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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요?

임산부 보호조항에 대하여.

by 김영호 노무사

한여름밤의 꿈이었을까? 달콤한 신혼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민주에게 임신이란, 축복이자, 현실이었다.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었지만 생각은 10년 후를 배회하고 있었다.


임신에 호의적인 직장문화가 아니었다. 생명 속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생명. 그 생명은 적어도 회사라는 공간에선 환영받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 같은 철학적 용어는 전쟁터와 같은 직장의 현실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가치는 사라지고, 고단한 현실만 남았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아기는 세상의 언어를 배웠다.
겉과 속이 다른 언어였다.


휴게실 뒤에 자리 잡은 은밀한 뒷담화의 아지트에서 수군수군대는 말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이대리, 임신했다며? 첫째 낳고, 1년 만에 애 가진 거, 아냐?'

'직장 생활하는 거, 알고는 있는 건가? 그렇게 대책 없이 애를 낳다니... 남아 있는 동료들은 도대체 어떡하란 거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렇게 애를 낳을 거면, 육아 보장이 잘 돼 있는 공무원이 될 일이지... 한 사람이 아쉬운 회사에 와서 그렇게 애를 낳으면, 민폐인 거, 모르나?'


태아는 민폐가 되었고, 그 엄마는 민폐를 낳고자 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생명은 그렇게 무시되었다.




민주도 알고 있었다. 한 생명이 가져오게 될 고단한 삶의 예정표. 하지만,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 이 참에 회사 그만둘까?"

"힘들어?"


"직장에선 가시방석이야. 애 낳으려고 직장에 들어왔냐고, 뒤에서 수군수군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고."

" 낳는 게, 죄야?


"응. 죄야.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당신도 알고 있잖아..."


복이 저주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우리...




나라에선 아이를 낳으라고 아우성이었고, 직장에서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거기에 생명의 논리는 없었다. 나라에선 그저 한 사람의 경제활동인구가 필요했을 뿐이고, 직장에선 임산부로 인한 부대비용이 아쉬웠을 뿐이다.


교육문제, 집문제 등 각종 육아문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왔지만, 민주는 아이를 낳고 싶었다. 어떤 부부들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긴다지만, 민주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온 방안에 가득 채우고 싶었다.


드디어 첫째를 임신했다.

민주는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닫았다. 아이를 낳고, 직장도 다니려면, 온갖 수군거림에 대처할 만한 지혜가 필요했다. 민주는 침묵을 택했다. 나라가 원하는 대로 임산부에 대한 보호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이를 보호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뭐라고 욕을 하건, 뚜벅뚜벅 아이를 보호하기로 했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래 봤자,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었다.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민주는 떨렸다. 이게 뭐라고...


"저,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이대리, 뭔 일이야?"


용기가 필요했다. 이게 뭐라고...


"저, 임신했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팀장은 헛기침을 했다.


"아, 아, 그래? 그래... 잘 됐네. 축하해. 남편도 좋아하겠네"


입과 표정이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정대리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었다. 김과장이 있긴 하지만, 필드에서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은 민주 밖에 없었다. 인턴사원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안을 올릴 수는 없었다. 민주는 박팀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팀장의 표정에서 나오는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팀장님. 저,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할까,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⑦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1일 근로시간이 8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1일 근로시간이 6시간이 되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다.
⑧ 사용자는 제7항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여서는 아니 된다.

임신 중 근로자는 임신기간 중에 유산의 위협에 시달린다.

특히 임신 초기, 그리고 임신 후기가 위험했다. 임신 후 12주 이내, 그리고 임신 후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는 2시간 짧게 근무하겠다고 청구할 수 있다. 1일 근로시간이 8시간이라면, 1일 6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근로시간은 단축하더라도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된다.


팀장은 그래도 쿨한 편이었다.

어차피 임신 중 근로자는 연장근로를 할 수 없으니까(근로기준법 74조 5항), 그냥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 선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가 거부했다.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 팀장보다는 아이가 소중했다.


"뭐, 이대리야, 워낙 일을 잘 하니까... 6시간 근무하더라도 맡은 일은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 알겠지?"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일, 소홀히 하는 건, 없을 겁니다"


정작 뒤에서 온갖 담화가 이어졌다.


