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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Jun 01. 2018

너의 부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산업재해에 대하여

문기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노조는 와해되었고, 문기도 모든 걸 내려놓고 다수 노조의 평조합원이 되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조합원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일 뿐이다. 사소한 위협에도 몸을 파르르 떨며, 두려워하는 연약한 사람들일 뿐이다. 지금도 회사의 후미진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선택에 주룩주룩 눈물 흘리고 있을, 가녀린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두려움의 틈새로 절망의 빗물이 스며들었을 뿐이다.


다른 길을 택했다기보단, 갈 수 있는 길이 없었을 뿐이었다.


생존을 위한 막다른 길이었다. 어느 누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눈물 앞에서, 그들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문기는 침대에 누워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한 단락이 눈에 띄었다.


"목이요...... 병원에는 가 봤답니까?"
요코다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갔대요"
"왜죠?"
"귀찮아서, 라고 했어요. 소속된 인력파견회사에서 '병원에 가는 건 좋지만 직장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말은 하지 말고 뭔가 다른 이유를 대라.' 그러더래요. 산재 신청은 하지 말라고 하고요."
"아니, 그건 또 왜죠?
"뭐, 흔히 있는 일이에요. 가네세키에서 인력 파견 회사에 압력을 넣은 거죠. 산재 신청을 하게 되면 공장이 조사를 받게 되고, 그러면 인터로크를 죽여 놓았다는 사실도 들통나지 않겠어요?"

-히가시노 게이고(김난주 옮김), "기린의 날개", 도서출판 재인, 133-134p


"산재은폐 문제를 일본의 소설책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다르진 않군..."

문기는 중얼거렸다.




지난주, 민재가 쓰러졌다. 사무실 바닥의 물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육중한 몸이 휘청거리더니,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다. 모두 다 외근을 나가 있던 터라,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지나가던 재현이 우연히 민재를 발견했다. 어깨를 잡아 흔들고,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형사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팀 직원들이 달려왔다. 한 사람은 고개 쪽을 받치고, 한 사람은 다리를 잡아서, 민재를 옮겼다.

어느새 문기도 와 있었다. 재현이 인사팀에 연락을 하면서, 동시에 문기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위원장님, 지금 민재씨가 쓰러졌어요. 인사팀 직원들한테 연락을 했는데요, 위원장님도 한 번 와 보세요. 민재씨가 움직이질 않아요."


위원장직을 내려놓았지만, 과거의 동료들은 문기를 여전히 위원장님, 이라고 불렀다. 과거 위원장에 대한 예우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랬다.




문기는 재현의 전화를 듣자마자 119로 연락을 해 놓았다. 혹시라도 회사가 산재를 은폐할 경우, 재해경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남겨 놓아야 했다.  


"119, 불러 놓았습니다."


문기의 말에 인사팀 직원이 잠깐, 아주 잠깐, 멈칫하는 듯 느껴졌다.


"아, 아니, 괜찮아요. 잠깐 기절한 것 같은데요, 뭐. 이 정도로 뭐, 큰일이야 있겠어요. 저희들이 병원까지 잘 모시고 갈게요."


회사는 정문까지 온 119 구급차를 돌려보냈다. 별 것 아닌 일로 불편을 드렸다, 고 사과했다.

바로 코 앞에 있는 종합병원을 버려두고, 회사가 지정한 병원으로 문기를 데려갔다. 길 위에서 30분의 생명 같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런 식으로 산재를 은폐하며, 시간을 허비하다 죽은 노동자가 있다는 뉴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세상은 더욱 단단해지고 냉정해졌다.


뉴스만으로 세상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일 뿐, 그 죽음에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듯 보였다.


다행히 민재는 깨어났다. 담당의사에게는 "그냥 길거리에서 쓰러졌다"고 말했다.




산재보험료가 할증되는 것이 싫어서 산재를 은폐하는 사업장도 있었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피하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는 사업장도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기도 했다. 건설업체의 경우 입찰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이유로 산재를 은폐하기도 했다. 은폐의 이유는 많았다.


사람의 생명이 산재보험료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무표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 산재처리과정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산재가 터지면, 그냥 근로복지공단에 산재급여 신청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위원장님?"


재현이 문기에게 물었다.


"이론적으론 맞아요. 산재는 원래 본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재현씨. 제가 퀴즈 하나 내 볼게요. 맞춰 보세요.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의 비율이 4분의 1밖에 안 돼요. 그런데, 죽은 노동자는 4배나 더 많지요. 한 해 평균 약 20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OECD 산재 사망률 1위에 빛나는 나라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산재사고는 4분의 1인데, 사망자는 4배라는 사실이요..."


