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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Aug 05. 2017

내 사랑, 안달루시아! (3)

La bonne heure

꿀모닝^^

위치가 좋은 호텔에 묵은 덕분에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맛난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촉촉하게 올리브 오일을 두른 토스트나 오믈렛에 진한 커피를 주로 먹었지만 이날 하루는 미리 눈도장을 찍어둔 츄로스 카페에 갔다. 미니는 언제나처럼 에스프레소를, 나는 늘 마시던 라떼 대신 핫쵸코렛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츄로스는 2 portions을 원하느냐길래 오케이.


잠시 기다리니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세상에나! 그녀가 말한 2 portions은 2인분이란 뜻이 아니었던가? 엄청난 양의 츄로스가 나왔다.


당황한 마음을 접고 일단 시식을.

방금 막 튀겨져 나온 뜨거운 츄로스를 호호 불어서 진득한 쵸코렛에 풍덩 찍어 먹으니 음~~~~~달다 달아. 몸뚱이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만 칼로리짜리 아침식사로구나. 뜨끈뜨끈 바삭하고 고소한 츄로스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는데 핫쵸코가 내 입엔 너무 과하다. 이건 그냥 백 퍼센트 쵸코렛 녹인 것. 평소에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미니지만 음식을 남기는 건 더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라 내가 남긴 핫쵸코는 결국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나는 왠지 그 옛날 추억을 떠올렸는데...


연애 초반에 미니는 절대 나랑 음식을 나눠먹지 않았다. 둘이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할 경우 나는 항상 내 것도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미니는 극구 사양을 하고 본인 몫의 그릇만 싹싹 비워냈다. 그 모습이 내 눈엔 좀 냉정한 개인주의자로 보였었는데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갈비를 먹으러 간 날. 내가 이미 뜯어먹은 갈빗대를 망설임 없이 집어가서 쪽쪽 빨아먹는 거다. 그런 미니를 보고 « 엄마나! 이것은 사랑이야! »라고 맘속으로 단정 짓고 기뻐했던 말도 안 되는 나의 모습이 순간 떠오른 건 왜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니는 내가 양껏 먹지 못할까봐 내 음식에 손을 안 댔던 거고, 그저 고기에 눈이 멀어 내가 먹고 난 갈빗대마저 탐낸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의 깊이를 가늠했다. 그렇게 연애할 때가 좋았지.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식탁 위 젓가락 포크 싸움.

맛있었지만 버겁게 츄로스를 다 먹고 나서 계산서를 기다리는데 웃음이 나서 혼났다. 왜냐하면 못 볼 광경을 봐서? 우리 뒤쪽 테이블에 아주 어린아이와 함께 온 프랑스인 부부가 있었는데 아마 이들에게도 주문의 문제가 있었는지 츄로스 탑이 서빙되었다. 우리 것이 작은 뒷동산 사이즈였다면 그들의 츄로스는 피레네 산맥 정도? 눈을 크게 뜨고 Mon dieu(신이시여)를 찾는 그 부부를 보니 우리만이 아니라는 동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주변을 쫘악 둘러보니 현지인들의 테이블은 다르다. 그 날 우리들의 츄로스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자면 대략 이 정도가 될 거 같다.


아침부터 달달구리를 들이부어 준 몸은 정말 니글니글 힘이 난다 힘이 나.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관광객으로 꽉 찬 2층 버스를 간혹 보는데 그 안의 관광객들이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가끔은 부럽기도... 그래서 우리도 탔다 투어버스. 그라나다의 버스는 파리의 2층 버스에 비하면 매우 아담 사이즈였으나 무려 기차 모양이다. 앙증맞게 디자인된 버스가 좁은 골목길과 오르막을 누비고 다닌 덕에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고, 창문이 없는 대신 잔잔히 불어오는 살랑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져 주니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상쾌했다. 아침 햇살까지 눈부셨고 마침 또 녹음이 우거진 좁은 거리를 한창 달리던 이 천국과도 같은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멈춰 섰다.


아… 익숙한 언어. 프랑스 할머니 네 분이 탑승을 하시는데 나의 고요한 아침 무드가 순식간에 와장창!

