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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Sep 16. 2017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La bonne heure

너는 그래도 프랑스에 살잖아.

수도 없이 들은 말.

프랑스에 사니까, 파리에 사니까…  나의 삶이 굉장히 환상적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나의 가장 가까운 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의 생각과는 달리 내 삶은 별 다를 게 없다. 한국에 살아서 좋은 점이 있고 아쉬운 점이 있듯 그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내 맘 속 저울은 커리어를 잃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쪽으로 좀 더 많이 기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타고나길 향수병 같은 건 없다. 프랑스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안 들고 한국이 미치게 가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냥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이곳 파리의 여름이 지나갔다. 파리에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본래 그건 여름이었다. 파리지앙들이 휴가를 떠나고 난 후의 한적한 골목길, 그 사이를 걷다 보면 낡았지만 숯한 역사를 품은 도시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다가오곤 했고 정말 흔치 않게 파리에 사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계절인 그 여름이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그것도 매우 섭섭하게.


초여름 언제부턴가 몸이 안 좋았다. 좀 더 구체적으론 하체에 원인모를 통증과 불편함이 생겨 침대와 소파에 널브러진 채 두 달을 보냈다. 프랑스 의료시스템상 모든 것은 주치의를 통해야만 하는데 처음엔 무리를 해서 아프겠거니 생각하고 주치의가 처방해 준 크림을 바르는 것이 다였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 다시 주치의를 만난 후 처방전을 받아 엑스레이를 찍고 포돌로그라 부르는 발전문의를 만나고 또 소견서를 받아 류머티즘 전문의와 미팅 예약을 했다. 전문의와의 미팅은 3주를 더 기다려야 했는데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아파서도 그랬고 덕분에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것이 슬펐다. 정형외과 가서 바로 엑스레이 찍고 진찰받고 원인이 뭔지라도 빠르게 알 수 있는 한국의 시스템이 그리웠다.

주치의 소견서에 적힌 증상이 맞다면, 인터넷에 써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맞다면... 완치는 없다고 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 별 수 없었다. 마냥 기다려야 했다. 걷기도 서있기도 앉아 있기도 힘이 들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었고 걱정이 되니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런데 어쩜 검색을 할수록 두렵고 무서운 얘기들만 있는 건지...


그러는 중에 어김없이 두 번째 문제마저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프랑스 체류증 문제.


프랑스 법률상 결혼을 했어도 만 3년이 넘을 때 까지는 매년 배우자 비자를 갱신해야만 하는데 지난해 4월에 신청한 비자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겨우 1년짜리 체류증을 신청했는데 1년 반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내 서류에 문제가 있는 건지 분실된 건지 알 수도 없다. 공무원들은 전화도 안 받고 이메일도 다 씹는다. 덕분에 나는 2016년 4월 이후 3개월마다 임시체류증을 연장해서 살고 있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이토록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나라가 이 곳 프랑스다.


경시청과 함께 우뚝 솟은 저 쓸데 없이 높은 건물은 법원이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국인 겁주려고 같이 세운건가?

체류증에 관한 문제는 경시청이라 불리는 곳에서 처리를 하는데 인간미라고는 없는 어마 무시한 곳.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육두문자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곳. 아무리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비자를 받고 왔어도 거기 가면 다 죄인이다. 꿈에서도 보기 싫은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곳.


9시간의 기다림을 함께한 수많은 외국인 동지들

지난번 임시체류증을 받을 때는 9시간을 기다렸다. 그중에 8시간은 서서 그리고 그 8시간 중 5시간은 35도 한여름 땡볕 아래 서 있었다. 정말 다리 부러지는 줄. 내가 사는 곳은 파리 메트로 1호선이 지나지만 행정상은 파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구역 경시청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6월 중순경부터는 체류증을 위해 텐트 치고 밤을 새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뉴스와 시사 잡지에 종종 나오고 있다. 너무 두렵다.