'아, 글쎄... 이대리... 이대리가 2시간 빨리 퇴근하면서, 임금은 똑같이 받아간대. 참나, 세상 좋아졌어. 나도 임신이나 할까 봐"

'박팀장도 힘들겠네. 이대리 성격, 아니까,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겠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그런 거 일반 직장에서 누가 사용해? 공무원들이나 쓰는 거지...'


비아냥인지, 자괴감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말들이 바람결에 민주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아이가 태어날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유산·사산 휴가제도


임신 사실을 팀장에게 언제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어느 토요일, 서연이가 전화를 했다. 울먹였다. 서연이답지 않았다.


"서연아, 무슨 일이야. 괜찮니?"

"나, 병원이야.."


서연이가 유산을 했다. 두 번째 유산이었다. 임신 28주차였다.

임신을 한 서연이는 평상시처럼 근무했다. 법에 따라 연장근로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6시 정각에 퇴근하는 그녀에게 '땡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저 법을 지키는 자에게, 사람들은 사회생활의 기본이 안돼 있다며 혓바닥으로 악담의 돌들을 던져 댔다. 사실 서연도 불편했다.

6시에,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던지는 그 말이 스스로를 찌르는 가시 같았다. 그래서 8시간만큼은 악착같이 근무했다.

그래도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었다.


임신기간이 28주 이상인 경우에는 유산휴가 90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서연이가 다니고 있는 대기업에선, 60일은 회사가 돈을 지급했고 나머지 30일은 고용센터에서 돈을 지급했다. 중소기업(고용보험법에서는 우선지원대상기업이라 한다)은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60일도 고용센터에서 일정 급여를 지원해 주었다. 통상임금의 100%, 한 달에 160만원이 최대한도였다. 근로자가 160만원보다 더 많은 돈(통상임금)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최초 60일 동안 차액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

유산휴가 혹은 사산휴가의 일수는 임신기간에 따라 달라졌다. 5일, 10일, 30일, 60일, 90일.

<유·사산휴가 일수(근로기준법 시행령 제43조 참조)>

그마저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는 뽑지 말자니까. 이렇게 계속 쉬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왜 뽑는 거야. 도대체...'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그들은 날카로운 입술의 칼을 가슴팍에 던졌다.


서연에게 머물다 간 아이에게 28주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차라리 이런 세상이라면 나오기 싫었던 것일까. 민주는 서연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민주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이를 위해선 타인의 비아냥 따위, 무시하기로 했다. 생명이란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했다. 무엇보다 사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합법적인 권리였다. 욕먹을 일이 아니었다.




출산전후휴가제도



1. 급여지급


서연과 만난 이후, 민주는, 버텼다. 눈치가 보여도 정시에 퇴근했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최대한 활용했다. 서연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 빛도 못 보고 떠나간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 민주 너는 나처럼 하지 마.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어"


출산예정일을 30일 앞두고 출산전후휴가를 신청했다. 출산휴가는 90일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①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통하여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6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 중 최초 6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75일)은 유급으로 한다. 다만,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따라 출산전후휴가급여 등이 지급된 경우에는 그 금액의 한도에서 지급의 책임을 면한다.


출산휴가기간 동안 임금도 지급되었다.

원래 처음 60일은 회사가 지급하고, 나머지 30일은 고용센터에서 출산휴가급여라는 명목으로 지원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우선지원대상기업인 경우에는 처음 60일도 급여를 지원해 줘서 90일을 다 고용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셈이다. 통상임금의 100%를 지원해 주는데, 한 달 최대한도가 160만원이었다. 근로자가 160만원보다 더 많은 돈(통상임금)을 받고 있는 경우, 처음 60일 동안, 그 차액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했다. 유산ᆞ사산휴가와 같은 구조였다.


출산휴가급여를 고용센터에서 받기 위해서는 출산전후휴가확인서에 출산전후휴가급여신청서, 통상임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서 거주지나 사업장을 관할하는 고용센터에 제출해야 했다. 30일 단위로 신청하거나 복직 후 한꺼번에 신청할 수 있었다.


2. 4대보험 처리방법


생각보다 자잘하게 정리할 것들이 많았다.

민주는 차근차근 출산휴가기간 중에도 4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인사팀에 근무했지만 4대보험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서 4대보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사실 세금보다 4대보험료가 은근히 부담될 때가 많았다.


4대보험을 출산휴가기간 중 어떻게 처리할지는, 남편이 도와주었다. 민주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남편은 어른처럼 포근하고 자상했다.


