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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Jul 19. 2018

뒷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임금체불에 대하여

한신의 삶은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런데, 내리막이 언제쯤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선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두려웠다. 그리고 불안했다. 아내의 월급으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이 불편했다. 아내는 대기업의 인사팀 과장이었고, 남편은 소규모 출판사의 홍보담당 직원이었다. 한신은 그게 뭐 어때서, 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공기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과거의 유산이,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현재의 가치와 충돌하며, 여기저기서 갈등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과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가 일상 생활용어가 되어 있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벌레 충(蟲)이라는 접미사를 꼬리표처럼 붙이고 있었다. 민지도 회사에서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벌레가 되었다. 사람이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거꾸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적 진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곤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게 존중의 면류관을 씌웠다. 사람이 수단이 되었고, 물건이 목적이 되었다. 돈이, 아파트 평수가, 자동차 크기가 존중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새 물신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가 일상의 공기가 되어 있었다. 모여서 하는 얘기가 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돈이 중요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난 문기에게 한신이 말했다.      


“돈이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돈, 돈, 돈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엄청 경멸했는데, 실제로 제가 임금체불을 당해 보니까, 생각이 좀 달라져요.”

“그래도 있는 사람들이 돈, 돈 하는 것과 하루하루 벌어먹는 사람들이 돈, 돈 하는 건 그 가치가 다르겠지. 있는 사람들에게 돈은 탐욕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없는 사람들과 노동자들에게 돈은 생명이야...


한신은 문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민주가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니까, 좀 괜찮지 않니?”

“네,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전 괜찮은 편이죠. 그런데, 전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더라고요... 장인, 장모가 계속 그 직장 다닐 거냐고 물어보는데, 아무 말씀도 못 드렸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자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문기는 아무 말 없이 한신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냥 혼자 살 거야. 그게 더 편할 것 같아.”

“예? 형, 왜요? 저는 결혼하고, 애 낳고, 함께 늙어가는 것도 인생의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갈수록 외로워지기도 할 거고요. 고독사, 몰라요? 전 그렇게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너야, 그렇게 살면 되지, 뭐. 그런데, 난 이 쥐꼬리 같은 돈 받으면서, 결혼하고, 집 사고, 애 낳고, 애들 교육시키고, 장가보내고, 시집보내고 할 자신이 없어. 나 혼자면 이 정도 벌어도 지낼 만 해. 큰 집도 필요 없고, 조그마한 원룸 하나 구해서, 돈 모아서 혼자 여행도 다니고. 요즘은 나같이 사는 친구들도 많아서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 그래. 반드시 돈 때문만은 아냐. 그냥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아. 상황이 바뀌더라도 결혼은 안 할 거야.”      

문기는 집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그러자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집에서는 계속 닦달을 했지만, 문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이제 혼자 사는 생활이 자연이 되었고, 공기가 되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참... 그래서 너네 회사 임금체불 건은 잘 해결됐니?”

“말도 마세요... 노동부에 진정할까 하다가 사장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참았죠. 저도 뭐, 딱히 딴 데 갈 곳도 없고요. 사장님도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진짜 회사가 힘들었거든요. 이번에 출간한 그 책 한 권, 대박 안 터졌으면... 천만다행이죠.”     


임금은 모든 노동자의 생명줄이다. 그 생명줄을 얼마나 굵게 만드느냐가 최저임금의 문제라면, 그 생명줄을 던져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임금체불의 문제였다.      


“이자는 아예 받을 생각도 안 했어요.”


한신은 원금이라도 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듯, 한 마디를 은연중 내뱉었다.      




원래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그 전액을, 매월 정기일에 지급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 지급)]
①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②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임시로 지급하는 임금, 수당,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우리 회사는 임금체불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 회사가 개인적인 성과급을 빼고서 퇴직급여를 계산한 거야. 그런데, 원래 지급기준과 지급시기를 정하고서, 지급하고 있는 개별 인센티브는 임금이거든. 퇴직급여 속에 포함해야 돼.”


인센티브(성과급) 지급규정이나 영업 프로모션 등으로 정한 지급기준과 지급시기에 따라 인센티브(성과급)를 지급하여 왔고, 차량판매는 피고 회사의 주업으로서 영업사원들이 차량판매를 위하여 하는 영업활동은 피고 회사에 대하여 제공하는 근로의 일부라 볼 수 있어... 이 사건 인센티브(성과급)는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해당한다(대판 2011.7.14, 2011다23149)


“아,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응. 보통 연말에 사장이 아무 기준도 없이 지급하는 포상금은 임금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 같은 기사들은 물량 1대 수리할 때마다 개인 인센티브 얼마를 매월 지급하도록 돼 있어. 그렇게 지급하는 개인 인센티브는 임금이거든. 그리고 원래 퇴직했을 경우에는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밀린 임금과 퇴직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그 기간 안에 지급이 안됐어. 15일째부터는 이자도 연 20%가 붙는데, 회사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지급을 제때 하지를 않았어. 재직기간중에 임금체불했을 때 연 6% 이자보다 훨씬 이자가 센데 말이야.”       

