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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y 04. 2018

내가 파리냐?

해고에 대하여.

눈을 떠 보았댔자, 보이는 건 곰팡이가 끼어버린 것 같은 절망스러운 천장뿐이었다.

창문을 열어 보았댔자, 아랫집 아저씨가 피우고 있는 듯한 역겨운 담배 냄새만 들어올 뿐이었다.

지나간 세월을 후회해 보았댔자, 돌아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증오뿐이었다.

항상 그랬다. 일어난다는 건 뭐랄까. 그냥 생물학적인 반응에 불과했다. 해가 뜨니까, 눈이 떠진 것뿐이다.

일어나기 싫었다. 그저 태양빛에 두 눈동자가 반응하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움직였을 뿐이다. 그건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카톡에서 끊임없이 울려대는 알람이 감당할 수 없는 소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명절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바람도 싫었고, 사람도 싫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증오하는 자신이 싫었다.

민기는 멍한 꿈과 같은 상태에서 깨어나기 위해 찬물 한 바가지를 머리 위로 퍼붓는다.

갑자기 헤어진 여자 친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제 우리 그만 만나.”

“...”

“그게 좋을 것 같아. 괜찮지?”


괜찮을 리 없었다. 헤어지자는 이별통보에도 민기는 덤덤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까, 민기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소리 낼 자신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점장과 싸우고 회사를 나온 이후, 민기는 힘겹게 나노라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권리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권리가 무너지고, 사라졌다.


그냥 주는 것 받고, 하라는 것 하는, 그런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삶에 대해 외치는 순간,
삶이 부서지고 깨어졌다.  


회사가 민기를 눈여겨본 건 5월 1일부터였다.


“팀장님, 내일, 5월 1일이잖아요? 그럼, 내일 안 나와도 되는 거죠?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회사에서 별 얘기가 없어서, 확인해 보려고요...”


팀장이 사장의 이종사촌인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몇몇 요직에 사장의 친족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회사는 사장의 친족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들 사이에도 다툼이 있었다. 회사 안의 정치란 구석진 은밀한 곳에 기생하는, 누구나 짐작은 하고 있지만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는, 눈에 보이지 않은 쥐새끼 같은 거였다.

팀장은 고수였다. 놀라는 눈치도 없었다. 눈을 몇 번 껌벅거렸다.

 

“민기씨, 여기 중소기업이야. 무슨 대기업 직원처럼 얘기를 하네... 허허허”

“네? 아뇨... 그게 아니고요. 5월 1일이 노동절이잖아요. 그래서 여쭤본 건데...”

“그러니까, 여기 대기업 아니니까, 입 다물고 일하면 돼. 이상한 얘기 퍼뜨리지 말고!”


팀장의 낯빛이 변했다. 말투도 갑자기 싸늘해졌다. 민기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예, 팀장님. 그냥 여쭤본 겁니다. 궁금해서요. 알겠습니다.”


팀장의 주위를 둘러싼 검은 기운에 눌려 민기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월 1일에 대한, 한 노동자의 권리가 사라져 갔다.

인사발령이 났다.

민기에게는 영업팀으로 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영업 같은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명령이었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는 예사였고, 지방 출장도 잦았다. 이상하게 민기에게는 먼 지역 출장명령이 자주 떨어졌다.

이미 민기는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민기씨, 조심해요. 이 회사, 3년 전쯤에 노조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 다 잘랐던 회사예요... 노조 만들려는 낌새라도 있으면, 아예 싹을 잘라 버리는 회사예요. 그런데, 총무팀장이 최근에 민기씨 뒷조사하는 것 같더라고요.”


식사를 하면서, 동료 근로자가 슬쩍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고마웠다. 한 편으론 두려웠다. 노조를 만든 것도 아니고, 그저 5월 1일에 대해 물어봤을 뿐인데...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이름으로 신문을 검색해 보았다.

“OO외식업체를 상대로 휴업수당을 주장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두 눈 속에 들어왔다. 몇 년 전의 기사였지만,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은 위대했다. 화면 속 상단에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바이어 접대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민기는 접대가 싫었다. 상대방 비위 맞춰주는 것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접대장소로 가는 길이 지옥으로 올라가는 고행길, 같았다. 괴로웠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고급 술집에서 접대를 하고, 법인카드로 결제까지 마쳤다. 접대를 마치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팀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일의 시간이 흐른 후, 팀장이 민기를 불렀다.