내가 우울할땐 본인의 옷가지를 내 옆에 두고 출근하는 미니. 그러나 미니의 저 노란 잠옷도 약발이 다 떨어진 지난 여름. 나는 그냥 아프다는 생각만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리도 아픈데 거기 가서 줄 서있을 생각을 하니 서럽고 막막해서 잠도 안 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나는 이렇게 아픈데 왜 거기까지 가서 개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뿐. 정말 미니만 아니었다면 이 가식적인 평등과 박애의 나라 진작에 퉤퉤! 뒤도 안 보고 떠났을 거다. 별로 정이 안 드는 이 나라에 주야장천 살고 있는 이것은 나의 어마 무시한 사랑의 힘이라고 남편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실은 나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사랑 때문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배려하는 미니의 마음이 모든 것을 감내하게 해 주는 거 같다. 내가 아픈 뒤론 잉여가 된 내 몫까지 다 하느라 남편의 일과가 훨씬 더 촘촘해졌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고 와서 저녁 준비를 도와주고 설거지를 하고 남는 시간엔 각종 행정처리에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가계부를 쓰거나 집안을 청소한다. 그리고 아침엔 간 밤에 씻어둔 그릇들을 정리한 후 점심에 내가 먹을 샐러드나 계란을 잘 씻어 두고 출근. 이런 미니 때문에 나는 불평할 일이 전혀 없는 복 받은 사람임에도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일상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조차 잊게 만들었다. 웬만하면 다리를 쭉 뼈고 찜질팩과 한 몸처럼 지냈다. 외출이 불가능한 데다 테이블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마저 허락지 않는 몸 상태 때문에 우울함은 배가 되었고 걱정과 불안이 꽉 들어찬 내 맘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빨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다리에는 찜질팩을 올리고 영혼 없이 넷플릭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대던 어느 날, 출근한 미니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몸도 맘도 아픈 나를 위해 바닷가로의 2박 3일 주말여행을 예약해 두었다는 것. 미니에겐 미안하지만 순간 든 생각은 '아…이 남자는 안 아파봐서 모르는구나.''지금 휴식을 취해도 모자랄 판에 여행을 가자는 게 말이 되?' '가봐야 걷기도 힘들고 남편에게 미안해지고 돈만 아까울 거 같은데...' 썩 내키지 않았지만 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나의 삐뚤삐뚤 모난 생각은 일단 숨겼다. '기쁜 척' 했다.

그런데 휴가가 또 어디 그냥 가는 건가. 다리에 압박붕대를 칭칭 감고는 빨래도 돌려놓고 가방도 싸고 가는 길에 먹을 것도 간단히 준비한 후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온 미니가 집에 오자마자 출발. 초행길에 금요일이고 중간에 구글맵까지 오작동을 해서 5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도착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렌트한 집으로 가서 집주인과 인사를 하고 열쇠를 받으니 7시.

대충 가방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노을 지는 바닷가를 지났다. 저 오렌지빛 노을이 내 맘을 녹여준 걸까? 다리가 아픈 건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의욕 제로인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와 준 남편의 정성이 고마웠고 이 예쁜 노을을 볼 수 있게 된 그 순간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바다는 아름다웠다.


우리가 지낸 집 거실에 나 있는 세 개의 창을 통해서도 햇빛을 흠뻑 느끼고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나보다는 미니가 훨씬 더 많이 이 창문에서 시간을 보냈다.

"빨리빨리! 우리 친구가 왔어!"

 

헥터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우리를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그냥 그 집 창가에 터를 잡고 산 순하디 순한 몸집 작은 갈매기. 어쩌다 브리오쉬를 한 덩이 떼어주면 기쁘게 받아먹고 다시 훨훨 날아 놀러 나간다. 우리가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어느새 눈치채고 다가와 목을 빼고 집안을 살펴보거나 창가에 가만히 앉아 일광욕을 했다. 신기하게도 창문을 열어 두어도 절대 집안으론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갈매기들처럼 시끄럽게 울어대지도 않았다.


2박 3일 중 유일하게 꽉 찬 하루를 보냈던 날.

굴 산지로 유명한 옆 마을에 다녀왔다.


갓 잡아 올린 굴을 사진에 보이는 만큼 먹고 한 판을 더 먹었다. 굴은 그냥 굴 맛이었지만 바다를 보면서 먹으니 꿀 맛.



다시 돌아와 한낮의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점심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갈렛(Galette)과 시드르(Cidre: 2%정도의 알콜이 들은 사과주)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한참 좋은 시간을 보낸 뒤 너무 무리했는지 다리가 아파서 나는 숙소로 가고 남편은 혼자 마실 물이랑 음료를 사러 갔다. 발소리가 나길래 얼른 문을 열었는데 엄마나!


"왜 다 나만 봐?"


"사람들이 다 나만 봤어!"

