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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Jun 08. 2018

장그래씨, 안녕하신가요?

기간제 근로에 대하여.  

책 냄새가 좋았다.

낙엽 태우는 냄새조차 향기롭게 느껴진다던 수필가도 있었지만, 그 냄새는 기껏해야 잠깐 타오르는 순간의 향내일 뿐, 책의 냄새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잠깐이나마, 삶의 중심에서 삶의 경계선으로 벗어나, 삶을 관망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

하지만, 이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 마치 그 냄새에 중독된 듯,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두 번은 그 냄새를 맡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 그런 냄새는 추억 속의 향기가 되어 버렸다.

그저 잠깐의 쉼을 위해서 온 것뿐이었는데, 책방을 나서는 순간, 투사가 되어야 했고, 세계화 시대의 전사가 되어야 했다.


한신은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 죽을 수도 있어. 몸값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을 거야. 그것이 이 시대, 절박한 절반의 진리일지도 몰라.'


안타까웠다. 기분 좋은 향내를 풍기던 책이라는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오랜, 그리고 친근한 벗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다. 서점도 이젠 안식처가 아니었다. 조그마한 삶의 축소판인 걸까.


서점 평대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온통 경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신은 책을 좋아했다. 책 속에서 앎을 얻는 것이 즐거웠다.

앎이 곧 삶이라고 믿었다. 알고 있다면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앎과 삶, 그것이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전쟁터와 같은 현실에서, 티끌같이 조그마한 앎조차도 삶이 될 수 없었다.


앎만 있고, 삶은 사라져 갔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것을 삶에서 적는 것은 어려웠다.


'과연 내가 정답을 알고 있기는 한 걸까?'


한신은 점점 자신감을 상실해 갔다.

한 때, 진리라는 한 단어를 삶으로 옮기기 위해 노조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알바를 할 때는 민주와 서연과 민기에게 노동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여성 노동자로 살고 있었고, 민기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외롭고 힘들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주 누나... 민주는 대기업 인사팀의 과장이 되어 노동조합의 적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얼르고 달래느라 지쳐 쓰러져 있는 민주를 보며, 한신은 아팠다. 이런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의 의지는 아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계화의 바람이 사막의 한가운데로 한신과 민주를 밀어냈다. 사막의 모랫바람을 피하고, 살포시 눈을 떠 보니, 생각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지하철 역사 옆의 별다방에서 민주를 만났던, 그 시절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 한신은, 민주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다. 청년 노조의 간부를 정규직 사원으로 받아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위로받고 싶었다. 그냥 민주 누나가 떠올랐다. 한신은 민주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밥 사 줄래요? 제가 커피는 살게요..."


민주는 한신을 위로했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였다. 아니, 누나라기보다는 좋은 말동무였다. 한신은 민주 누나가 좋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주도 한신의 어른스러움이 좋았다. 한신은 포근하고, 생각이 깊었다.




쪼개기 계약


민주가 둘째를 낳고 나서 얼마 후, 한신의 회사가 폐업을 했다. 중국의 저가공세 앞에서 손쓸 틈도 없이 쓰러졌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해야 했다. 한신은, 기간제 노동자로 취업을 했다.


11개월만 일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퇴직급여가 지급되지 않았고, 1년 이상 근무하면 발생하는 연차휴가도 부여되지 않았다. 1년도 안 되게 계약기간을 정하는 건... 합법적인 갑질이었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한신의 삶이 쪼개지고 있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퇴직급여제도의 설정)]
①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①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한 달을 쉰 후 공개채용 형태로 다시 11개월의 계약직 노동자로 회사에 들어갔다.


무기계약근로자의 요건


사무직 노동자로서의 한신의 능력은 탁월했다. 각종 문서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었고, 프레젠테이션도 능숙하게 해 냈다. 하지만, 회사는 한신의 능력을 보지 않고, 한신의 계약서만 보다.

한신은 그저 11개월만 근무하면 나가야 할, 회사의 비품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2년을 초과해서 일하면, 무기계약 근로자가 된다는 법률조항이 있었지만,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종료하면, 휴지조각에 불과한 조항이었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기간제근로자의 사용)]
② 사용자가 ...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미생이라는 웹툰의 장그래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원인터내셜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

결국 회사는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았고, 장그래는 바둑판의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지금 장그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행복할까?  우리 사회의 온갖 차별을 깨부수며, 당당하게 저 도시의 불빛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까?