곰곰 생각하다, 재현이 말했다.


"아, 산재를 은폐하는 거군요."

"맞아요. 이 역설적인 격차의 비밀은 산재의 은폐에 있어요. 사망은 숨기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사망에 이르지 않은 부상이나 질병에 대해서는, 회사가 산재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혹, 산재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 들어 봤어요?"


"네? 블랙리스트요? 그게 갑자기 산재에 왜 등장하는 거죠?"

"민재씨가 아무 생각 없이 '길거리에서 쓰러졌다', 고 얘기했겠어요? 우리 업종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거죠. 회사가 공상 처리해 주겠다고 설득을 했는데,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 그 이름에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겁니다.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은 거죠"


온갖 사고와 뇌혈관질환, 직업성 암 등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코브라처럼 우리네 노동현장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전쟁과도 같은 노동이었다. 홍길동도 아닌데, 산재를 산재라 부르지도 못했다. 이순신도 아닌데, 산재를 알려서는 안 되었다.


폐품이 될 때까지 전쟁같이 일했다.


그러다가 쓰러지고, 은폐되고, 사라져 갔다.


"산재로 처리하면, 산재 치료비가 나와요. 그걸 요양급여라고 해요. 그리고 산재 기간 중 평균임금의 70%에 달하는 휴업급여도 나와요. 치료가 끝났는데도 장해가 남으면, 장해급여를 받을 수도 있어요. 재발을 하면 재요양을 받을 수도 있고요. 회사가 폐업을 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급여는 계속 받을 수 있어요."

"아, 그러면, 공상보다는 산재로 처리하는 것이 더 낫겠네요?"


"물론, 경미한 부상의 경우 합의만 잘하면 공상처리가 나은 경우도 있어요. 간단한 치료로 끝날 수 있는 사고의 경우에, 회사가 비보험급여를 포함해서 치료비 일체를 제공해 주고, 그 기간 중 임금도 100% 지급하는 조건이라면,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재발 위험성이 없는 경미한 부상이 아니라면, 산재로 처리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해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민재가 퇴원했다.


"민재씨, 회사에서 허위진술을 시킨 거죠? 혹시나 앞으로도 그런 일, 있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나마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까 다행이지, 나중에 재발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민재씨 어머니도 걱정 많이 하셨죠?"


민재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문기는 노파심에 민재를 다그쳤다. 민재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위원장님. 제가 우리 집 가장이에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어머니는... 왜 그리 복도 지지리도 없는지, 전 세계에서 몇 건밖에 보고된 적이 없다는 희귀병에 걸려서 집에 누워 계세요.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이고요. 저, 일해야 해요. 잘못 대들다가 잘리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위원장님이 우리 집, 책임지실 거예요? 위원장님은 정의를 말씀하시지만, 저에게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의고 진리예요. 저도 이 엿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누가 그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자꾸만 정의, 사랑, 희망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 좀 하지 말고요. 저에게는 정의가 아니라, 그 개 같은 돈이 필요하다고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몫까지 내가 다 해 드리겠다고 했는데, 호강시켜드리겠다고 했는데, 이게 뭐예요?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퇴근길의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한 민재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대성통곡을 했다.


술도 깰 겸, 문기는 민재를 데리고 한강 공원으로 나왔다. 민재는 문기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웠다. 눈에선 아무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에서 풍기는 술냄새는 절망의 냄새였다.


민재가 여전히 술기운에 중얼거렸다.


"아버지, 거기서 행복하세요? 저하고 어머니, 이렇게 남겨 놓고, 혼자 좋은데 계시니까, 좋으세요? 어무이. 우리 어무이. 그리고 내 동생. 제가 책임질게요... 염려 마세요..."


민재는 그저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돈을 얘기했고, 문기는 정의를 얘기했다.

회사는 민재를 산재보험료로 보았고, 문기는 민재를 패기 없는 청춘으로 보았다.

사람이 빠져 있었다.

사람보다 큰 가치는 없는데, 문기조차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민재를 다그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 라는 한 단어 앞에서 무너져 버린 이 순수한 청년에게 거짓을 다그친 이 사회가 문제였다. 그 현실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도 문제였다.


민재의 모습은... 사람이 사라지고,
돈과 이념만 남아 있는, 사회의 서글픈 초상화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달을 가렸다. 별 하나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한강의 한 구석진 잔디밭 위에서 민재와 문기는 아무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들려왔다.

민재의 뺨 위로 문기의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제19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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