“접대를 하라고 했지, 누가 술집을 가래? 그것도 법인카드로?”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팀장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거잖아요?”

“내가 언제? 이 xx. 질이 나쁜 놈이네. 나까지 끌어들이려고? 인사팀에서 너한테 사직서 받으래. 안 그러면 징계할 수도 있대. 알겠어?”


접대를 마치고 팀장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함정에 빠졌다.


“민기씨, 그냥 사직서 내는 게 어때? 징계해고당하면, 민기씨 경력에도 허점에 생길 것 아냐? 어차피 이 회사 다니기 힘들어... 그냥 조용히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이 회사 잘못 건드렸다간 다른 회사 취업하기도 힘들어. 블랙리스트... 없는 것 같지? 아냐, 아냐... 그 리스트 밤에만 돌아다녀. 캄캄해서 아무도 못 볼뿐이야. 말썽 피우고 나가면, 이쪽 업종에선 발 붙이기 힘들 거야”


팀장이 다시 조용히 민기를 불러서 얘기했다. 충고 같기도 했고, 협박 같기도 했다.

하지만, 민기는 버텼다. 조만간 여자 친구 집에 찾아가서 결혼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 힘들어도 버텨야만 했다.  

그 이후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한 달 뒤, 민기의 책상 위에 흰 종이 하나가 조용하게 놓여 있었다.

징계해고통지서였다.


귀하는 7.1. 부로 취업규칙 제10조 1항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여 징계해고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7월 1일이라... 내일이었다. 여자 친구 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기로 한 날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팀장님, 다음날 나가라고 하는 회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무슨 파리입니까?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겁니까?”

“그러게, 내가 사직서 내라고 할 때 내면 좋았잖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게 처리해 준다고 했는데, 그 좋은 기회를 왜 스스로 차 버려!”

“좋은 기회? 이런 걸 좋은 기회라고 합니까? 알겠습니다. 회사가 잘랐으니까, 나가야지요. 하지만,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여자 친구 집에 가는 건 미뤘다. 직장도 없이 인사를 드리러 갈 수는 없었다.

민기는 노동위원회를 찾았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28조(부당해고등의 구제신청) 
①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부당해고등을 하면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구제신청은 부당해고등이 있었던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


한신이, 잘 아는 노무사 한 명을 소개해 주었다. 김노무사라고 불렀다. 


김노무사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플 거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잔인함에 몸 구석구석이 상처를 입을 거라고 했다. 그걸 견뎌내야만 부당해고 구제 명령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구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삶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했다. 솔직한 얘기가 고마웠다. 노무사라기보다는 투사, 같았다.


김노무사는 해고에 대해 민기에게 몇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해고의 서면 통지 (5인이상 사업장)



"다른 건 볼 것도 없이, 이 해고는 무효라고 결정이 날 거예요."

"예?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시죠?"

"김민기 주임님, 우리 근로기준법에서는 해고를 하려면 그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고 있어요.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으면 그 해고는 무효가 되지요"


[근기법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제1항에 따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


"그런데... 저는 해고 통지서를 서면으로 받았는 걸요?"

"아, 그게 말이죠. 김주임님을 징계 해고한 거잖아요? 그런데, 해고통지서에는 취업규칙상의 조문만 나와 있지, 구체적으로 왜 징계 해고했는지 실제 사유가 안 나와 있어요. 그건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걸로 인정하고 있어요. 우리 판례가..."


따라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하여야 하며, 징계대상자가 위반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조문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왜 해고를 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했다.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으면 그 해고는 무효가 됐다.



해고 예고


"그리고... 해고를 하려면, 미리 예고를 해 줘야 해요. 전혀 준비가 안돼 있는 상황에서 해고를 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수도 있겠죠? 그래서, 해고를 하려면 30일 전에 미리 예고를 해 줘야 해요"

"그런데, 전 바로 다음 날 해고한다는 통고를 받았어요."

"그러니까요... 참 잔인한 회사네요. 법적으로는 만약에 회사가 30일 전까지 해고를 예고하지 않으면,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해요."

