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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13. 2022

초등학교만 6번

6번째 전학이었다. 

고작 초등학생인 내가 벌써 학교를 6번이나 옮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만 들으면 어린애가 뭘 잘 못해서 벌써 그렇게 학교를 옮겨 다녔을까, 혹은 누군가를 피해 이곳저곳 도망 다니는 집인가 오해하기도 했다. 


잦은 전학의 이유는 다행히도 나의 불량함이나 빚쟁이로부터의 도망이 아닌, 잦은 아빠의 근무지 변경 때문이었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빠는 기본 2년에서 3년, 어쩔 때는 몇 개월 만에 발령지가 바뀌었고,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짐을 싸 들고 이사를 해야 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전학 수속을 밟는 것까지 하나의 이사 과정이 되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어릴 때 나는 그렇게 소심할 수가 없었다. 낯은 어마어마하게 가렸으며, 절대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다. 선생님이 시키지 않는 한 수업 시간에 먼저 나서서 발표를 한 적이 없고, 뭔가 조금이라도 주목받는 일이라면 너무 긴장해 위장까지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사람 사귀기 힘들어하던 애가 친구를 사귈만하면 전학 가고, 사귈만하면 전학 가고 하는 생활이 반복되자 거의 소아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한 번은 새로 전학 간 학교 아이들 앞에 인사하러 교실 안으로 들어가야 할 때, 너무 들어가기 싫어 엄마가 밀어 넣을 때까지 복도에 가만히 서 있었을 때도 있었다. 계속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그게 반복되자 나중엔 그냥 지쳐 포기하게 되어 친구 사귈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더 소심해지기만 한 것 같다. 


그때부터 했던 다짐이 우습게도 절대 군인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였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이사를 많이 해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클 때까지도 가지고 있을 만큼 당시의 환경 변화가 내 성격에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건, 그렇게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 싫어 정착하는 삶을 바랐던 내가, 지금은 그렇게나 떠나고 싶어 한다. 결혼까지 했는데도 정착을 원하지 않고, 이곳저곳 계속 사는 지역과 나라를 옮기고 싶어 하니, 정말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하나 싶다. 


너무나 소심해서 내 발표 차례만 오면 두 손을 꽉 쥐고 빨리 수업 종이 울리길 기도했던 아이였는데, 거짓말같이 성인이 되고 나서 성격이 변했다. 처음 본 사람한테 먼저 말을 붙이기 일쑤였고, 낯선 사람 집에 가서도 제 집인양 편안히 누워 있었다. 영어도 잘 못 하면서 틈나면 혼자 해외에 나가 싸돌아다녔고, 더 나아가 한국에서도 한국인보다 외국인 친구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잦은 환경 변화에 노출되었던 게 단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성격의 바탕이 되었다. 한 번은 내 적응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돈, 직업, 친구, 정보도 없이 베트남으로 훌쩍 떠나 1년을 살았는데,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성공적인 해외 살이를 해 내며 내 적응력을 증명해 보였다. 


현재는 미국 남쪽 바닷가 마을에 2년째 살고 있다. 2년 정도 되니 이제 다시 이곳을 너무나 떠나고 싶어 진다. 다음은 멕시코로 이주해볼까, 아니면 미국 내 다른 지역으로 가볼까 끝없이 고민 중이다. 어릴 땐 타의적으로, 커서는 자의적으로 가만히 터를 잡지 못하고 돌아다니니, 철학관을 안 가봐도 내 사주에 역마살이 제대로 끼어 있는 건 알겠다. 여러 군부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어린 시절의 환경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또 그 특별했던 환경이 내게 준 이점도 없진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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