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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Jan 26. 2018

아픈 것도 허락받아야 하나요?

병가에 대하여

아프다



하루 종일 콧물이 났다.

기침도 멎을 생각을 않는다.

머리는 멍하고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휴, 어떡하지? 회사일도 많은데... 음... 아니야.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회사가 내 목숨, 책임질 거야?'


서연은 잡념을 떨쳐내듯 고개를 좌우로 급하게 흔들었다.  그리고선 휴, 긴 한숨을 내 쉬며,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한다.

병가 신청서를 클릭하고 급한 대로 내일 금요일 하루, 체크를 한 후 전송 버튼을 누른다. 


회사 취업규칙(보통 사규라  불린다. 회사 근로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조건 등이 담겨 있는 문서로서 법적 효력을 가진다)에는 "병가는 최대 10일간 허용한다, 3일 이내 병가의 경우 결재를 받아 사용하며, 사후 처방전 혹은 진료확인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3일을 초과하는 때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의 진단서 혹은 소견서를 받아 사전 결재를 득해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하필 일도 많은 이 시기에 병가라니...'


이런 신청일 수록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서연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팀장  자리로 걸어갔다.

코를 계속 훌쩍거렸다. 기침도 했다.

팀장에게, 내가 아프다, 라는걸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콧물이 흘렀고 기침이 났다.



억울하다



"저, 팀장님..."

"아, 박주임, 무슨 일이지?"

"제가 지금... 결재서류 하나, 올렸는데요..."


팀장은 반색했다.


"와, 박주임, 능력자네!"

"네?"

"어제, 내가 부탁한 자료, 그거 벌써 다 끝낸 거야? 역시 박주임, 대단해."

"아, 팀장님, 그게 아니고..."


서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 팀장은, 어디 한 번 볼까, 혼잣말을 하면서 딸깍, 마우스의 왼쪽 귀퉁이를 눌렀다.


모니터에 또 하나의 창이 열리는 순간, 김 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공기의 색깔이 우울한 회색빛으로 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김 팀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턱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김 팀장은 휴~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가시가 돋아 있었다. 서연에게 말했지만, 서연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모니터에게 얘기하는 듯했다. 아픈 부하에 대한 연민은 1도 없는 말투였다.  


"박주임, 아파? 어디가 아픈데?"


서연은 알고 있다. 그건 자신에 대한 걱정도, 병명(病名)에 대한 궁금증도 아니었다.


'얘가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이 바쁜 시기에 병가를 신청해?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어디가 아프냐는 퉁명스러운 질문엔 그런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서연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팀장님, 죄송한데요...(아픈 게 미안한 거구나)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너무, 라는 부사 어구는 병가 신청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었다. 진짜, 너무 아팠다.


"내일. 금요일인 건 알지?"


금. 요. 일.이라는 말이 비수가 되어 서연의 가슴 한편을 찔렀다.


'내가 바보냐? 그걸 모르게. 금요일에 병가 낸 거, 주말까지 쉬겠다는 불순한 의도, 아니냐? 그걸 얘기하고 싶은 거지? 내가 지금까지  금요일에 휴가 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그냥 아프다는 부하, 한마디라도 위로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이 야박한 인간아...'


하지만 서연은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팀장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팀 바쁜 거, 몰라? 왜 이래, 박주임! 내일만 나오면 주말이잖아? 그거 하루, 못 참아?"


'팀장님, 저 요즘 계속 야근입니다! 지금 2주일째 햇빛도 못 보고 있다고요. 제가 언제 허투루 일한 적 있습니까? 너무 아파서 고작 하루 병가 쓰겠다는 건데, 왜 저를 인내심도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이십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에게, 을의 진심이란, 무능한 자의 변명으로 치부될 뿐이다.
서연은 진심보다 실리를 택하기로 했다.  