 

[근기법 제26조(해고의 예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포함한다)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를 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30일 전까지 해고예고를 하지 않거나,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천만원(2018.5.29부터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김노무사는,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해고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해고를 예고하지 않았으니까, 30일 치의 통상임금은 받을 수 있어요. 그걸 해고예고수당이라고 해요"


해고예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도 있다고 했다. 김노무사는 당장 거기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긴, 새로 배운 지식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이런 기초적인 권리조차 알지 못했던 걸까.  민기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건, 김주임님 잘못이 아니에요. 배우지 않은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노동자가 될 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알려주지 않은 우리 사회의 잘못이지요. 절대 자책하지 말아요... 김주임 잘못이 아니에요."



해고의 정당한 이유와 해고의 절차 (5인이상 사업장) 


[근기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해고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해고를 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김노무사는, 이 정도는 징계해고를 할 만한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사회통념상 당해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판 2003.7.8,2001두8018)

  

"그리고, 김주임님 회사 취업규칙을 보니까, 징계위원회가 구성돼 있던데, 징계위원회에서 소명은 하신 건가요?"

"아, 아뇨. 그냥 바로 다음날 나가라고..."

"징계할 때, 징계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규정이 있으면, 징계위원회를 개최해야 돼요. 만약에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김주임님 소명을 듣지 않았으면, 그 징계는 무효가 돼요"


징계대상자에게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변명과 소명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부여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징계절차를 위배하여 징계해고를 하였다면 이러한 징계권의 행사는 징계사유가 인정되는 여부에 관계없이 절차에 있어서의 정의에 반하는 처사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1.7.9. 선고 90다8077 판결)




김노무사는, 법적으로는 질 수 없는 게임이라고 했다.  김노무사의 예상대로 노동위원회는 민기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당한 이유도 없고, 서면통지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노동위원회는 회사에게, 민기를 원직에 복직을 시키라는 명령과 함께 해고 기간 동안에 지급하지 않은 임금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민기는 잠깐 동안 기뻤다.


하지만, 대기업도 아니고, 노조도 없는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민기가 설 자리는 없었다.


민기는 복직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인사명령이 있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부서였다. 책상 하나에 의자 하나, 오래된 컴퓨터 하나, 낡아 빠진 전화기 하나가  민기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판촉활동을 하라고 했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대기발령을 하고, 그 이후에도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당연면직된다는, 취업규칙의 조항을 들먹였다. 회사 직원들은 민기를 멀리 했다. 회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원들마저 등을 돌리는 현실이 괴로웠다. 물론 그들도 두려웠던 거다. 두려움의 크기를 이길 만한 연대의 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회사의 날카로운 감시 속에서 노동자의 연대란, 모래 위에 서 있는 성처럼 약간의 바람에도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에서 혼밥을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매일매일 악몽을 꿨다.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일매일 지옥에 출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권리를 주장한 한 노동자에게, 독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사장과 연결된 팀장들은 마치 귀찮은 파리 한 마리를 보는 것처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민기는 스스로가 파리처럼 느껴졌다. 동료들은 두려움의 크기를 이길 수 없었고, 민기는 외로움의 크기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끝까지 인내한(?) 갑질의 승리였다. 광야에 홀로 서 있는, 을과 같은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대하지 않는 한,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그 회사와의 인연은 막을 내렸다.


김노무사의 예언대로 징계해고자라는 주홍글씨는 민기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동종업종에 다시 취업하는 것쉽지 않았다. 진로를 틀어야만 했다. 


결국 민기는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각오는 산과 같았지만, 조그마한 열매 하나조차 거두기 쉽지 않았다. 훌쩍 1년이 지나갔고, 민기는 시험에 떨어졌다. 여자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있었다. 보지 않으니 멀어진다는 말이 민기의 삶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다시 1년을 버티고 준비하기로 했다. 


다시 지옥과 같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노량진은 민기와 같은 청춘들로 바글거렸다. 사회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꿈이 없다며, 나무라고 있었다. 민기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손가락질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그들에게 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저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일 뿐이다.

좋은 일자리는 극히 소수의 노동자에게만 허락되었다. 하긴, 그 양질의 일자리를 쟁취한 이들마저도 매일매일의 과로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날, 민기는 노량진의 한 구석에서 컵밥 하나를 쥐고서 쭈그리고 앉았다. 파리 한 마리가 민기의 눈앞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민기의 한쪽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밥알 한알이 식도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민기의 마음 구석구석을 후벼 파고 있었다.

 

민기의 생일이었다.


제15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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