 부는 바람도 매번 다르고, 나뭇잎의 흔들림도 다르다.
나뭇잎의 개수, 새로 돋은 잎, 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 보도 블록의 껌 자국조차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다른 요소들을 '똑같다'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을 보고 걷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어, 늘 생각 없이 스쳐가던 가로수의 나뭇잎을 관찰해보자.
의외로 당신이 생각했던 그 모양이 아닐 것이다. 나뭇잎의 색깔, 크기, 모양 모두 생소할 것이다.
나뭇잎의 색깔, 구석에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낙엽, 그 옆에 새롭게 올라와 아직 형광빛에 가까운 새 잎사귀.
이 나무에 열릴 줄 몰랐던 갈색 열매도 보인다.
이 나무가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가로수를 지나친다.
다음 가로수가 보인다. '그냥 똑같은' 가로수가 아니다.
내가 지나친 가로수와 굵기도, 무늬도, 벗겨진 범위도, 나뭇잎의 개수도 다르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살짝 흔들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내 손가락 사이에도 바람이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 없던 바람이다. 바람조차 새롭다.
하지만, 평소에는 바람이 불 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다음 바람을 기다려보자.
손가락에 신경을 써봤다면 이제 발에 신경을 써보자.
늘 걷던 길바닥. 하지만 발에 닿는 느낌은 매 순간 달라진다.
가끔 돌을 밟을 때 발바닥 구석을 누르는 느낌, 약간 헐거운 보도 블록을 밟었을 때의 덜그럭거림.
전날 비가 왔는지, 물이 고인 바닥.
일부러 살짝 밟아본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신호등 앞에 서자, 곧 빨간 불로 바뀐다.
평소에는 하필 내가 올 때 바뀌었냐며 기분 나빴을 상황이다.
지루하게 기다렸던 시간은 주변을 돌아볼 좋은 시간으로 바뀐다.
고개를 돌려 신호등을 보자. 신호등이 저랬던가?
평소에는 '건너지 마'라고 명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기만 했던 신호가 달라 보인다.
동그란 줄 알았는데 네모난 신호등 불빛, led의 모양,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지지대. 억지로 붙인 홍보 스티커.
그 앞을 버스가 지나간다. 피곤한지 창가에 머리를 대고 곤히 잠든 사람이 보인다.
그래도 저 사람보단 내가 더 힘차 보이는 것 같아 미소를 짓는다.
그 뒤로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지나간다. 하지만 다르다.
버스의 지저분함, 광고판의 종류, 타고 있는 사람. 모두 다르다.
아까 머리를 대고 곤히 잠든 사람 자리에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앉아있다.
아까까지 맴돌던 나쁜 생각은 주변의 새로운 것들에 떠밀려 사라진다.
그리고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충족감과 만족감이 든다.
왜일까?
걸으면 주변이 계속 변화한다.
그것들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감각에 관심을 기울이면 뇌는 멍 때리기 모드를 멈춘다.
나쁜 생각이 맴돌 때는 멍 때리기 모드일 때다.
단순히 관찰을 함으로써, 나쁜 생각의 맴돌이를 멈출 수 있다.
뇌는 반복해서 떠올릴수록 강하게 기억한다. 반대로 떠올리지 않으면, 약해진다.
만약, 나쁜 생각이 이어지려고 할 때마다, 관찰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반복되는 패턴이 끊어지고, 나쁜 생각은 점점 약해지게 된다.
관찰을 할수록 나쁜 생각을 하는 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행복함, 만족감을 느낀다.
도파민이 분비될 때는, 우리가 무엇인가 '도전'하고 '성공' 했을 때다.
주변을 관찰하고 다른 것을 찾는 행위는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늘 다르기에 다른 것을 찾는 도전은 늘 '성공'한다.
이 매번의 성공은 매번 도파민을 불러온다.
우리가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관찰하고 발견할 때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이유다.
마음 챙김은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내 마음속 자아나 구름이 흘러가는 의미 같은 심오한 것이 아니라도 된다.
마음 챙김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밟는 보도블록의 덜걱거림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아도 된다.
내 머리 위, 나뭇잎 모양을 깨달아도 된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냉기의 정도, 물통을 꺼냈을 때 물의 찰랑거림이 어느정도인지.
신발을 벗고 발바닥이 맨바닥에 닿는 느낌. 살짝 끈적히 쌓인 먼지의 촉감도 좋다.
머릿속 상상만으로 본 것을 벗어나기만 해 보자.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행위 자체를 통해 당신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