"네, 팀장님.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몸이 너무 힘들어서요. 말씀하신 자료는 저번에 지시하신 대로 월요일까지 꼭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은 좀 쉬겠습니다"

"알았어. 자리에 가 있어. 자료, 데드라인 확인 해 보고 다시 부를게"


자료는 박주임 말마따나 월요일까지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김 팀장은 그저, 병가는 일단 보류하라는,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어린애가 어른이 좋게 얘기할 때 네, 네 할 것이지... 어디서 나쁜 버릇은 배워가지고. 내가 직장 다닐 땐, 저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저래 가지고 어떻게 사회생활하려고...'


아픈 사람의 마음 따위, 팀장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깟 콧물과 기침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는 박주임이 한심스럽고, 괘씸했다. 상사 말에 토를 다는 나쁜 습관도 고쳐주고 싶었고, 내심 이번 기회에 한 번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자, 싶었다.



대들다



"박주임, 잠깐 자리로 와요"

"네, 팀장님"


박주임은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팀장 자리로 걸어갔다.


"자기한테 미안한 말인데, 내일  하루만 견뎌봐. 일, 안 하고 앉아 있어도 좋으니까... 그리고 병원은 내일 점심에 잠깐 갔다 오는 걸로 하자. 오케이?"


진짜 아파서, 그리고 엄청 고민 고민하다가 병가 신청한 건데 왜 팀장은 이 난리를 치는 걸까, 박주임은 생각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는지, 머리 속에 저장돼 있던 침묵의 강물이 박주임의 의지를 짓밟으며  콸콸 터져 버리고 말았다.


"예? 팀장님! 가만히 앉아 있을 바에야, 회사는 왜 나옵니까? 지금까지 밤낮없이 일해오지 않았습니까? 진짜 몸이 아파서 하루 병가 내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


아차, 싶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키보드를 딸그락거리던 주위의 선배와 동기들도 순간적으로 일시정지상태가 된 채, 고개를 빼꼼 내밀고선 이 흥미로운(?) 상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휴~내가 이래서 여자는 뽑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건만..."



무너지다



김 팀장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팀장은 노련했다. 큰 소리는, 목소리의 크기 외에는 자기의 뜻을 드러낼 방법이 없는, 힘이 없는 자의  처절한 외침일 뿐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굳이 크게 소리 지를 필요가 없었다. 잔잔한 소리가 더 힘이 있다는 걸 팀장은 알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가 전달하는 모욕감은 서연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그게 팀장이 여직원을 길들이는(?) 방식이란 걸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당하고 나니 뭘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간단한 어휘 하나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박주임?"

"네. 네? 네..."

"병가는 팀장에게 전결권 있는 거 알지? 다음번에 기회 봐서 병가 내줄 테니까, 내일은 그냥 나와요.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고. 조직사회다, 생각하고 이해해 줘"


팀장에게 병가란, 그냥 여유가 있을 때 주는 혜택 같은 것일까? 자기도 여자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걸까?

진짜 습관적으로 얄밉게 병가를 신청하는 직원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회사를 위해서 밤낮없이 충성하고 있는 자신이 그런 직원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게, 서연은 슬펐다... 그러다 짜증이 났다.... 그러다 분노가 쓰나미같이 밀려왔다.

하지만 하릴없이, 입속에 한 가득,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섭섭함과 억울함과 분노의 용어들을, 맛없는 음식을 먹듯 꾸역꾸역 식도로 집어삼키며 서연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법, 차별하다



팀장의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로 걸어 들어오는 몇 발자국의 길이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그 천리길을 걸으며, 서연은 삼촌에게 배웠던, '병가'에 대한 법률지식을 마음속으로 복기해 보았다.


병가(업무상 재해로 인한 질병이나 사고가 아니라 개인 사정으로 인한 사고, 질병 때문에 쉬는 휴가를 말한다)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는 건 병가를 줘야 할 의무가 회사에 없다는 말과 같다.

병가 기간이 몇일인지, 병가 기간에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아닌지가 법에는 나와 있지 않다는 말이다.

