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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Feb 09. 2018

고객님, 건드리지 마세요!

고객의 성희롱에 대하여

절망...


민기가 궁금한 듯 서연에게 다가온다.

민기는 두 달 먼저 가게에 들어온 알바계의 선배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래, 어제 점장  만난 건 잘 됐어?"

"어, 아니, 그냥, 뭐..."


서연은 말을 얼버무렸다.

호기롭게 나갔다가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나온 걸 굳이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민기는 눈치가 빨랐다.

서연의 얼굴에 깔린 수심과 부끄러움을 직감했다.


"어, 그래. 수고했어. 그래도 너, 참 대단하다. 그런 걸 얘기해볼 생각을 다하고. 저번에도 그러더니... 네 용기가 부럽다. 조금씩 좋아지겠지, 뭐..."


어젯밤, 노동법 교과서를 들춰보면서 서연은 생각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법은 결코 현실의 꼼수를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과연 내가 보고 있는 이 법이 나를 구제할 수 있을까?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서연은 자신이 없었다.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인격과 수준의 문제가 아닐까, 라는 절망감이 서연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도 물밀듯이 밀려왔다.


1주일 전의 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계급사회...


세 명의 아저씨들이 가게에 들어왔다. 삼십 대 중반쯤일까, 싶었다.

약간의 술냄새가 났다. 식사도 하기 전에 무슨 술일까, 싶었지만 그건 서연이 관여할 바, 아니었다.

그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무덤덤하게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를 안내했다.

주문을 받고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쟤, 예쁘지 않냐? 몇 살쯤 됐을까? 내가  번호 한 번 따 볼까? 손이나 한 번 슬쩍 건드려 볼까? 크크크"

"야, 꿈깨. 쟤같은 영계가 너 같은 걸 거들떠나 보겠냐? 밥이나 드셔~~"


큰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는 사방이 꽉 막힌 가게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타고 서연의 귓가로 전달되었다.

서연은 움찔했다. 서연은 거의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사내를 노려 보았다.

서연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하다, 말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당황스러워할 줄 알았다.

그게 상식이라 생각했다.


뜻밖의 음성이 서연의 귓가를 때렸다.


"뭘 째려봐? 사람 처음 봐? 응?"


뜻밖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서연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아, 아니, 지, 지금, 아저씨가 저한테 이상한 소리, 하셨잖아요?"

"뭐? 뭔 소리? 아... 너 예쁘다는 소리? 번호 따고 싶다는 소리? 지금 보니 예쁘지도 않네. 번호 필요 없다. 됐니? 어디서 손님한테 말대답이야?"


서연은 순간 얼음이 되었다.

뜻밖의 소동에 점장이 뛰어왔다.


"아,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뭐 불편하신 거라도..."

"아니, 알바생 관리,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좀 예뻐 보여서 혼잣말로 예쁘다고 했더니, 손님을 째려보질 않나, 소릴 지르지 않나. 이 식당 컨셉이 침묵이에요? 말도 맘대로 못 하고. 참나..."


점장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뭘 잘 몰라요. 제가 가서 교육, 잘 시키겠습니다. 자, 자. 이제 앉으셔서 식사하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이, 서연 씨 뭐해?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고?"

"예? 제가요? 왜요?"


점장의, 뜻밖의 요구에 서연은 당황했지만, 점장은 눈짓으로 서연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며, 사과를 채근했다. 점장의 눈꼬리는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본인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동료 알바생 민주도 옆구리를 툭 툭 치며 머릿짓으로 사과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느낀 모욕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불편한 상황이 싫었을 뿐이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삐딱하게 살지 마세요. 예쁘다고 하면 좋아할 일 아닌가. 참. 황당하네. 미안하다고 하니 됐어요. 이제 가서 일 보세요"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었고, 피해자는 예쁘다는 말 한마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삐딱한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자본주의의 민낯은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았다. 저런 진상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소비자가 왕이라니, 그 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서연은 생각했다.


계급사회였다.
조그마한 가게 속에서도 계급의식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본인은 카스트제도의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수드라 계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장이 되면, 이런 글을 가게 앞에 붙여 놓을 거라고, 서연은 생각했다.


"진상고객은 출입을 금합니다. 노동자를 존중해 주세요. 성추행이나 성희롱 고객은 바로 추방하며, 형사고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노동자에겐 이런 서약을 받을 거다.


