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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onne heure
By Yuj . Jul 10. 2017

D.I.S.C.O

La bonne heure

쉿! 숨어야 해!!

올 것이 왔다.




얼마 전 친척의 결혼식이 있었다.

장소도 예쁘고 사람들도 좋았고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결혼식. 

웨딩플레너의 도움을 많이 받는 한국의 결혼식과 달리 프랑스의 결혼식은 의자 하나부터 식기며 테이블 장식에 밴드섭외까지 신랑 신부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보통 일 년 정도를 잡고 천천히 준비하는데 결혼식을 보면 커플의 취향과 센스까지 짐작할 수가 있다. 이렇게 준비가 오래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식 자체가 매우 길기 때문인데 이번 결혼식의 경우 우리는 무려 세 번의 식에 초대를 받았다. 신랑의 고향인 남프랑스에서 진행된 시청 결혼식(프랑스의 시청결혼식은 법적 의무), 파리 근교의 고성에서 진행된 웨딩 리셉션, 최측근만 동반한 모로코에서의 신혼여행 겸 파티까지. 우리는  일정상 두 번째 웨딩 리셉션만 참가하겠다고 몇 달 전에 이미 답신을 보냈다.

나만 빼고 다 신나

결혼식 당일엔 모두가 주인공인냥 한껏 멋을 낸다. 한 시간 정도 정원에서 다른 하객들과 인사를 하고 다과를 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친척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이어 신랑 신부의 부부됨을 알리고 축하하는 식이  되었고, 해질 무렵부턴 음식과 함께 각종 술과 음료를 제공하는 바가 설치되었다. 정말이지 이들의 웨딩파티는 말 그대파티다. 가까운 사람들이 만나 기쁜 날을 함께 축하하고 밤새도록 웃고 즐기는 자리.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고 밤새 춤을 추는데 왜 그렇게 끊임없이 먹고 마셔대는지 막상 보면 알 만 하다. 남녀노소 정말 지치지도 않고 춤을 추는 사람들.

이 날도 역시 먹고 마시고 하는 사이에 그 시간이 온 거다.


미니: 유즈! 유즈! 댄스타임!!
유즈: 저리 안 가!!


나는 저주받은 몸뚱이를 가진 죄로 세상에서 젤 싫은 게 몇 가지 있는데 이는 모두 다 몸을 이용한 것들, 그중 하나가 바로 춤이다.

숨어야 해!

.

.

.



잠시 후

춤이 젤 싫다던 나의 발언이 무색하게 정신줄을 놓고 춤을 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핑계를 대자면 이 날 초빙된 밴드가 정말 최고였다. 정말 말초신경까지 들썩이게 할 만한 음악들만 쏙쏙 뽑아서 연주는 또 어찌나 완벽하던지 이성을 잃고 내적 댄스가 그만 외부로 표출.


몸치에게도 춤출 권리는 있는 거잖아요?


나랑 춤 춰 줘서 고마워

다행히도 모두 앞에서 살풀이를 한 것은 아니고 나랑 한 집에 사는 남자가 흥이 오른 나의 마음을 읽고는 마음껏 춤출 장소로 안내해 주었다. 실은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다른 하객들 몰래 뒷마당에서 춤을 춘 거지만 모두들 각자의 흥에 취해 우리를 볼 틈조차 없었다. 게다가 시골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쏟아질 듯한 별 빛 아래 우리 둘이서 춤추던 그 시간을 아마 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파티 막바지에 분위기가 무척 고조되었을 때 미니를 무대 한가운데로 등 떠밀어 보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독 신이 난 웬 남자의 머리꼭지가 들쑥날쑥, 두 팔이 들락날락 사방을 휘젓던 모습을...


집에 돌아와서 미니는 말했다.


재미있게 잘 놀았다! 특히 나는 와이프랑 춤출 때가 제일 재밌었어! 아무도 우리가 거기서 춤춘걸 모를거야.

왠지 기뻤다.

춤도 같이 맘껏 못 춰주고 스포츠도 같이 못해주는 나를 만나서 마음껏 못 노는 게 아닌가 내심 미안한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그 완벽했던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신나게 춤추던 남편을 보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둘이서 상상하며 웃었던 우리의 미래 계획.



우리는 결혼을 했지만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 국제커플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과 사정이 있었고, 둘 다 짠돌 짠순이라 의미 없는 결혼식에는 돈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여한 한복을 입고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고, 영하의 추운 겨울날이었기에 동네 공원에서 30분 만에 후다닥 기념사진을 찍었다. 회사에 반차를 낸 동생이 사진을 찍어줬고,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도와주셨다. 그날 밤엔 가족들과 와인을 마시고 케이크를 잘랐고 그 날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지금 보면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 빨갛게 익은 얼굴, 한복 속에 껴입은 검은 내의까지 다 보이는... 굉장히 아마추어스럽지만 자연스러워서 더 맘에 드는 앨범이 탄생했다.

앨범을 만들어 준 동생에게 감사.

언젠가 우리도 역시 웨딩파티를 할 것인가로 고민을 한 적이 있었고 결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 결혼식을 한다면 그건 우리의 주관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일 테니 마음에 완벽하게 내키지 않는 형식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우린 결혼 10주년 즈음에 파티를 열자고 했다. 손잡고 열심히 살아온 우리 스스로를 축하하고, 우리 두 사람을 사랑해주고 축복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파티. 이름하야 응원해 주셔서 잘 살고 있어요 파티. 진심을 담아  초대장을 만들고 감사함을 담아 손수 장소를 세팅하고 누구나 고 즐길 수 있는 그런 파티를 만들자고 하면서 막연하게 '디스코'라는 한 단어로 결론을 지었고 그 외의 생각들은 일단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다.


사실 다행인건지 나는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결혼식에 대한 환상조차 없었던 여자라 샤랄라 하게 예쁜 한복 입고 미니랑 부부가 된 그 날이 더없이 기뻤다. (한복이 정말 예뻤고 한복 입은 미니를 보는 것도 새롭고 좋았다.)


춤을 안 추는 나지만 아주 가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내적 댄스가 뿜뿜 뿜어져 나올 때면 미니와 이야기했던 파티 계획을 떠올리면서 몸을 움직여 보는데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거다.


나의 내적댄스

완전 신나게도 완전 섹시하게도 춘다.

춤 못 추는 자에게도 즐길 권리가 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누군가의 눈에 비친 현실은 여전히 둠칫둠칫 일지라도...

바닥에 이불깔고 나름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우리의 '잘 살고 있어요' 파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니와 나를 닮은 파티는 어떤 모습일까?




상속의 미니와 나는 신나게 디스코를 춘다.

 그리고 깔깔 웃는다.


미니, 나는 춤을 못 추지만 그래도 너무 기대돼.
남편과 함께라면 나는 춤추는 게 신나니까.
파티하는 그 날까지 재미있게 살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미니유즈의 디스코 파티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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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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