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가고 싶은 베트남 병원
베트남 살이의 즐거움
나는 2.2kg으로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 안기기 전 인큐베이터에서 먼저 한 달을 보내고 나올 정도로 약하게 태어난 아이였다. 자라면서도 폐렴으로 1년에 다섯 번을 입원하고, 자질구레한 잔병치레로 병원으로 출퇴근 도장을 찍으며 자랐다. 면역력도 남들보다 떨어지는지, 계절이 바뀌면 그에 따라 계절성 알레르기 질환이나 유행성 감기도 잘 걸렸다.
베트남에 가서도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니 평소 볼 수 없었던 증상들이 나타났는데, 입술이 붓고 가려운 구순염이 생기고, 다짜고짜 손등에도 두드러기와 물집이 올라왔다. 큰 병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피부 질환이니 사람들이 볼 때마다 물어봤으며 무엇보다 내가 너무 불편했다. 거너도 베트남에 오기 전, 가족들을 보러 한 달간 미국에 머물 때부터 알 수 없는 위통으로 힘들어했는데, 당시 해외 거주자였기 때문에 미국에 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질 못 했다. 그 상태로 베트남에 오니, 증상이 더 심해져 나날이 약해져 갔다. 둘 다 병원 검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현지인에게 물어 물어 외국인이 가기에 적합한 병원을 소개받았다.
가면서도 과연 베트남 병원이 신뢰할만한가,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갖추고 있을까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예전의 베트남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나름 의료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한국에서 살던 우리에게 베트남은 왠지 그냥 건물에 주사기 몇 개, 침대 몇 개 가져다 놓고 병원이라 할 것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다녔던 다낭의 병원이 어땠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의심과 우려가 우스울 정도로 이 병원은 외국인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솔직히 최상까지는 오버고, ‘중상’ 정도의 서비스라고 할 만하다.
내가 간 곳은 ‘가족 병원’이라는 이름의 종합병원이다. 한 번 여기에 가기 시작한 후, 나는 치과를 제외하고 다른 병원은 일체 가지 않은 채 이 병원만 다녔는데 그 이유가 있다. 일단 이곳은 외국인 전용 창구가 따로 있다. 4층 복도 끝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가면, 접수처와 간호사, 의사 세네 명의 진료실이 따로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여기는 오로지 외국인의 진료 접수만 받는 곳이다.
갈 때부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건 아니다. 처음에 1층에 있는 접수처로 갔는데, 우리 얼굴을 본 간호사가 다짜고짜 4층으로 올라가라고 했고, 그곳에서는 다른 간호사가 외국인 전용 공간으로 안내를 해줬다. 접수처의 직원들은 전부 영어를 하고, 접수 서류 또한 전부 영어로 되어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언어를 쓰는 지까지 서류에 적고 나면, 곧이어 내 나라 말을 하는 통역사가 나타난다. 거너에게는 영어를 하는 통역사가, 내게는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하는 통역사가 한 명씩 따라붙었다. 그리고 혈압과 체중을 재는 기본 검사부터, 의사 진료를 받고 약을 타고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며 일대 일로 모든 것을 전담마크 해준다.
무슨 VIP라도 된 기분이었다. 내가 추가로 통역비를 지불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과분한 서비스를 받아도 되는 건지, 나중에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청구하는 건 아닌 지 처음에는 마음이 불안해질 정도였다. 외국인 전용 창구에서 접수를 하니 기다리는 시간도 짧고, 검사가 필요하면 통역사가 직접 해당 검사실로 에스코트를 해주는 데다가, 거기서도 계속 내 옆에 붙어 병원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역해 줬다.
어려운 의료 용어 통역도 척척이었다. 심지어 약을 탄 후에는, 약이 많아 순서가 기억이 안 나면 다시 자기한테 연락해서 물어봐도 된다며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거너도 같은 서비스를 받은 건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병원 자매결연 프로그램으로, 다낭 병원에서 잠시 근무를 하고 있는 미국인 의사가 있었는데, 간호사가 그쪽으로 안내를 해준 것이다. 베트남의 작은 중소 도시의 병원에서 미국인 의사를 만날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 한 일이라 좋은 의미로 깜짝 놀랐고, 덕분에 거너는 더 편안하게 소통하며 피검사부터 소변 검사, 초음파까지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당연히 베트남 의료보험이 없는 우리는 병원비가 조금 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 번 갈 때마다 나는 약 값 다 포함해서 4~5만 원 정도 나왔고, 검사를 더 많이 한 거너는 10만 원 정도 나왔다. 비싸지만 감당 못할 정도의 병원비 수준이 아니며, 나는 한국에서 미리 들고 온 장기 여행자 보험 같은 걸로 백 퍼센트 병원비를 돌려받았다.
보통 외국인이면 차별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병원에서 만큼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 달리 귀한 대접받아볼 일이 없던 터라, 병원에 한 번 갔다 오면 그날 하루의 기분이 좋았다.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는데 기분이 좋다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참 알 수 없는 말이라 할 것이다.
물론 베트남의 모든 병원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 물가 기준으로도 엄청나게 비싼 병원이 있고, 병원비가 적당해도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는 돌팔이 병원도 있다. 그런데 병원이라는 게 어차피 내가 다니기에 좋은 병원 하나만 잘 찾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당연히 안 아파서 병원에 안 가는 게 좋지만, 나는 베트남에 있으면서 오히려 병원 가기를 즐기게 되었다. 꾀병으로 간 적은 없어도 한국이었다면 그냥 대충 약 사다 먹고 말았을 증상으로도 병원을 찾았다. 감기 걸렸다고 가고, 배 아프다고 가고, 피부가 가렵다고 가고. 거너도 미국에서 쉽게 갈 수 없었던 병원을 베트남에서는 줄기차게 다녔으니, 베트남의 많은 단점들이 이 장점 하나로 덮어씌워질 만했다. 당연히 예후도 괜찮았고 말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내 ‘베트남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는 뜻밖에도 병원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