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의 싱가폴리안 결혼식

by 라봇

‘까똑’.

아침부터 울리는 메신저 소리에 잠이 깨 게슴츠레한 눈으로 확인을 해보니, 거너에게서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이게 뭐 하는 것인가 짜증이 났는데, 이게 웬걸, 그 사진은 조간만 떠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 표였다.


베트남에서 싱가포르까지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비행기 가격도 한국에서 가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베트남에 있는 동안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주변국이었다. 게다가 조만간 싱가포르 친구의 결혼식도 있다고 해 갈 수 있을까 시간만 쟤 보고 있었는데, 거너가 미리 받는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라고 싱가포르행 비행기표를 끊어준 것이었다. 지금까지 받아 본 생일 선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깜짝 선물이었다.


베트남 중소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는, 창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감탄을 금치 못 했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에 놀랐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면서도 태어나서 처음 고층 빌딩을 보는 사람처럼, 지하철이라는 걸 처음 타는 사람처럼 계속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국에서 매일 타던 지하철과 당연하게 오가던 고층 빌딩들에 대한 경험이, 베트남에 살면서 그새 다 잊혀져 버린 듯했다. 다낭은 지하철은커녕 편의점도 없는 곳이니, 싱가포르에서 ‘세븐 일레븐’의 간판만 봐도 문명과 다시 연결된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오자마자 다낭에서 먹기 힘든 양꼬치와 장어구이 등으로 한껏 배를 채우고 친구 결혼식에 입을 옷을 사러 갔다. 하객도 드레스 코드가 있었는데, 여자들은 다리를 가리는 롱드레스를 입어야 했고, 남자들은 무조건 정장이나 턱시도를 입어야 했다. 발품을 팔아 대충 정해진 코드에 맞는 옷을 준비한 후 다음 날 식이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결혼식은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였다. 친구는 한국과 싱가포르 혼혈, 남편은 중국계 싱가포르 사람이라, 한국식, 중국식, 서양식, 싱가포르식이 다 합쳐진 그야말로 다문화 결혼식의 완전체였다. 리셉션에는 신랑 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서서 식전 와인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흡사 영화에서 보던 서양식 파티 현장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축의금은 결혼식 장소의 밥값만큼 내야 된다는 정보를 듣고 봉투를 건넸더니, 정해진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원형 테이블이 가득한 본식장에는 전부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신부의 중, 고등학교 동창들이 있는 자리였고, 전부 처음 보는 내게 따뜻하게 인사해 주며 낯선 결혼식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신랑 신부는 함께 행진을 했고, 주례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양가 부모님이 나와 길고 긴 인사말을 전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하객들에게 잔을 들고 건배를 유도했고, 그때마다 나는 급히 잔에 술을 채워 넣고 마시기를 반복했더니 금세 취기가 돌았다. 음식은 결혼식 1부가 완전히 끝난 후 나왔다. 중식과 한식이 적절히 섞인 음식으로, 그중에는 구절판도 있었다. 식사 중에는 신부가 단상에 서서 마치 시상식을 하듯 참석해 준 사람들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고, 준비한 음식에 대해서도 이게 어떤 요리인지 안내도 잊지 않았다. 하객들에게 구절판에 대해 설명하는 신부를 보며, 바쁜 와중에 자신들의 뿌리를 담은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게 느껴졌다. 더불어 나도 몸소 구절판 먹는 시범을 보이며, 내 테이블에 앉은 하객들에게 음식 먹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다.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2부가 시작됐다며 비틀즈의 ‘Hey Jude’가 흘러나왔다. 흰 웨딩드레스에서, 파랗고 화려한 연회복으로 갈아입은 신부와 신랑이 나와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버진 로드를 걸었고, 하객들도 전부 일어나 콘서트 장의 가수를 맞이하듯 떼창으로 환호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어우러져 다 같이 노래하고 즐기는 결혼식이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결혼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1부, 2부가 마무리되자 리셉션이 있던 장소가 클럽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피커에서 EDM 음악이 나오고, 축의금을 받던 테이블에는 칵테일들이 놓여 있었다. 식이 끝난 후에 따로 장소를 예약해서 2차 피로연을 하는 한국 문화와는 달리, 그 자리에서 분위기를 바꿔 피로연을 하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아무리 파티지만 결혼식인데 EDM음악에 맞춰 신랑 신부의 어머니가 춤을 추는 것도 생소했다. 어머님들의 춤사위에 맞춰 남은 하객들 전부 구두를 신은 발로 깡충깡충 뛰며 춤을 췄고, 신부 또한 디즈니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스테이지에 합류했다. 싱가포르라는 작지만 화려한 나라를 둘러보며 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영화가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혼식인지 클럽 파티인지 헷갈릴 만큼 즐거웠던 싱가포르를 뒤로 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자마자 네비게이션에서 들리는 베트남어에 내가 다시 다낭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눈앞에 아롱거리던 고층 빌딩의 화려한 조명도, 눈 돌아가는 다채로운 음식들도 온데간데없었다. 밤늦게 돌아와 조용한 우리 집 골목을 보니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있다 현실로 돌아온 듯한 착각도 들었다. 시골쥐가 서울쥐네 집에 놀러 가서 맛난 고기와 케이크가 차려진 밥상을 보다 온 느낌이랄까. 하지만 시골쥐가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갔듯이, 다낭으로 돌아온 이후 거기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를 보며, 나도 이제 베트남 시골쥐가 다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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