차 문이 너무 빡빡하다, 안 그래도 다리가 아픈데 이래서야 되겠는가, 나는 기차(버스)의 세 번째보다 두 번째 칸이 좋으니 네가 앞에 타라, 올라타는 계단의 디자인 자체가 너무 효율적이지 못하다 등등 쏟아지는 불평. 정말 프랑스인답다. (프랑스인들은 적어도 내가 본 프랑스인들은 비평과 비판이 일상화되어 있다. 주관이 뚜렷하고 의사표현이 확실한 것이 장점이지만 때때로 이 사람들은 매사에 만족할 줄을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피곤하기도 하다. 특히 파리지앙들은 더 그런 것 같다)


저 네 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유독 한 분의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시는 순간부터 내리실 때까지 계속 불만을 토로하셨는데 그때마다 그룹에서 가장 대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상황을 정리. 버스가 오르막을 한참 달리는 중에 할머니들이 웅성웅성하시기 시작하셨다. 알람브라 궁전의 출입구 정류장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하셨고 이미 이전날 관람을 마친 미니가 내리실 정류장을 안내해 드렸다. 버스가 멈췄고 할머니들이 내리시려는 찰나에 또 그 불평 많으신 할머니께서는 여기가 확실하냐, 어디 다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폭탄 투어를 시작하시고 믿음직한 대장 할머니께서 단번에 또 정리.


"일단 내리기나 해! 젊은 청년이 여기가 맞다잖아!"


할머니들께서 내리신 후 미니는 뭔가 할 말이 많은 얼굴이다.

"들었어? 젊은 청년이라고 하신 거 들었어?"

그 말을 반복해서 하고 또 하고 자기는 젊은 청년이라며. 그래 너 젊다.

불쌍한척 3종 세트


한참 젊은 청년 얘기를 하던 미니가 조~용.  안색이 엉망이었다. 버스가 흔들흔들 돌길 위를 달려서인지 갑작스러운 복통과 멀미 시작. 이거 이거 잘난 척하다 벌 받은 건가. 이제 별 수 없다. 또 호텔로 돌아가는 수밖에.


호텔로 돌아가서 화장실에 들락날락. 미니의 배가 진정이 된 후 다시 외출을 했는데 날이 너어무 뜨거웠다. 지나가다 본 구멍가게로 직행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물고 어딘가로 걷기. 쌩쌩해진 미니는 걸음이 너무 빠르다. 앞서가는 미니를 잡아 세우려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야!!!!!!!!!!!"

"왜? 나 부른 거였어? 그럼 젊은 청년이라고 말을 해야지!"

이제야 내 목소릴 들었다는 듯한 뻔뻔한 태도.

아… 얄미워. 그놈의 젊은이 타령. 그래도 미니는 하루 종일 행복한 모양이다.

사실 남편은 충분히 젊고 젊은이가 맞는 거 같은데 나이 많은 아내랑 살다 보니 자신이 무슨 중년 남성이나 되는 줄로 착각하는 거 같다. 괜스레 미안해지는 건 뭐야.


그라나다에서 먹은 빠에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타파스와 빠에야.

타파스는 매일 먹었고(술안주로), 빠에야는 그라나다에서 한 번, 세비야에서 한 번 먹었다. 오래전에 바르셀로나에서 비 내리는 추운 밤 줄 서서 먹었던 빠에야는 너무 별로였다. 그 집 샹그리아도 정말 별로였고. 그런데도 웨이팅이 엄청 길었고 손님의 8할은 한국인 관광객이었던... 나처럼 다들 검색하고 오셨겠지. 인터넷 검색의 폐해. 이번엔 맛있는 빠에야를 꼭 먹으리 다짐했건만 꽤 비싼 돈을 내고 평이 아주 좋은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먹은 그라나다의 빠에야는 그냥 빠에야 맛. 게다가 바닥이 너무 탔어. 물론 그것마저 닥닥 긁어먹었지만... 세비야에선 자신만 믿으라는 미니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 빠에야가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 걷고 또 걷는 것일까?


과달끼비르(Guadalquivir)강변

도심에서 좀 먼 곳이라 강바람 맞으며 한참을 걸었다. 사진으론 안 보이지만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이었다.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버린 자카란다 꽃잎을 아쉬워하며 이 보랏빛 길을 따라 걸었고

음악을 들으며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던 한 스페니쉬의 낭만에 감격하며 걸었다. 모든 동물은 사랑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도시의 돼둘기들을 악마처럼 여기던 나를 반성하게 만든 광경.

바람은 여전히 엄청나게 불더니 급기야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 작은 빗방울들이 막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식당은 아직 영업시간 전이란다. 열두 시가 넘었는데?? 세비야는 다 좋은데 이게 불편했다. 그라나다와 달리 가게들이 정말 딱 원하는 시간에만 오픈을 하는 것. 고픈 배를 잡고 주변 구경을 하며 서성이는데 눈에 들어오는 가게가 있었다.