라고 말하는데 너무 웃겼다. 해산물이 산처럼 쌓인 플라또(plateau: 쟁반에 담긴 음식)를 들고 나타난 미니. 본인도 이렇게 투명하게 포장을 해 줄 거라곤 예상을 못했단다. 그 북적북적한 작은 마을에서 관광객 물결을 가로지르며 해산물 동산을 들고 땀 흘리며 왔을 내 남편. 양 손엔 이 무거운 걸 들고 백팩에는 물이랑 시원하게 칠링 된 화이트 와인과 시드르를 담아 왔다.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셨다. 정말 신나는 밤이었다. 남편과 달달한 시드르가 든 잔을 부딪히면서 나는 그동안 내 맘을 짓누르던 이 거지 같은 기분을 완전히 날려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에 또 오자!

그렇게 짧은 주말여행이 끝이 나고...




바로 다음날 류머티즘 전문의를 만났다. 앞사람 진료가 길어지는지 예약한 시간보다 한참 후에야 의사를 볼 수 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 내내 식은땀이 났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 건 아닐까, 수술하고도 회복이 안되면 어쩌지, 영원히 이대로 지내야 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드디어 만난 류마톨로그는 쾌활하고 다정한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일단 들고 간 엑스레이를 판독하고 증상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누굴 닮아 나는 이리 겁쟁이인가


뒤이어 다리를 만지고 여기저기 누르고 움직여 보는 평범한 진료가 이루어졌는데 이것도 나는 너무 무서워.

마지막 질문

한 40분이 지났을까? 긴긴 진료가 이제 끝났나 보다 하던 차에 내 얼굴을 보시더니 내가 아니라 미니에게 물으셨다. "요즘 니 와이프 마음에 무슨 걱정이 있지는 않니?" 미니는 조심스레 체류증에 관한 얘기를 했고 의사 선생님은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건지 물으시고 프랑스의 현 행정제도에 대해 격한 안타까움을 표하시며 나를 걱정해 주셨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이 없이 절대 몸이 건강해질 수는 없는 거라며 최종처방을 주셨는데 그것이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딱 세 가지.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얘기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꼭 지킬 것.

아프다는 생각을 잊고 무조건 릴렉스, 마음의 평화를 찾을 것.

마지막으로 신나게 그림을 그릴 것.



진료를 마치고 그녀의 오피스를 나올 때 내 손에는 세 장의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비자받으러 갈 때 쓸 보호대 처방전, 물리치료사(Masseur-kinésithérapeute)와 진행해야 할 재활운동 처방전, 프랑스 사람은 웬만하면 다 아는 식물성 스트레스 약과 평범한 진통제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빨리빨리


일주일에 두 번씩 약속이 있다.

1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도 혹시나 늦을까 매번 서둘러 집을 나선다.


나의 재활치료 담당인 루이스는 내가 본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상냥하고 쿨한 파리지엔이다. 둘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뒤죽박죽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척하면 척이다. 치료에 관한 얘기는 물론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많이 웃는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워서 30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물리치료사를 만난 것이 대단한 행운으로 느껴져 매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아플 때 그것을 표현할 수 있고, 들어주고 헤아려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희망을 품게 된다. 특히나 그것이 내 나라가 아닐 때 감사함은 배가 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계획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랬던 커피가 맛이 없어져 눈길조차 안 주던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한 지 며칠째. 샷을 내리고 두유 거품을 내서 제일 좋아하는 라떼를 만들고 의자에 앉아 심호흡,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들이켰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찔끔. 커피가 너무 감동적으로 맛있는 거다. 향은 또 얼마나 좋던지…  늘 같은 커피 빈을 사용해 왔는데 왜 지난여름엔 이 맛을 못 느꼈을까? 새로운 계절과 함께 커피가 맛있는 아침이 다시 돌아왔다.


치료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내 비자는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다.

며칠 후 또 임시체류증을 연장하러 가야 하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언제까지 3개월 인생으로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엔 미니랑 같이 간다. 주말에 캠핑 의자를 샀고 먹을 것도 챙겨가려고 한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둘이서 소풍 가는 느낌으로 가보기로 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삶을 되돌아 볼만할 여유조차 없이 절망 속에 사는 사람에게 너는 왜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니?라고 다그치는 말 같아서 누군가에겐 굉장히 아프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행운아다. 지금 내 인생에 딱 저 두 가지 말고는 미치도록 걱정할 게 없지 않은가. 내 맘을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고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나을 수 있는 희망이 있고 아직 젊다. 무엇보다도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커피가 맛있는 멋진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충분히 있으니 이런 게 행복 아닐까? 돌아올 또 다른 여름을 기다리며 열심히 재활하고 그림을 그린다.

 

나는 매일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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