국민연금

"민주야, 우선지원대상기업인 경우에 국민연금 보험료는 90일 전체에 대해서 납부예외신청을 할 수 있어. 그게 인정되면 90일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돼. 일단 회사에 국민연금은 납부예외를 신청해 달라고 해. 그럼 회사에서 처리해 줄 거야"

"아, 그래? 그럼 대기업은?"

"대기업은 처음 60일은 회사가 임금을 주고 있으니까 60일은 보험료를 내야 해. 나머지 30일에 대해서 납부예외신청을 하면 돼. 당신 회사는 우선지원대상기업이니까 이 부분은 패스~"


소득의 4.5%(회사와 근로자가 각각 4.5%를 부담한다)를 내야 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일단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라지만 현실의 삶은 그리 녹녹지 않았다. 은퇴 후의 삶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건강보험

"그럼, 건강보험료는?"

"음. 그게... 출산휴가기간 중에도 건강보험혜택을 받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는 납부해야 해. 그냥 출산휴가기간 중에도 매월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고 생각하면 돼. 만약에 복귀하고 한꺼번에 보험료를 납부하려면 납입고지 유예신청이란 걸 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보험료가 올라갈 수도 있어. 그냥 건강보험료는 다 내는 거고, 매월 내는 거다, 생각하고 있으면 돼"


"그런데 저번에 정대리는 건강보험료를 깎아 주는 것 같던데 그건 뭐지?"

"아, 그건 아마 육아휴직이었을 거야. 육아휴직기간 중에 납입고지 유예신청을 하고 복귀하면 보험료를 60% 깎아 줘. 그러니까, 육아휴직인 경우에는 납입고지 유예신청을 하는 게 좋아. 회사에도 그렇게 얘기하고."


소득의 3.12%(회사와 근로자가 각각 3.12%를 부담한다)를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료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비싼 의료비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에 원정 오는 지인들을 보면서 민주는 건강보험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보험료는 아까웠지만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적인 품앗이였다.


고용보험 & 산재보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자기가 신경쓸게 없을 거야."

"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근로복지공단에 근로자 휴직신고를 하게 돼. 휴직신고를 하게 되면 그 기간 중 산재보험료가 부과 안돼. 뭐 어차피 산재보험료는 회사가 전액 납부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럼, 고용보험료는?"

"보통 노동자가 실업급여에 대한 보험료로 소득의 0.65%를 내는데, 출산휴가기간엔 회사에서 받은 돈이 있는 경우, 그 소득에 대해서만 0.65%를 내게 돼. 고용센터에서 받는 거 말고, 회사에서 받은 돈이 없으면 낼 보험료도 없는 거지."




남편이 고마웠다. 아무리 신혼이라지만 어떤 친구들은 남편과 대화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이해는 됐다.

남편은, 그리고 아내는, 직장에서 그 무수한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감당했을게다.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에 에너지는 이미 바닥이 났을 거고,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다. 그게 우리네 노동현장의 우울한 현실이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봄철에 잠깐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현실은 물 한 방울조차 찾기 어려운 거대한 사하라 사막 같았다.


남편도 다를 바 없을 거다. 사람들로 빈틈없이 채워진 전동차 안에서 힘겹게 출퇴근을 했을 테고, 직장에선 여러 번 상사에게 깨어지고 무너졌을 거다. 내일 처리해야 할 서류들로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하지만 그 피곤한 일상에서도 남편은 민주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팍팍한 현실일수록, 사랑이란 감정은 의지와 결합해야만 했다. 민주는 남편의 부드러움과 그 의지가 좋았다.


현실을 비판하되 현실에 무너지지는 않았다.


민주와 그 길을 함께 가려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달픈 인생의 한 시기에서, 내 편이 되어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다. 아이에게 이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3. 출산휴가 분할사용제도


출산휴가 분할제도가 있다는 건, 이미 민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가 출산일까지 건강하게 자라줘서 이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서연이 이 제도를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원래 출산휴가는 쭉 이어서 90일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출산 후 45일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①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통하여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6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② 사용자는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유산의 경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제1항의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 출산 전 어느 때 라도 휴가를 나누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출산 후의 휴가 기간은 연속하여 45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6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출산 전에는 출산휴가를 분할사용할 수 있었다. 근로자에게 유산의 경험이 있는 경우, 출산휴가를 청구할 당시 나이가 만 40세 이상인 경우, 유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한 경우엔 출산 휴가를 잘라 쓰는 게 가능했다.