"진상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진상에게는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당당히 사과를 요구한다. 나는 존귀한 존재다"


소비자는 그저 소비자일 뿐이다. 그들은 왕이 아니다.

아니, 왕처럼 대접을 받고 싶으면 왕처럼 백성을 섬겨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꿈과 같이 서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꿈이 아니었다.

이 끝나자 점장은 서연을 호출했다.




현실...


"서연 씨, 잠깐 나 좀 볼까?"

"네"


근무시간 중의 일을 위로해 주겠거니 생각하며, 서연은 점장실에 들어갔다.


"왜 그리 까칠해? 장사 한 두 번 해봐? 그렇게 나약해 빠져서야 앞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해?"

"아, 점장님. 그래도 오늘 그 손님들은..."


"그래, 그래. 알아. 걔네들 진상인 것. 그래도 어떻게 해. 걔네들이 왕인걸. 적당하게 살자. 그렇게 서연 씨처럼 다 따지다간 아무것도 못해. 그게 자본주의야. 그게 현실이라고. 알아?"


현실이라는 잔인한 단어 앞에
서연은 침묵했다.


그리고 이런 진상고객에 대해 점장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려 했던 본인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법...


남녀고용평등법(정확한 법률 이름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고 이 법대로 점장에게 고충을 얘기하려 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의2(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
 ① 사업주는 고객 등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성적인 언동 등을 통하여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하여 해당 근로자가 그로 인한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의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근로자가 제1항에 따른 피해를 주장하거나 고객 등으로부터의 성적 요구 등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39조(과태료)]
② 사업주가 제14조의2 제2항을 위반하여 근로자가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거나 고객 등으로부터의 성적 요구 등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이익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③ 1의 2. 사업주가 제14조의2 제1항을 위반하여 근무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의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삼촌이 그랬다. 진상고객들이 많다 보니, 비교적 최근에 추가한 법조항이라고...

생각해보니 동료 알바, 민주에게도 집적대는 인간들이 많았다. 전화번호 물어보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슬쩍슬쩍 스킨십을 시도하는 경우도 보았다. 민주는 워낙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알바들만 있는 자리에선 온갖 쌍욕을 해댔다. 귀싸대기 시원하게 날리고 싶어도, 자기만 손해 볼 것 같아서, 그냥 참는다고 했다.


고객이 성희롱할 경우에 고충을 얘기하라는 법이 있으니, 점장에게 한 번 얘기해보라고, 했다. 그때 민주는 피식 웃었다. 우리 서연이, 아직  사회생활 좀 더 해야겠구나. 민주는 마치 점장처럼 서연에게 말했다.


"서연아, 내 친구가 간호사야. 한 변태 같은 새끼가  밤에 외로우면 병실에 찾아오랬다는 거야. 어떤 놈은 주사 놓으려고 팔을 잡았더니,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좀 더 부드럽게 만져달라고 했다나  뭐라나. 그 친구 노이로제 걸려서 병원, 그만뒀어."

"아니, 그 정도로 힘들었으면 위에다 얘기를 좀 하지?"


"왜 얘기를 안 했겠니? 안 그래도 병원 경영 어려워 죽겠는데,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말 내지 말라고 주의만 받고 왔대"

"아무것도 아닌 일? 그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내 말이... 그런 생각이 들었대.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라, 그 회사에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그래서 관뒀대."


민주의 말마따나  점장에게 법은,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불과했다. 근로감독이 나오면 그제야 몇 개 뒤적거려보는 귀찮은 존재였다.


예전에 삼촌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 성희롱은 빙산의 일각이야. 드러난 성희롱은 채 1%가 안된다고 하지. 성희롱의 피해자라고 얘기하는 그 순간, 얼마나 많은 불이익이 생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거야.  

사실 같은 직장 내 동료나 상사에 의한 성희롱도 문제지만, 고객에 의한 성희롱도 심각한 수준이야.

그런데, 모두들 쉬쉬하고 있어. 두렵기도 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현실도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누려야 할 인간의 존엄성은 서서히 질식사하게 되는 거야. 난 적어도 너같이 젊은 사람들은, 그 몰상식한 현실에 분노라도 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당장 크게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야. 그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 아닐까? 왜 우린 그런 당연한 감정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서연도 그랬다.


당연히 누려야 할 상식적인 분노의 감정조차 속으로 삭이며
터덜터덜 하루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어둡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제3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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