병가는 그저 회사의 취업규칙에 나와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에도 나와 있다)

근로자수가 10인 미만인 사업장은 취업규칙 작성의무가 없다. 그런 조그마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근로계약을 봐야 한다. 병가는 근로계약에 명시해야 하는 필수사항이 아니므로, 병가규정이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쳇, 아픈 것도 큰 곳, 작은 곳, 차별하고 있네...

회사마다 병가일수는 천차만별이다. 병가기간을 유급으로 할지 무급으로 할지도 취업규칙(혹은 근로계약)에서 정하기 나름이다. 한마디로 병가란, 어떤 회사를 다니는 가에 따라 그 조건이 달라지게 되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실상과 노동인권에 대한 사업주의 철학을 드러내 주는 휴가다.

서연은 과거 삼촌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삼촌,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건데, 공무원들도 그럼 병가가 천차만별인 거야?"

"아냐, 아냐. 공무원들은 공무원 복무규정이란 게 있어. 개인적인 질병으로 업무수행이 어려울 때는 60일까지 병가를 낼 수 있지"

"와. 대박~! 그럼 그 기간에 돈도 나와?"

"응, 나와. 유식한 말로 그걸 유급병가라고 하지. 그런데, 공무원들도 병가규정 활용 못할 때가 많아. 병가제도가 있긴 하지만, 쓰질 않거나 연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직문화나 관행의 문제랄까. 우리나라는 아픈 사람, 살기 힘든 나라야. 아픈 것도 힘든데, 눈치도 엄청 주지..."


그 때, 서연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병가를 활용하는 문화가 안돼 있더라도 공무원들은 법규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 국민들은 공무원들이 아플  때 편하게 쉬라고 세금으로 십시일반 돈을 내고 있는데, 왜 사기업체는, 병가에 관한 법규정조차 없는 걸까? 결국 회사의 의지에 따라 병가를 안 주더라도 괜찮다는 거잖아.


쳇. 0일과 60일이라...
그러니까 공무원 시험에 학생들이 몰리는 거지.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학생들에게 꿈이 없다, 야망이 없다, 욕할게 아니라,
국회를 욕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많은 세비 받아먹고서 청년들을 위해, 직장인들을 위해 뭘 하고 있냐고. 대체...


그때 그 생각이 서연에겐 현실이 되었다. 그 빈약한 법 때문에 서연은 팀장에게 한 마디의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쓰러지듯 털썩 서연은 자리에 앉았다.  하필 모니터엔 보란 듯이  최신 기사 하나가 열려 있었다.


9월 5일 집배원 이 모 씨(53)가 자택에서 번개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관련기사 : http://naver.me/xc6aEV3z (시사인 2017.9.27자)


'사람 취급 안 하네'라는 유서 글귀가 심장 한 구석을 미세한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마음이 아려 왔다. 왜 우리나라는 아픈 직장인에 대한 휴식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걸까? 아픈 사람에겐 기본적인 인권조차 없는 걸까? 병가는 권리가 아니고, 사용자가 베푸는 수혜에 불과하단 말인가!

서연은 돌아가신 집배원에 대한 기사를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하긴, 나도 사람 취급,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이러다가 정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유서라도 써 놓아야 하나...

아냐. 난 싸울 거다.


끝은 무딜지 몰라도 송곳이 될 거다.


삼촌이 그랬다. 우리 사회는 억울한 피해자가 득실대고 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되고 있는 사회라고. 그래서 누군가는 송곳이 되어야 한다고. 그 송곳이 결국 자신도 지키고, 사회도 지키게 될 거라고... 삼촌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송곳이라는 웹툰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굳이 송곳이 되어야 하나? 하지만, 아픈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이 냉정한 조직에서 난, 버텨낼 수 있을까...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송곳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서연은 갑자기 연차휴가가 떠올랐다. 알바시절의 추억(?)이 깃든 휴가였다.


1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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