서연은 이전에 유산의 경험이 있으므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다.

[출산전에 휴가를 분할사용할 수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43조 참조)]
1. 임신한 근로자에게 유산·사산의 경험이 있는 경우
2. 임신한 근로자가 출산전후휴가를 청구할 당시 연령이 만 40세 이상인 경우
3. 임신한 근로자가 유산·사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료기관의 진단서를 제출한 경우

임신 초기에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병가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가는 법정휴가가 아니었다. 회사마다 취업규칙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는 불안정한 휴가였다. 병가를 활용하기 힘들 때 출산휴가의 분할제도를 활용하는 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연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서연을 생각하며, 민주는 아팠다.

회사의 차가운 문화는 서연의 캐릭터마저 바꿔 놓았다. 더 이상 민주가 기억하는, 알바시절의 그 당당한 서연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기 권리를 희생하는, 연약한 한 직장여성일 뿐이었다.




연차휴가와 출산휴가


다행히 민주는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천하를 가진 기분이었다. 꼬물꼬물한 아이의 손을 잡자 억눌러 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남편이 옆에서 위로해 주었다, 남편은 민주가 아이를 낳자 5일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했다. 3일간은 돈이 나왔다. 권리였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8조의2(배우자 출산휴가)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배우자의 출산을 이유로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5일의 범위에서 3일 이상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사용한 휴가기간 중 최초 3일은 유급으로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휴가는 근로자의 배우자가 출산한 날부터 30일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다


그리고, 민주는 90일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했다.


자리를 비운 90일간 기간제 근로자가 민주의 자리를 대신했다. 민주가 복귀하자마자 그 기간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민주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안했다.

엄마로서의 삶과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겉에서 볼 땐 다시 어제와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시나브로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찢겼고 새로운 한 해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1월 초, 연차휴가를 담당하는 정대리가 연차휴가 사용계획서를 보내왔다. 민주의 회사는 연차휴가를 보상하지 않기 위해 1월에 한 번, 7월에 한 번 휴가사용계획서를 받고 있었다. 법에 따라 연차휴가를 독려하게 되면 연차휴가를 다 못 썼더라도 회사가 보상할 필요가 없었다. 휴가도 못 쓰고 보상도 못 받는 근로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상은 현실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제도의 변화는 현실의 간교함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대개는 현실이 이상을 이겼다.


그런데, 민주는 종이에 찍혀 나온 자신의 휴가 일수가 이상했다.


"정대리님. 제 연차휴가 일수가 이상한데요. 제가 이 회사에서 4년을 근무하고 올해 5년차니까 연차휴가가 16일인데... 12일로 돼 있어요"

"아, 이대리님이 지난해 출산휴가를 사용해서 그걸 감안한 거예요. 원래 16일인데 3개월을 안 나와서 9개월치만 부여한 거예요. 16일×9/12=12일로요"


민주는 아직 정대리가 출산휴가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도 모른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신기했다. 그래도 근무한 세월이 얼마인데...


연차휴가를 부여할 때, 출산휴가는 출근한 것처럼 간주해야 한다. 연차휴가는 그대로 부여해야 한다. 민주의 연차휴가일수는 그대로 16일이 돼야 했다. 2018년 5월 29일자부터는 육아휴직도 똑같이 출근한 것으로 간주해서, 그대로 연차휴가를 부여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⑥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을 적용하는 경우(편집자 주 : 연차휴가를 의미한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간은 출근한 것으로 본다.
1. 근로자가 업무상의 부상 또는 질병으로 휴업한 기간
2. 임신 중의 여성이 제74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로 휴업한 기간 (편집자 주 : 출산휴가나 유사산휴가를 의미한다)
3.「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제1항에 따른 육아휴직으로 휴업한 기간 (2018.5.29.시행)


정대리에게 법조문을 보여주자 정대리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출산휴가를 다녀온 근로자의 연차휴가를 삭감해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없었단다.

무관심인지, 무지인지, 혹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터덜터덜, 하루의 끝을 향해 걸어가며, 민주는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도 이런 삶의 여정 속에서 지금의 나처럼 힘겹게 한 걸음을 옮겼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했다.

눈물이 났다. 이제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게 더 미안했다.


하늘은 무심하게 빛나고 있었고, 엄마의 얼굴같이 밝고 슬픈 보름달이 휘영청 민주의 위에 머물러 있었다.


13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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