                  

[근로기준법 제36조(금품청산)]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37조(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① 사용자는 제36조에 따라 지급하여야 하는 임금 및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조제5호에 따른 급여(일시금만 해당된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아니한 경우 그 다음 날부터 지급하는 날까지의 지연 일수에 대하여 연 100분의 40 이내의 범위에서 「은행법」에 따른 은행이 적용하는 연체금리 등 경제 여건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율(*현재 연 100분의 20임)에 따른 지연이자를 지급하여야 한다.


“아, 그러면 퇴직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한 거군요?”

“응, 노동부에 임금체불이라면서 진정서를 냈어. 법원에 갈 수도 있는데, 그만한 돈도, 시간도 없으니까, 노동부에 가는 게 제일 현실적이었지.”                         


[근로기준법 제104조(감독 기관에 대한 신고)]
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대통령령을 위반한 사실이 있으면 근로자는 그 사실을 고용노동부장관이나 근로감독관에게 통보할 수 있다.
② 사용자는 제1항의 통보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런 성과급은 임금이니까, 퇴직금을 다시 산정해서 차액을 지급하라고 시정명령이 떨어졌어.”

“그러면, 다시 계산해서 지급하고 끝났겠네요?”     


한신은 이야기의 끝이 짐작된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러자, 문기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회사가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어. 그게 왜 임금이냐고, 오히려 근로감독관을 가르치려고 했지.”

“예? 그래요? 와, 형 회사 보통이 아니네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법원에 갔어요?”

“응, 노동부에서 『체불임금등・사업주 확인서』를 발급받아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소송대리를 신청하러 갔어. 월 평균임금이 400만원 미만인 노동자들은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거든...”

“그래서, 잘 해결됐어요?”

“응, 결국 중간에 돈은 다 받아 냈어. 그리고, 처벌불원서를 냈지. 원래 고의적인 임금체불은 범죄행위인데, 피해자인 노동자가 회사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거든. 회사가 처벌불원서 받고 나서, 임금 지급하고 사건이 끝났어. 회사 규모로서는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는데, 거의 사람 피를 말리더라고. 그게 목적이었겠지. 피를 말리는거.”         

                

[근로기준법 제109조(벌칙)]
① ... 제43조(*임금지급의 4원칙을 의미)...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43조...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한신은 무언가 이상했다.

제3자에 대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본인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 느껴졌다.      


“형, 혹시...”

“응? 아... 역시 눈치가 빨라. 나, 그만뒀어. 퇴직급여받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 내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지 않니? 회사가 은근슬쩍 자꾸만 찌르는데, 아프더라고. 안 아픈 척했지만, 두렵기도 했어. 나, 석 달 후에 호주에 가. 용접기술을 배웠어. 일단은 경력이 없어서, 용접보조를 하는데, 시급으로 약 25달러 정도 나온대.”

“아, 형...”

“나, 사실 너무 힘들었어. 남들은 나를 싸움닭으로 알지만, 내가 어디 그렇게 센 사람이니? 점장이랑 싸우고 알바 그만둘 때도 힘들었고, 회사에서 해고될 때도 겁났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말이야. 직장에서 나오고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 회사에서 나를 왕따시킬 때는 너무 외롭기도 했고. 노조 위원장할 때는 조합원들에 대한 섭섭함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어. 곰곰 생각해 보니까, 졸업한 후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추억이 별로 없더라. 매일매일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어. 그래도 너나 민주같이 진실한 친구, 서연이같이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친구가 있어서 참 고마웠어. 사막에서 종려나무 일흔 개가 있는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랄까. 그래도 그것만으로 억울함이 사라지지 않더라. 그냥 갑자기 결심했어. 차라리 삶을 리셋해 버리자고 말이야. 결말은 잘 모르겠지만...”     




문기는,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자고 말했다.

한신은 떠나는 문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등이 얘기할 때가 있다. 입술에서 나오는 어떤 애절한 말들보다 더욱 호소력 있게 사람의 마음을 뭉클거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느껴지곤 한다.

문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미안함과 아쉬움이 범벅된 묘한 감정의 상태가 한꺼번에 한신에게 밀려왔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누군가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얼굴을 바라보기보다는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뒷모습이 점점 더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요즈음이다. 역사를 바라보기보다는 순간을 바라보고,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세대가 아닐까.      

문득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한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굴도 나쁘진 않지만,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문기는 독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 사소한 약속을 어겨도 얼굴을 붉히고 미안해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조그마한 실수에 소탈한 웃음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떨까. 말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는 나무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한신은 문기의 등을 보며, 부끄러웠다.

하늘을 바라보자, 보름달이 부끄러운 한신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하늘이 주는 조그마한 위로, 같았다.      


제25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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