바로 여기. 하몽이 주렁주렁.

처음엔 쵸리조나 조금 포장해 가서 저녁에 맥주 마시면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가만 보니 아저씨들이 정답게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즉석에서 컷팅된 하몽도 드시고 하네. 술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비밀 냉장고라도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미니 옆구리를 쿡쿡. 가서 물어봐 달라고 나도 저렇게 먹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미니가 주인아저씨랑 몇 마디 하고 웃고 하더니 드디어 나온 하몽 한 접시에 맥주 한 잔 하려는데 갑자기 천장이 뚫릴 듯하게 비가 내리는 거다. 비 내리는 밖을 바라보며 나는 아늑한 실내에서 이렇게 신선놀음을. 음~ 느무 행복해. 호호 맥주가 더 꿀 맛. 꾸울 맛이다. 히히


맥주 한 병씩 클리어하고 나니 시간이 다 돼서 빠에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까 우릴 봤던 웨이터가 반갑게 맞아 주고 자리를 안내해주고 메뉴판을 줬는데 아~ 메뉴가 너무 많아.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빠에야는 한 메뉴를 2인 이상 주문해야 하는데 이 집도 마찬가지. 메뉴가 느무느무 많아서 다 먹고 싶은데 하나만 골라야 하다니 넘 잔인하다. 결국 웨이터에게 추천 좀 해달라 부탁했고 두 가지 타파스와 Negro라는 이름의 빠에야를 주문했다.

앙트레로 먼저 나온 타파스. 약간 짭짤하긴 한데 넘나 맛있었다. 특히 저 작은 새우튀김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했다. 오른쪽은 감자를 부드럽게 간 요리인데 송송 자른 문어가 간간히 씹힌다.


오픈 키친에서 테이블별 주문 순으로 조리되는 터라 한 삼사십 분쯤 기다렸을까?

따라! 빠에야가 나왔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크고 밥알도 촉촉했다. 기분 좋게 와인도 한 잔씩 주문했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 와인마저 맛이 죽여주는 거. 집에 갈 때 이 와인이 너무 사가고 싶어서 몇 군데 와인샵을 들렀지만 못 찾았다는 슬픈 이야기. 하... 냠냠 먹고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남들은 뭐 먹나 보면서 이것도 맛있겠네 저것도 맛있겠네 하면서 하하호호.


어느 순간 와인잔에 손을 가져갔는데 엥? 없다. 내 와인이 없다. 누가 마셨어!!!!!!!!!!!!라고 얘기하려던 순간 미니를 보니 누군지 바로 알겠다.


맛난 음식을 먹고 기쁨으로 범벅이 된 얼굴, 얼마나 먹는데 집중을 했는지 입가는 빠에야 먹물로 시커먼 것도 모르고 빙구가 따로 없는... 돌아가는 길에 내가 취해서 넘어질까 봐 대신 마셔줬다며 웃음으로 때운다. 사실 옛날 옛날에 회식 얼큰하게 하고 아스팔트에서 대자로 자빠져서 무릎 까지고 얼굴 갈려서 울 엄마 기절할 뻔했던 일이 있었어요. 소곤소곤;;;;;;;;; 뭐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맛있으니까 이번만 봐주기로.

아마도 이 인생 빠에야 때문에 우리는 세비야에 다시 가게 될 것만 같다. 과연 언제 또 다시 이 맛을 볼 수 있을까?


프랑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케찹인심. 사랑해요 스페인

스페인까지 가서 왠 버거킹이냐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비야에서 첫날은 비도 주룩주룩 내렸고 호텔도 중심부를 벗어나 있어서 마땅히 뭘 먹을지 몰랐던 날. 배는 고픈데 그나마 제일 일찍 문을 여는 곳이 버거킹이었다. 패스트푸드점이 11시 반에 오픈을 하다니 문화충격. 배가 너무 고프니 와퍼를 시키고 치킨 윙도 한 번 시켜 봤다.


엄마낫! 이거 안 시켰음 어쩔 뻔. 미니랑 나는 본래 양념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데 언젠가부터 짭짤한 교촌윙봉세트에 빠져서 얼마나 많이 먹어댔던가. 교촌을 한국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우리에게 스페인에서 먹은 버거킹 치킨윙은 딱 교촌같은 그 맛은 아니었지만 한 80퍼센트는 만족할 수 있을만할 맛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저녁에 한 박스에 4개 들은 윙을 다섯 박스 사고, 슈퍼마켓에서 체리 한 상자랑 음료를 사 왔다. 우리 방에는 큰 발코니가 있었는데 이 날 마침 비도 안 오고 짙은 오렌지빛 노을이 최고로 예뻤다. 망설일 것 없이 발코니에서 치킨윙을 먹기 시작했는데 맛있다 맛있어.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미니가 갑자기 자기 얼굴을 찰싹!