장그래씨, 안녕하신가요?


차별금지


현실은 부끄러움마저 상실해갔다. 차별은 아예 눈 앞에서 벌어졌다. 기간제에게까지 어떻게 병가를 부여하냐며, 기간제 노동자의 질병을 나무랐다.


아픔마저 차별했다.


설과 추석 명절에 정규직에게는 스팸을, 계약직에게는 식용유를 나눠 주었다.  중식대와 교통비를, 정규직에게는 10만원, 기간제에게는 5만 지급다.


"정규직은 비싼 밥 먹어야 소화가 되는 모양이지?"

"누구는 택시 타고 오고, 누구는 걸어서 오나?"

"식용유는 또 뭐야? 자기들 스팸 먹을 때, 우리는 식용유로 구우란 건가?"


회사의 불합리한 차별에 대해 기간제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감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차별은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었고, 노동위원회에 차별을 시정해 달라고 신청할 수도 있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
①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차별적 처우의 시정신청) ①기간제근로자 또는 단시간근로자는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법 제1조의 규정에 따른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차별적 처우가 있은 날(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는 그 종료일)부터 6개월이 경과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하지만, 나서는 기간제 노동자가 없었다.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건, 거대한 족쇄와도 같았다. 성희롱을 당해도 참았다. 차별을 당해도 노동위원회에 신청하지 않았다. 불합리한 차별과 성희롱을 외치는 순간, 다음번 계약에서 배제될 게 뻔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었다.


현대판 카스트 제도 같은 거였다.

 



노동의 문제가 논의되는가 싶다가도, 결론은 경쟁력으로 마무리되었다. 숨 가쁘게 인간됨을 유보하고서 달려온 지난 세월을 다시 연장하자는 부탁으로 소설의 끝은 마무리되었다. 항상 그랬다.

'그게 현실인걸, 뭐'라는 무기력한 중얼거림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비정규 노동자의 비율이 50%가 되든 안되든, 나는 정규직 노동자니까, 그냥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으면 돼."


"유해물질이 온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청년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지만, 내 자식도 아닌데 뭘... 착취를 당하든 말든,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 뭐."


"제발 조용히 좀 살 수 없나? 국가 경쟁력을 올리려면 몇몇 사람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거야. 나만 아니면 돼.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미 공동체는 무너져 있었다.


한신은 자신의 지난날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향해 얕은 한숨을 내 쉬었다.


"여보, 괜찮아?"

"응. 괜찮아. 그냥, 내가 요즘 꽤 변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왜? 자기가 뭐가 변해? 내가 볼 때는 그대로인데..."

"그런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차별이 있으면, 내가 나서서 노동위원회에 찾아가든지, 회사 앞에서 데모를 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냥 참고 있잖아."


"그게, 현실이잖아. 이제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있고... 당신같이 반듯하게 살아온 사람, 별로 없어. 자책하지 마..."



 

에필로그


'근로기준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대학생 친구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의 말이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아팠다.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노동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한신의 삶 역시, 현실이었다. 철저한 시장 중심의 철학 앞에 침묵하면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연대성과 평등의 부재에 대해 어쭙잖은 고민을 하는, 어중간한 회색지대로 남게 되는 건 아닐까, 한신은 생각했다.


말이 많은 시대다. 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수많은 말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바꾸어 낼 것인가. 우리 사회의 변화는 그 시대의 양심들이 행동한 결과다. 양심이 그저 양심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 양심은 '나는 저 양심도 없는 사람들과 달리 아파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4·19 혁명이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이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모든 운동의 중심에는 행동하는 양심들의 자기희생과 행동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불의에 분노했을 뿐이며,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했을 따름이다. 나라의 국익이니 경제발전이니 하는 거대 담론 속에 자신의 양심을 버려두지 않았다.


침묵은 양심의 무덤일 뿐이겠지.


한신은 고개를 돌려, 민주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눈 속에 현실이 있었고, 이상이 있었다. 영원히 조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민주의 작은 눈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다만, 무자비한 시간과 현실 앞에서 이상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저 가벼운 눈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제20화. 끝.  


20화의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구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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