"모기다 모기! 방으로 들어가야 해!"

"엥? 물렸어? 어디 보여줘 봐."

빙구 등극

모기가 물었다며 얼굴을 보여주기에 들여다보니 그것은 치킨윙 부스러기들. 왜 그리 간지러웠는지 잘 알겠다. 담에 한국 가면 남편이 교촌을 매일 먹게 해 주겠어.


여기는 세비야!

그라나다에 있는 동안은 뜨거운 태양에 바싹 구워졌지만 세비야에 선 좀 달랐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비바람이 시작되어 이튿날 오후까지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비가 내릴 거라던 기상청 예보와 달리 그 이후의 날들은 대부분 햇살이 쨍. 정말 행운이었다. 아담했던 도시인 그라나다와 달리 세비야는 도시의 규모가 꽤 커서 매일 쉴 틈 없이 걸어 다녔다.


메트로폴 파라솔


궂은 날씨에도 활기가 넘치던 스페인 광장
예쁜 배경은 아니지만 가장 세비야다운 색감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리쬐던 날의 아름다운 세비야
수도원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세비야 미술관
어느 타파스 바;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다음 잔을 받아두는 나의 술욕심
타파스로 먹은 빠에야
세비야에 도착해서 녹초가 된 채로 찾은 레스토랑 Catalina, 여행 중 유일하게 폭망한 저녁식사;;;;; 그래도 즐거웠다
세비야 특산품을 파는 작은 가게의 주인부부;  허락받고 올리는 사진^^
떠나기 전 마지막 샹그리아


안달루시아는 정말 아름다웠다.

두 도시 모두 그랬지만 개인적으로 아담한 도시 그라나다가 쪼~금 더 그랬다. 고백하자면,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집에 돌아가면 꼭 브런치에 풀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넘실거렸건만 막상 한 번, 두 번, 세 번째 글로 정리하려니 그리고 적을만한 것들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여러 번 그 날을 돌이켜 보고 사진첩을 뒤적여 보아도 알람브라 궁전 이외엔 도대체 무엇이, 어떤 부분이 특별했다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작은 도시이기에 볼 것이 넘쳐 나는 것도 아니었고, 올리브 오일에 절이거나 기름에 튀긴 타파스들도 먹다 보면 한계가 드러날 것이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과자를 나눠 먹던 귀여운 아이들
산책 나온 할머니와 손녀딸 그들과 이야기 나누던 웃음이 많은 청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아름다웠다는 나의 생각은 한결같다. 매일 저녁 해질 무렵 주인을 똑 닮은 강아지들과 같은 자리 같은 벤치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 경찰 단속을 피하던 아프리카계 이민자 청년과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미소를 짓던 할머니와 손녀딸,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던 사람들, 오랜 친구를 대하듯 손님들을 대하던 프랑스령 작은 섬 출신의 웨이터, 레게머리를 하고 손을 꼭 잡은 중년의 히피 커플, 그리고 그들을 향해 누구 하나 편견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 신기한 것은 관광객이 넘치는 도시임에도 현지인과 관광객의 경계가 극명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었다. 고요한 작은 도시, 그 안에 흐르는 무언의 룰을 함께 지키고 존중하는 느낌. 그라나다에 머물던 그 며칠간 나는 수많은 올라(hola:안녕하세요)를 말했다. 동양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먼저 눈인사를 하고 따뜻하게 안녕을 말하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여행의 마지막에 찾아왔다.


여행의 만족도가 높았기에 휴가의 끝에 오는 아쉬움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지만 그보다 더 진하게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우리 집이라는 이 말이 나는 참 좋다. 미니랑 내가 매일 먹고 자고 하는 작지만 아늑한 우리 집. 함께 산지 꽉 찬 5년이 다 되어 가고 그중에 절반은 떠돌이처럼 살다가 나머지 절반을 이 집에서 살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동안 그 여운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저녁마다 타파스식 상차림으로 기분을 냈지만 그것이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을 뜻하지는 않는다. 내가 현지인이 아니라서 그것이 여행이기에 이만큼 좋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때때로 지나간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 모를 다음 목적지를 상상한다. 평범함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우리집에서의 일상이 좋다. 5월의 안달루시아는 아름다웠고 그 속의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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